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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古都 뒤편으로 저무는 석양, 당신의 한해도 아름다웠습니다 [Weekend 레저]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30 04:00

수정 2022.12.30 04:00

겨울에 찾은 ‘백제의 미소’ 익산
미륵사지석탑·백제 왕궁리유적지와
도시 곳곳 근현대 흔적에 생생한 역사 경험
5만㎡ 규모 ‘구룡마을 대나무숲’도 장관
대줄기 부딪히는 소리 영롱… 인생샷 절로
밥을 토렴해 주는 육회비빔밥 ‘인생 별미’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다. '사랑의 전설'을 품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석탑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다. '사랑의 전설'을 품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석탑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익산(전북)=이환주 기자】 의무감과 즐거움은 반비례한다. 시험기간에는 평소에는 쳐다도 보지 않던 뉴스마저 재미있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그것이 100% 자발성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연유로 너무 큰 유명세는 의무감을 동반하고 재미를 반감시킨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백제의 유산 '미륵사지 석탑'을 교과서가 아닌 다른 경로로 처음 봤다면 그 감동은 더 컸을지 모른다. 겨울에 찾은 전북 익산은 '백제의 미소'를 찾아 떠나는 역사적 경험은 물론 뜻하지 않았던 낭만과 따뜻함까지 남겨줬다.

익산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익산근대역사관. 사진=이환주 기자
익산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익산근대역사관. 사진=이환주 기자
익산 여행 중 만난 한일식당의 육회비빔밥. 사진=이환주 기자
익산 여행 중 만난 한일식당의 육회비빔밥. 사진=이환주 기자

■서울에서 1시간, 익산이 이렇게 가까웠어?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정확히 67분 뒤 전북 익산역에 도착했다. 백제의 향수가 그대로 남아있는 익산은 상상 이상으로 서울과 가까웠다.

첫 일정으로 익산 동부광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익산근대역사관'을 찾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삼산 김병수 선생이 1922년 개원한 병원을 복원해 개관한 곳이다. 1945년 광복 후 은행으로, 이후 식당으로 사용되다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 현재는 역사관이 됐다.

일제강점기 익산에는 쌀과 토지를 수탈하기 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 등이 있었다. 일제는 쌀 운반을 위해 전주역과 군산역 사이에 이리역을 만들고, 대농장을 관리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리농림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는 청년 박정희가 지원했다 탈락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돼 익산시가 됐다.

익산에는 1930년 후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황등호'가 있었는데 이후 만경강 직강공사를 실시한 뒤 사라졌다. 전북 완주에 대규모 대아저수지가 만들어진 탓이다. 지난 가을 여행 당시 아름다운 풍광으로만 기억에 남았던 대아저수지에 역사적 배경이 추가됐다. 여행 경험이 쌓일수록 조각그림 퍼즐의 빈 공간을 채우는 즐거움도 늘게 마련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점심은 황등면 황등로에 있는 '한일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황등쌀과 신선한 육회를 사용하고, 미리 비빈 밥을 토렴해 내어준다. 곁들어 나온 선지가 들어간 뭇국, 정갈한 김치, 딱 알맞은 간까지 인생 육회비빔밥이었다. 밥을 먹고 식당 바로 옆 '동네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보충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며 개별 포장된 과자와 초콜릿을 사장님이 일행 모두에게 주었다. 커피보다 따뜻한 기억이 익산에 남았다.

구룡마을 대나무숲. 사진=이환주 기자
구룡마을 대나무숲. 사진=이환주 기자
미륵산성터 전경. 사진=이환주 기자
미륵산성터 전경. 사진=이환주 기자

■요건 몰랐지? 구룡마을 대나무숲

미륵산 자락,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541-3번지에는 미륵사지석탑보다는 훨씬 덜 유명하지만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대나무숲'이 있다. 전체 면적이 5만㎡정도로 한강 이남 최대의 대나무 군락지다.

대나무숲의 입구로 들어가면 사방을 막고 있는 대나무에 차단된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수종이 굵기가 굵은 왕대다. 바람이 불면 일반적인 대나무숲에는 잎이 스치는 소리가 나지만 여기서는 굵은 대줄기가 부딪히며 영롱한 소리를 낸다.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 장면이 떠오른다. 숲길을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햇빛이 비춰 들어오는데 본능적으로 '인생샷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연인이라면 삼각대는 필수.

구룡마을 대나무 숲의 하이라이트는 여름밤 반딧불이의 군무라고 한다. 좋은 날, 좋은 사람과 대나무 숲과 반딧불이의 군무를 함께 보며 역사의 도시에서 둘 만의 역사를 쓸 수도 있을성 싶다.

대나무 숲을 보고 메인 디쉬인 미륵사지석탑을 보기 전 미륵산성 터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미륵산성은 미륵사지의 배후에 있는 미륵산을 감싼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1822m로, 과거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고 했기 때문에 '용화산성'으로도 불린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고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네비게이션에 미륵산성을 찍지 말고 '베데스다 기도원'을 찍으면 헤매지 않고 올 수 있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운전, 혹은 이동에 지쳤을 때 복합문화공간인 '왕궁 포레스트'에 들려보자. 대규모로 조성된 식물원과 카페, 족욕장, 잔디정원은 물론 갤러리에서는 시기별로 전시가 열린다. 휴식 공간에서 '숲멍'과 '물멍'을 즐기고 전시를 감상하며 휴식할 수 있다.

전북 익산 백제왕궁박물관 외부 왕궁리유적지에 있는 석탑. 사진=이환주 기자
전북 익산 백제왕궁박물관 외부 왕궁리유적지에 있는 석탑. 사진=이환주 기자

■미륵사지석탑, 왕궁리유적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본래 미륵사에는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은 완전히 소실됐다. 동원 석탑 역시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서원 석탑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915년 일본인들이 탑의 서쪽 부분을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이 석탑들은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여년의 보수 공사를 거쳐 2019년 공개됐다. 한겨울 이른 아침 찾은 미륵사지석탑의 공기는 고즈넉했다. 국립익산박물관도 백제 불교문화의 발자취와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익산 미륵사지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왕궁박물관(왕궁리유적)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대궁사 등의 절터와 대궁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성터 등이 있다. 무왕은 서동요 속의 그 서동이자 의자왕의 아버지다. 이 왕궁리유적을 통해 백제의 네번째 수도로 익산 천도가 실제로 이뤄졌는가가 학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백제왕궁박물관 외부에 있는 왕궁리유적터의 면적은 몇 시간을 둘러봐야 할 정도로 광대하다. 당시의 화장실터는 물론 정자터, 물길터 등이 남아있다.
백제 무왕대 말기나 의자왕대에는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탑, 금당, 강당 등 사찰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오층석탑이 이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익산에는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나바위 성당', '가람 이병기 문학관', '원불교 익산성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hw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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