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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굽을수록 그리움 짙어져가네... '나이듦의 그림자'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08 18:13

수정 2022.12.08 18:13

Weekend 헬스
(12) 기다림과 그리움의 백년 인생
三綱의 첫째 기다림은 백세인의 숙명
전쟁으로 흩어진 가족 재회의 간절함
아픈 몸 짐될까 연락 못하고 속앓이…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등 뒤에 짊어져
허리 굽을수록 그리움 짙어져가네... '나이듦의 그림자'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생체분자들이 지켜야 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질서를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다(본지 8월 12일자). 그 중에서 삼강은 기다리고(待), 만나고(會), 헤어지는(別) 원리이며 그 본질은 정(情)이라고 했다. 이러한 원리는 생체를 구성하는 기본분자로부터 비롯하여 개체와 사회에도 확대 증폭돼 적용되고 있다. 삼강 중에 첫째가 바로 기다림이며 그 속성은 그리움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백살이 넘도록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그만큼 더 오래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감당해야 한다.


기다림의 신화 중에서 압권은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아내로서 최고 정녀인 페넬로프 이야기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전쟁으로 10년, 신을 우롱했다는 벌로 다시 10년을 귀환하는 과정에서 헤매다가 20년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다. 페넬로프는 108명이 넘는 구혼자들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죽은 부왕의 수의를 짜는 기간은 기다려주라고 호소해 옷을 짜기 시작했으나 밤마다 풀고 낮에 다시 짜면서 시일을 끌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남편의 귀환만을 기다리며 20년을 수절하며 기다려온 페넬로프는 이후 서양에서 정숙한 여인의 표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있다. 신라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할 때 석가탑을 짓고자 당시 최고의 백제 석공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녀는 3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남편을 보고 싶어 불국사를 찾았으나 문지기가 불사에 여인이 끼면 안 된다고 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영지(影池)라는 연못으로 가라고 하였다.

영지에서 탑을 짓고 있는 아사달의 모습을 본 아사녀는 그 환영에 달려들어 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아사달도 쫓아와 죽었다는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이 있다. 백세인 조사에서 페넬로프나 아사녀의 이야기에 못지않은 남북의 정치적 분단이나 특수질환에 의한 사회적 차단에 의한 안타까운 기다림의 현장을 보면서 그리움으로 충만한 인간의 참되고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강원도 고성군에서 양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백세인 할머니를 만났다. 남편은 납북되었고 양아들은 북한군 포로였지만 방면되어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 반백년이 훨씬 넘었지만 오로지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면서 언젠가 돌아올 남편이 길을 어긋나지 않도록 집도 이사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었다. 양아들도 통일만 되면 북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그곳에 살면서 이룬 재산은 할머니께 모두 드리고 단 한푼도 가지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양아들의 그런 뜻을 말하고 서운하지 않느냐고 묻자 "사람이 가족 찾아간다는데 어떻게 해" 하며 서로가 동병상린하고 있었다. 반백년이 넘었어도 변함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북에 남겨둔 가족을 찾아가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은 세속의 재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절대적인 그리움이었다.

소록도에서 만난 어느 백세인 할아버지는 15세에 발병해 22세에 소록도에 들어와 70년 넘도록 살고 있었다. 의족으로 불편한 몸인데도 같은 방에 함께 의족을 하고 있는 아흔살이 넘은 다른 환우와 기거하면서 서로 형제 같이 지내고 있었다. 백세 한센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의외로 매우 긍정적이었다. 인터뷰에서 내내 달관한 성자처럼 대답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겠어", "나라에서 밥 주고 옷 주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어". 그래서 그분에게 혹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여 물었다. 그랬더니 "뭐 보고 싶은 사람 있겠어"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은가 되묻자 가슴 아픈 답이 나왔다. 어머니는 본인이 소록도로 들어가자 석 달도 못되어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고 채근하며 물어보자 "동생들, 특히 여동생이 보고 싶어"라며 조용하게 말했다. 소록도로 떠나는 날 여동생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집 뒤에 숨어서 어이어이 통곡하며 이별을 서러워한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고향을 떠날 때, 내 나이 스물 두 살이었지. 그 때 큰 여동생이 열두 살, 작은 누이가 아홉 살이었어. 지금 살아 있다면 여든살이 넘었을텐데… 그 녀석들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몰라…" 자신이 한센인이라는 소문이 나면 여동생들의 장래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온 집안이 쉬쉬했고, 세월이 흘렀어도 연락 한번 할 수 없었던 오누이였다. 아마도 아직도 살아 있을 동생들, 특히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가슴 아픈 형제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을 신앙으로 무장하고 세상 모든 일에 꼼꼼하게 대처하는 백세인도 오랜 세월 피붙이 누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속으로 다져가며 눈물 흘리고 있었다.

페넬로프나 아사녀의 전설적인 기다림보다도 훨씬 더 오랜 기간을 기다리며 살아온 백세인들을 만나면서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기다림과 그리움은 더욱 길어져야만 하는 현실적인 업보를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가 기다림과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경우는 우리 민족만의 특별한 현실이 아닐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 격리돼야 했던 초고령 한센인들은 남은 가족에 폐가 될까봐 연락도 못하고 속앓이 하면서 지내야 했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고 사회적 이유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그리움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살아야 했던 초고령인들의 슬픔과 한(恨)의 안타까운 현장을 보면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업보를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깨닫게 된다.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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