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겨울날 한 부인의 옆구리에 내종(內腫)이 생겼다. 내종이란 복부의 안쪽에 난 혹의 일종으로 배 안쪽에서 살덩이처럼 만져지면서 마치 아주 큰 종기처럼도 보였다. 부인의 남편은 고종사촌지간인 친척 의원에게 진찰을 부탁했다. 친척 의원은 벌써 몇몇 의원들이 치료에 실패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바라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촌 형님이 자신을 일부러 부른 것을 알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친척 의원이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촌 형님과 일가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형수의 병세를 물어보니 대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벌써 20일이 다 되었다고 했다. 창만(脹滿)도 심했는데, 특히 아랫배는 더 볼록했다. 더군다나 왼쪽 옆구리에 있는 장문혈 근처에는 주먹만 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의원이 손으로 혹을 만져 진찰을 하려고 하자 형수는 정신이 있는 듯 없는 듯 손사래를 치면서 손도 못 대게 했다.
형수는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했다. 창만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폐장과 명치 부위에서 가래가 들끓은 듯했다. 의원이 한숨을 쉬면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갑자기 형수의 아랫배 배꼽근처에서 ‘꾸룩~’하고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덩어리진 가래가 올라오다가 숨길을 막는 듯했다. 형수는 가래를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컥컥거리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의원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런 증상은 본 적이 없었기에 진맥을 할 엄두도 나지 않고 멀뚱거릴 뿐이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내 이런 병증은 평생....”이라면서 나지막이 내뱉었다. 분명 독백이었으나 주위 사람들도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형수의 괴증(怪症) 앞에서 의원의 넋이 나간 모습을 보고서는 주변의 친척들은 이 참담함을 견딜 수가 없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촌 형님이 울먹이며 물었다.
“자네. 형수는 어찌 되는 것인가? 대체 어떤 병증인가? 살릴 수는 있겠는가?”
그러나 의원은 “형님, 내 이런 병증은 지금껏 본적도 없고, 의서에서조차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손쓸 방도가 있겠습니까. 형수님을 살릴 희망이 없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친척들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곡소리였다. 그때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울면서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이것이 뭔일이다요.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그렇게 추운 날 차가운 대청마루에서 삼베옷만 입고 하루종일 솜을 타니 병이 나지 안 나겠소. 평소에도 냉증으로 고생을 하던 양반이 그렇게 추운 날 몸을 혹사시켰으니.... 흑흑~ 내 형님이 죽거든 볕이 드는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리리다. 죽어서는 냉증으로 고생하지 마시오. 아이고~ 아이고~”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인의 말을 듣고서는 의원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깜짝 놀랐다.
‘대소변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것은 장에 적취(積聚) 등이 있을 때 간혹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창만(脹滿)하면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고 싸늘함이 이리 극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여인의 말이 옳구나. 참으로 옳구나. 이것은 냉적(冷積)이 분명하다. 소변을 보지 못한 것도 산기(疝氣)로 인한 것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냉적(冷積)은 냉증(冷症)이 오래돼서 쌓인 것을 말하고, 산기(疝氣)란 냉증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하복부가 켕기는 증상과 비뇨기질환을 통틀어 말하는 병증이다. 의원은 이제야 형수의 맥을 잡았다. 촌구맥은 미세(微細)하게 느껴지면서도 간간이 유력(有力)하고 현삭(弦數)했다. 맥을 보니 아직도 양기(陽氣)가 끊기지 않고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의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의원은 사내에게 “형님, 형수님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형수님의 병은 분명 냉증(冷症) 때문입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화로에 있는 숯불을 가져와서 손을 덥힌 후에 뜨거워지면 그 손으로 형수님의 가슴을 계속해서 문질러 주십시오.”라고 했다.
남편은 의원의 말대로 덥혀진 손으로 아내의 흉골 가슴부위를 이리저리 문질러 주었다. 그랬더니 목에서 ‘꾸루륵~’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가래와 거품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입안에 가득 찬 뭔가를 명주천으로 급히 집어서 빼내 보니 3~4촌 정도 되는 낫자루같은 누렇게 뭉친 가래였다.
