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통계청 조사 결과 예상과는 다르게 1인 가구의 진짜 민낯은 우리 사회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연 소득은 채 2700만 원이 되지 않았고, 자가 비중은 낮았습니다. 또 대부분의 1인 가구 연령층은 50~60대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고독사에 대한 첫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쓸쓸하게 혼자 세상을 살아가다 뒤늦게 발견된 이들의 절반 이상도 50~60대였습니다. 뉴스1은 1인 가구와 고독사라는 상관관계, 그리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50~60대 현실을 담은 기획물 3편을 만들었습니다.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5060 중장년층 1인가구는 실직 등으로 인해 직장에서 떨어져 나온 경우가 많아 사회적 연결망이 취약하다. 이에 따라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사회 관계망을 회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나마 비혼 등 자발적인 이유로 1인가구를 선택한 이들은 외부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실직, 이혼, 사별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1인가구가 된 이들은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쉽사리 열지 않는다. 중장년 1인가구가 느끼는 고립감은 다른 연령층보다 높아 주변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늘어나는 1인가구 추세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조모임, 심리상담, 수공예 등 맞춤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중장년 세대 참여율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의 한 자치구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는 "저희도 중장년 1인가구 분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한 번 마음의 문이 닫힌 분들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참여하지 않으시더라고요"라고 토로했다.
주변과 나누지 않고 혼자 앓는 고통은 고독사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고독사로 사망한 3378명 중 50대 및 6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8.6%로 나타났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중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장년 세대는 사회 관계가 유지되는 청년층, 국가에서 관리하는 노년층과 달리 정책의 대상도 아니고 복지의 대상도 아닌 소외된 세대"라며 "이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개입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 경제적 빈곤이 사회적 고립으로…'찾아가는 복지'로 사각지대 해소해야
임소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은 중장년층 1인가구가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주요 이유로 실직 등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짚었다. 임 연구위원은 "중장년이 되면서 경제활동에 제약을 경험한다"며 "심적인 여유가 없어서 (경제 상황이) 먼저 해결돼야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통계청의 2020년 1인가구 통계(20% 표본조사)에 따르면 5060 1인가구 207만8480명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81만4889명으로 비중이 39.2%에 달했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으로 가족·직장과 분리돼 혼자 살게 된 5060 1인가구는 빈곤에 시달리지만 자존심 때문에 주변에 알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만난 이일우씨(64·가명)도 사업 실패로 가족과 떨어지면서 홀로 살게 된 사례다. 이씨는 간신히 지자체 공공근로 일자리를 구하면서 형편이 나아졌지만 아직은 장성한 두 아들에게 자신의 경제적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기 어렵다. 그는 "그냥 잘 있다고만 하지 이런 환경에서 산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가 없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먼저 취약계층에 대한 기존의 복지시스템을 더욱 촘촘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거나 질환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우선순위를 정해 도와줄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종합사회복지관이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홀로 사는 5060 중장년층을 확인해 면담과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의 복지체계는 대상자가 직접 신청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의 1인가구는 자신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 때 알지 못하거나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가 먼저 위기가구를 발굴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떻게 하면 접근성을 높이느냐가 중요하다"며 "서비스를 찾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원룸촌이나 고립된 분들에게 우편 서비스를 펼치는 등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커뮤니티 공간서 소통·유대 강화…스웨덴의 주거공유 '코하우징'
서울의 주요 5개 쪽방촌인 돈의동·창신동·서울역·남대문·영등포에는 대부분 취약계층인 쪽방 거주민들을 지원하는 시립 쪽방상담소가 있다. 상담소에서 주기적으로 쌀이나 김치 등 필요한 생필품과 주변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권을 배급받는 쪽방 주민들은 '먹는 문제'가 해결되자 상담소를 통한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서울시립돈의동쪽방사무소에서는 쪽방 주민들을 위해 때때로 인문학 강좌나 공연관람 등 문화 체험, 사진 동아리 등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참여인원은 대체로 10명 내외이며 주민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최선관 돈의동쪽방사무소 실장은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주민들 입장에서는 삶의 질이 높아지고 시각을 더 넓게 열어가는 효과가 있다"며 "주민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받아갈 수 있다면 그만한 보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쪽방상담소 내 '커뮤니티 활동'은 쪽방촌 주민들 간 소통과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쪽방촌의 한 50대 남성 주민은 "돈 모아서 임대아파트로 나간 사람들도 10명이면 9명이 다시 되돌아온다"며 "(쪽방촌) 밖으로 나가면 후원도 끊기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여기 있는 게 더 낫다"고 귀띔했다.
쪽방상담소의 상황은 지속적인 복지시스템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적 관계망이 지역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사례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비단 쪽방촌뿐 아니라 1인가구를 위한 주거지원 정책 자체가 이같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인가구의 사적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전 세대와 계층이 '커뮤니티 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사회적 공유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인 가구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스웨덴에서는 입주자들이 각자 개인 공간에서 지내면서도 '공용 공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공유 '코하우징'이 개발된지 오래다. 입주민이 직접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공동 식사와 각종 취미·교류 프로그램이 있어 주민들 간 소통이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정 교수는 "아이들만 돌봄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분들이 어디에 모여 사는지 데이터를 활용해 소셜 스페이스(공용 공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 건강관리·외로움 등 수요맞춤형 정책 개발…지자체 조례로 정책 안정화
이밖에 건강관리나 외로움 등 5060 중장년층의 수요에 입각한 '맞춤형 정책 지원'도 과제로 남아 있다.
임 연구위원은 "중장년 1인가구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고독사에 대한 불안감도 높다"며 "1인가구 TF팀에서는 크게 △주거 안정 △질병·외로움 △생활안심 △경제활력으로 구분해 정책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의동쪽방사무소에서는 간호사 1명이 주민들의 건강 모니터링을 전담하고 한 달에 한 번 의료봉사단체가 찾아와 진료와 약 처방을 한다. 지난 20일에는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영국에서는 '외로움(Loneliness) 장관'을 따로 임명해 외로움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외로움에 대한 '국가 책임'을 공식화하고 주변 이웃들과 먹거리나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인다.
1인가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데이터 수집과 법적 근거 마련도 시급하다. 정권이나 지자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관련 정책의 변동성이 크다면 사업의 일관성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6년 전국 최초로 '1인가구 지원 기본 조례'를 마련한 서울시는 현재 25개 자치구 중에서 16개 자치구가 1인가구 관련 조례를 만들어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전국 시군구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하는 1인가구 지원 조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천안시, 여수시 등 38개 기초자치단체가 마련한 관련 조례안은 올해도 32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추가로 제정하며 맞춤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4인가구를 기준으로 한 지원책이 많았지만 1인가구를 위한 법령과 조례가 제정되면서 이들을 위한 정책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장년만을 위한 정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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