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주홍글씨 벗는 사람들⑦] 새 출발하는 출소자... 네트워크 복원 시작, 결혼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13 15:14

수정 2022.12.13 15:50

드레스 입은 배우자 보니 삶에 대한 의지 생겨...새 삶 위해 뛰어들 것
출소자의 백년가약 위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자원봉사자 기부 행렬
13일 서울 강남구 웨딩피에스타귀족 강남점에서 출소자 부부 3쌍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지원을 받아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사진=김동규
13일 서울 강남구 웨딩피에스타귀족 강남점에서 출소자 부부 3쌍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지원을 받아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사진=김동규
[파이낸셜뉴스] "출소 이후 줄곧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되뇌며 위축됐는데, 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니 무엇이든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책임감과 용기, 그리고 의지가 생긴다"
A씨는 신부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환하게 웃고만 있었다. A씨는 출소자다. 강도살인 혐의로 복역생활을 하고 지난 2월 출소를 했다. 출소 직후 구청에 혼인신고를 했고, 약 2달 전에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A씨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돈도 돈이지만, 결혼을 축하해 줄 하객이 없기 때문이다. 복역하면서 인맥 상당수를 잃고, 심지어 친인척과도 연락이 끊겼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들의 결혼식을 도왔다. 서울 여러 웨딩홀에 행사 문의를 넣었으나 대다수 웨딩홀 사업자들은 "동업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 죄송하다"며 거절했다.

■포기할 수 없는 사회 네트워크, 가정...결혼식이란 새출발
13일 서울 강남구 웨딩피에스타귀족 강남점에서 출소자 부부 3쌍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부부는 신랑과 신부 중 1명이 출소자다. A씨 역시 마찬가지. 팔목에 희미하게 남은 문신 자국처럼 A씨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고아로 자라 온 그는 어릴 적부터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과정에서 불량서클에 가입했다. 활동 도중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무리 지어 다니는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죄책감 때문일까. A씨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한다. A씨는 "출소 직후에는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출소한 이후 지금까지 채 1년에 안된 시간 동안 핸드폰 번호를 6번이나 바꿨다. 과거 불량 서클에서 같이 활동했던 이들로부터 계속해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A씨는 "다시는 불행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 번호를 계속해서 바꿨다"며 "이 과정이 사회 깊숙한 곳으로 계속 숨어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핸드폰 번호까지 자주 바꾸다 보니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모든 인연을 끊어야 했다. 아니 손절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책임져야 할 가정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복역 과정에서 친우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내는 A씨를 옥바라지를 하며 A씨를 기다려줬다. 출소 후 배달 라이더로 살아가는 자신을 뒤에서 응원해준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A씨는 미안할 따름이다. A씨는 "웨딩드레스 하나 입어보지 못하고 저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조금 늦었지만 오늘에서라도 결혼식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며 당당한 걸음으로 예식장 안을 걸어 들어갔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자원봉사자들 기부 행렬
A씨의 혼주는 공단 자원봉사자가 맡았다. 부부가 입은 예복과 예식이 거행된 웨딩홀 등도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마련했다.

이날 결혼식에서 예복을 출소자 부부들에게 대여해준 김정민 라비노체 이사는 "제아무리 출소자라고 해도 결혼을 한다면 다른 부부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기부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주례는 임영현 지오엠씨 대표가 나섰다. 임 대표는 지난 2000년에 출소자 지원을 위해 3억5000만원 규모의 2층 양옥집을 사비를 털어 기부한 바 있다.
그는 "신랑 신부들은 저마다 남들에게 말 못할 깊은 사연과 고난을 견뎌내고 이 자리에 서 있게 됐다"며 "살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꿔주고 상대의 모자란 부분을 내가 채워주니 비로소 나도 완전히 채워짐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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