형수는 전보다 좀 편하게 숨을 쉬는 것 같았는데, 아직 정신은 들지 않았다. 한 식경(食頃)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의원은 큰 쑥뜸을 가져다가 명치 아래에 있는 거궐혈에 뜸을 떴다. 가래소리는 조금씩 가라앉았고 정신이 조금 드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의원은 다행스러워하면서 이제야 침을 놓을 생각을 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불을 밝히게 하고,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울음을 멈추게 한 후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서는 옛 침법을 따라 먼저 합곡을 보(補)하고 그 다음 태충, 삼음교, 해계를 사(瀉)하였다. 합곡과 태충은 사관혈로 막힌 기운을 뚫고자 함이고, 해계는 비위의 기운을 풀어주고 삼음교로 간비신(肝脾腎)의 기운을 동시에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침을 놓고 나서 의원은 방금 전 형수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던 여인에게 부탁을 해서 작은 솥과 명주천 그리고 대파 한단과 굵은 소금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여인이 부탁한 것들을 가져오자 의원은 대파의 흰뿌리 부분과 소금을 함께 섞어서 솥에 넣고 화로 위에서 살짝 노릇한 연기가 날 때까지 볶기 시작했다. 이것을 명추천으로 감싸서 배꼽과 아랫배에 찜질을 하게 했다.
찜질을 하는 도중에도 새로운 대파와 소금을 볶아서 식으면 바로 뜨거운 것으로 교체했다. 이 찜질법은 냉증으로 인한 제반 증상이나 냉증으로 인해 소변을 보지 못하는 전포증(轉脬證)을 치료하는 찜질법이다. 의서에는 총위법(蔥熨法, 파찜질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원은 찜질을 충분하게 한 후에는 또다시 신궐(배꼽)과 아랫배에 있는 기해, 관원혈에 뜸을 떴다.
시간은 이미 한밤중을 지나 벌써 새벽이 되었다. “꼬끼오~ 꼬끼오~” 닭이 두번 울자 형수에게서 대소변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의원은 가족들에게 옷을 새로 갈아입히게 한 후 급히 따뜻한 죽과 물 한 사발을 먹이고자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죽을 먹이려고 형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형수가 벌떡 일어나 놀라며 말하기를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습니까? 친척들은 왜들 이렇게 다들 모여 있습니까?”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도 또렷해졌고 숨도 편안했다.
혹처럼 부풀어 있던 곳을 만져보니 다시 평평하게 되었으며 처음처럼 통증도 호소하지 않았다. 의원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좋아진 것을 보니 형수의 옆구리 혹은 벽음(癖飮)으로 여겨졌다. 벽음(癖飮)은 수기(水氣)가 옆구리에 고여 있다가 한기(寒氣)를 받아서 엉키고 뭉쳐서 덩어리가 생긴 것이다. 쉽게 말하면 찬 자극으로 인한 장경련이나 내장근육의 뭉침으로 나타난 냉적(冷積)이었던 것이다.
의원은 사촌 형님에게 “이제야 병이 물러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형수님은 오랫동안 냉적(冷積)을 앓고 계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냉증에 명방인 부자이중탕(附子理中湯)을 처방해 주고서는 잘 조리하기를 당부했다. 벌써 아침이 되어 해가 떴고, 집안의 친척들은 안심하고 각자 제집으로 돌아갔다.
냉증(冷症)은 단지 단순한 수족냉증으로 시작하지만 관리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경우 냉적(冷積)이 되면 실로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병증으로 나타난다. 수족냉증도 문제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특히 여성의 경우 기해혈과 단전이 위치한 아랫배가 차가워짐을 경계해야 한다. 냉증은 만병의 근원이다.
