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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러시아 천년 역사를 들여다보다 [Weekend 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09 04:00

수정 2022.12.09 04:00

내책 톺아보기
번역가 홍우정이 소개하는 러시아 히스토리
서글프고 매혹적이며 극적인 러 역사
소련 해체때 러 주재 영국대사였던 저자
솔직·신랄한 문체로 연륜 담아 서술
러-우크라 관계 이해하는 데도 도움
러시아 히스토리.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 / 시그마북스
러시아 히스토리.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 / 시그마북스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세계는 경악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미 악명이 높았다.
한국에서는 '푸틴의 홍차'라는 밈(meme)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중동과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에서 한 국가가 다른 독립국가를 무력을 사용해 쳐들어간다는 행위가 주는 충격은 상당했다. 푸틴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저자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는 유년 시절부터 삶의 오랜 기간을 러시아에 매료된 채 살아왔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될 때 저자는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였다. 이 책은 소련 해체라는 격랑이 휘몰아칠 때 정치의 한복판에서 현장을 목도한 전문가가 들려주는 러시아 1000년의 역사 이야기다.

러시아 역사를 다루는 책은 많다. 하지만 러시아 역사는 묘한 데가 있다. 시대에 따라, 통치자에 따라 러시아는 과거가 달라진다. 건국의 아버지가 한때는 바이킹이었다가, 시대가 달라지면 슬라브족이 된다. 어떤 책은 낯뜨거울 정도로 일부 국수주의적 입장을 대변하고 다른 편에서는 전부 거짓이라고 비난하는 서적이 줄을 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여러 입장을 보여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들려준다.

인류의 흔적이 으레 그렇듯 러시아 역사는 서글프고 매혹적이다. 게다가 극적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넓게 뻗은 영토, 기이하리만치 인내하는 사람들, 숭고한 종교적 믿음, 영화에서나 볼법한 두 차례(나폴레옹, 히틀러)의 극적인 전쟁,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인류 해방 시도, 그리고 실패, 냉전의 양대 주인공인 핵 강국, 국가 부도로 빈곤국으로 전락 등 현기증이 나는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유럽인과 동양인인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은 다르다. 그러므로 영국인인 저자가 기대하는 독자의 배경지식이 한국 독자에게는 없을 수 있다. 특히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부분은 역사 애호가가 아니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낯선 고충을 견디더라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해묵은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신랄한 영국인 특유의 문체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아군' 사이의 애증 섞인 미묘한 역학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산전수전을 겪은 전직 외교관은 과감하고, 솔직하다. 노익장이 가진 지혜와 연륜은 덤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 러시아가 왜 그렇게 당당했는지, 왜 푸틴이 정적을 암살하고 독재를 자행해도 러시아 내에서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왜 고르바초프보다 옐친의 장례식이 더 웅장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러시아인이 아닌 독자에게는 그런 지식을 제공한다. 러시아를 혐오하기는 쉬우나, 먼저 '이해'하라고. 하지만 책이 누차 강조하듯 러시아의 무력 행위는 세계의 동의를 결코 얻을 수 없다.
저자는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마지막에 남겨뒀다.

어떤 러시아가 될지는 주위에서 아무리 염원하든, 러시아인들의 몫이라고. 과거를 돌아보는 우리들이 히틀러의 바이마르공화국에,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에게 늘 되뇌는 서글픈 말이다.
푸틴의 집착이 더 큰 비극을 낳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홍우정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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