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힘든 사람들
강추위 속 긴줄 선 무료급식소
순번 적은 종이박스로 자리 맡고
인근 급식소 3곳 돌며 도시락 받아
고물가에 연금받는 노인들도 합류
추위 속 새치기 실랑이 고함소리도
강추위 속 긴줄 선 무료급식소
순번 적은 종이박스로 자리 맡고
인근 급식소 3곳 돌며 도시락 받아
고물가에 연금받는 노인들도 합류
추위 속 새치기 실랑이 고함소리도
이들은 이미 퇴직해 소득이 없고 취미나 여가가 따로 없다. 무료급식을 먹으러 나오면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조금이나마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이들은 입을 모아 "춥긴 뭐가 춥나" "집에만 혼자 있으면 사람이 병이 난다"고 했다.
■급식소 돌며 끼니 해결
종로구 인근에서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는 단체는 불교단체 원각사, 기독교단체 프레이포유, 정치단체 허경영하늘궁무료급식소(이하 허경영급식소) 등 총 세 곳이다. 배식시간이 단체마다 달라 노인들은 분주하게 바삐 움직였다. 나중에 배식하는 곳에 자리를 맡아 놓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배식시간을 맞춰 여기저기서 도시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날 프레이포유에서 월요일마다 오전 10시30분께 제공하는 김밥을 받기 위해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지하로 이동했다. 종각역 지하광장에 모인 인원은 오전 10시40분 기준 총 66명이었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연하늘색 귀마개에 털모자, 두툼한 패딩점퍼 차림의 이모씨(78)는 오래 기다릴 수 있도록 등산용 접이식 의자까지 챙겨왔다. 오전 8시부터 노원구에서 왔다는 이씨는 "벌어서 모아둔 돈이랑 기초연금으로 살고 있다"며 "돈이 좀 부족해 아끼려고 여기서 모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기다림 끝에 받은 것은 계란과 김밥. 추위 속에서 대기하며 예민해져 있어 "야 새치기 하지 마"라는 고함소리가 대기 줄에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2차로 가는 곳은 허경영급식소다. 탑골공원 서쪽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기 위해 담을 따라 사람들이 죽 늘어섰다. 대부분은 깔고 앉을 수 있게 종이상자를 납작하게 펼쳐 두고 '목동 14' '미아리 15' 등 자신의 출발지와 대기순번을 적었다. 오전 10시 기준 50개 정도에 불과했던 종이상자는 배식시간인 오전 11시40분이 되자 130개로 늘어났고, 그 뒤에도 노인 25명이 상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낮 12시쯤 허경영급식소 도시락까지 받은 이들은 원각사로 이동해 오전 11시4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제공되는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급식판에 음식을 담아줘서 다 먹고 남은 식기를 돌려줘야 하는 원각사 급식이 실질적인 점심이다. 이들이 앞서 받은 도시락은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 저녁거리가 된다.
■고물가로 급식소 노인 늘어
이들 중엔 연금을 받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 급식소를 전전하고 있었다.
이날 추위에도 불구하고 오전 6시부터 나와 있던 A씨(74)는 "노인복지관은 돈을 내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가지 않는다"며 "연금으로 겨우 버티는데 그것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집을 소유하고 있어 무료급식을 먹으면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지하철로 30분 거리인 이곳까지 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만 있고 현금이 없다"며 "집도 있는 사람이 얻어먹는다고 나쁜 소문이 난다"고 덧붙였다.
5~6년 가까이 급식봉사를 해왔다는 프레이포유 봉사자 류모씨(50)는 이날은 추위 때문에 사람이 평소보다 10~20명 정도 적게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원래 노숙인 위주로 봉사했는데 그냥 어르신이 많이 늘었다"며 "경제가 어려워서 어르신들이 많이 힘드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급식을 받고 나서도 이들의 여가는 빈약하다. 강추위에 돈을 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실내공간이 없어서다.
A씨는 급식을 모두 받고 난 뒤 인근 마트 휴게실에 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노인 김모씨(75)는 지하철역 안에 있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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