* 글 제목의 ○○은 ‘냉적(冷積)’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명의경험록> 醫案. 冷結似肉腫. 余之內從兄李某, 以其妻內腫請我, 去見病症, 則大小便不通, 已至二十日, 胸腹皆極鼓脹, 右過章門穴, 腫核突出如拳, 痛不近手, 而氣息惟存, 眼睛突出胞外. 俄見, 痰氣自臍而上, 聲如猪, 嘔而直上塞喉. 時蒼黃之狀, 不能自忍, 擧家號哭, 余亦無所用手之望. 門外有一婦人, 聞哭聲顚倒而來入於後門, 高聲曰, 叔主叔主, 不知病源, 徒稱內疽, 可訝可訝. 此人本有冷病, 而向日極寒, 以單衣坐於冷地, 終日彈花, 得此病狀. 何不以此早言乎醫而治之云云. 余聞此言, 頓然覺悟曰, 大小便塞, 雖內腫或有, 其然腹胸之脹, 奚如此極也. 婦人之言, 是哉是哉. 適於其時炭火極好, 卽招內從父子言曰, 此病必是冷也, 持此炭火而去, 以手灸火乘熱, 掌熨膈上云云, 如其言熨之, 須臾似有喉聲, 而痰沫照出齒外, 急鑷而拨之, 鎌柄如焉黃痰, 長三四寸許. 自此似通呼吸, 而猶未知也. 食頃之間, 又有痰聲如初, 自臍漸上, 急取大艾炷, 灸巨闕穴分, 而使不得上沮, 以手尤勤摩熨, 則痰聲稍止. 時已夜半, 使兒輩止哭聲明火燭, 銘念持針, 用手提揷, 依古人之鍼法, 先補合谷, 次瀉太沖ㆍ三陰交ㆍ解溪矣. 至雞二鳴, 大小便一時俱下, 急取溫粥水, 呑飮一甫兒, 病人忽然起坐曰, 吾何如此, 以何事多會云云. 氣息晏然, 更見其腫處, 則核至平平, 雖猛按無痛處, 有若病虛. 日出, 一家皆大笑而罷歸.(의안. 냉결은 육종과 비슷하다. 우리 고종 사촌형 이 아무개가 아내의 내종 때문에 나를 불렀다. 가서 증세를 살펴보니 대소변이 모두 나오지 않은 채 이미 20일이 되어 흉복부가 대단히 팽팽해져 있었고 오른쪽 장문혈 근처에 주먹만한 종기가 튀어나와 있는데 아파서 손도 못 대게 했으며 숨은 겨우 쉬고 있었지만 눈알은 눈꺼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잠시 보고 있으니 담기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와 돼지 같은 소리가 났고 구역질하자 곧장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참을 수 없어 온 집안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었고 나도 손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 그때 문 밖에 한 부인이 곡소리로 전도된 것을 듣고 뒷문으로 들어와서는 큰 소리로 질책하는 말이 “아저씨, 아저씨, 병의 원인은 알지 못하고 겨우 내저라고만 하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원래 냉병이 있었는데 얼마 전 매우 추운 날 얇은 옷을 입고 찬 곳에 앉아서 종일토록 솜을 타다가 이 병을 얻은 것입니다. 어찌 이런 말을 의원에게 미리 말하여 치료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아 말하였다. “대소변이 막힌 것은 내종이 있을 때 간혹 생길 수 있긴 하지만 흉복의 창만이 어찌 이리도 극심한가? 부인의 말이 옳구나. 참으로 옳구나.” 때마침 숯불이 잘 만들어졌기에 고종 사촌형과 조카를 불러 “이 병은 분명 냉증 때문입니다. 이 숯불을 가지고 가서 손으로 불을 쬔 다음 뜨거워진 손으로 가슴을 문질러 주십시오.”라고 말하니 그대로 하였다. 잠시 후에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가래와 거품이 입 밖으로 새어나와서 급히 집어서 빼내니 3~4촌 정도 되는 낫자루같은 누런 가래였다. 이때부터 숨은 잘 쉬는 것 같았지만 아직 정신은 들지 않았다. 한 식경 동안 또 아까처럼 가래 소리가 들리며 배꼽부터 점점 위로 올라갔는데 급히 큰 쑥뜸을 가져다가 거궐에 뜸을 뜨고 막힘없이 위로 갈 수 있도록 손으로 더욱 부지런히 문질러 따뜻하게 해주니 가래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때는 이미 한밤중에 되어서 아이들에게 울음을 멈추고 불을 밝히게 한 후 정신을 집중하여 침을 잡았다. 손으로 잡아당기며 꽂으면서 옛 사람의 침법을 따라 먼저 합곡을 보하고 그 다음 태충, 삼음교, 해계를 사하였다. 닭이 두번 울자 대소변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서 급히 따뜻한 죽과 물 한 보시기를 먹였더니 환자가 벌떡 일어나 “내가 왜 이렇게 있습니까? 왜들 이렇게 많이 모여 있습니까?” 하고 숨도 편안해졌다. 종기가 있던 곳을 다시 보니 평평하게 되었으며 비록 빨갛기는 했지만 눌렀을 때 아픈 곳이 없었으므로 병이 물러난 것 같았다. 해가 뜨자 집안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 동의보감> 洗熨法. 小便難, 小腹脹, 不急治殺人. 葱白三斤, 細剉炒熱, 以帕子包分兩裹, 更替熨臍下卽通. 又炒鹽半斤, 囊盛, 熨臍下亦通.(소변을 누기 어렵고 아랫배가 불러 오를 때 급히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 총백 3근을 가늘게 썰어 뜨겁게 볶은 후 수건으로 싸되 두 꾸러미로 만든 후 번갈아 배꼽 아래를 찜질하면 소변이 나온다. 볶은 소금 반 근을 주머니에 채워서 배꼽 아래를 찜질하여도 소변이 나온다.)
○ 冷極脣靑, 厥逆無脉, 陰囊縮者, 急用葱熨法, 或吳茱萸熨法, 幷艾灸臍中, 與氣海, 關元 各三五十壯.(냉기가 극심하여 입술이 퍼렇고 손발이 싸늘하며, 맥이 없고 음낭이 오그라들 때는 급히 파찜질법, 오수유찜질법을 쓰고, 아울러 배꼽과 기해, 관원에 각각 30~50장 쑥뜸을 뜬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