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비장애인 중심 사회서 장애인 이해하기 쉽지 않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1 04:00

수정 2023.01.01 09:44

아르코미술관 '일시적 개입'전서 신작 전시
창작집단, 다이애나랩 인터뷰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룹 '다이애나랩'의 영상작품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룹 '다이애나랩'의 영상작품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파이낸셜뉴스] “누구나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미술 전시나 공연 소식을 전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 문구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 무료 전시나 공연이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휠체어 좌석이 없다거나 시청각 장애가 있는 경우, 그리고 언어장벽이 있는 경우가 그렇다. 후자는 자국을 떠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전자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여기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창작집단이 있다. 바로 다이애나랩이다.

이들은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창작 집단으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추구한다.


2019년부터 서울과 제주에서 '차별없는 가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다이애나랩은 오는 1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에 두 편의 신작을 내놓았다.

일본 영화감독 우에타 지로와 작업한 영상물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와 'blblbg(벌레벌레배급)'과 협업한 설치 작품 '지도에 없는 이름'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는 다양한 차별 문제를 고민해온 일곱 활동가의 인터뷰를 담았는데, 특기할 점은 시청각 장애, 언어 장벽 등 여러 경우를 고려해 만들었다. 또 두 작품 모두 "작품의 창작 전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작품을 먼저 창작하고, 그 이후에 접근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접근’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작품의 창작단계에서부터 접근성이 창작의 한 맥락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2020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열었던 ‘예술작품의 접근성’ 포럼에서 도출된 결론 중 하나였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에 신작 두 점을 전시했는데요. 두 작품 모두 기존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에서는 7명의 인터뷰이를 시청각 장애나 언어 장벽이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게 완성했는데요. 인터뷰이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고, 이들 각자의 스토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인터뷰이는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섭외했습니다. 차별없는가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왔던 프로젝트인데요. 모두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해 민감하게 바라보고 행동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벽이나 선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폭넓게 여러 관점의 이야기를 동시에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동물권 활동가라고 해서 동물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른 차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이런 교차성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이의 면면을 예로 든다면) 돌고래는 핫핑크돌핀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제주에서 돌고래와 바다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핫핑크돌핀스의 사무실이 있는 제주돌핀센터는 차별없는가게입니다. 김상희는 장애여성활동가이며 칼럼니스트입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출연자 중 해랑은 수어로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수어-음성 통역이 있습니다. 이때 나오는 목소리는 수어통역사의 것입니다. 출연자 중 하마무는 일본어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어 음성 통역을 입혔습니다.

모두 출연자 본인이 번역을 하거나 번역 감수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랑 인터뷰 중 음성언어와 조금 다르게 나오는 자막은 오류가 아니라, 해랑 본인 의지에 의해 수정을 한 것입니다. 하마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얼마나 완벽하게 번역을 해서 전달하느냐보다, 말을 하는 본인이 어떤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만들었습니다.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룹 '다이애나랩'의 영상작품'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오른쪽은 손글씨와 점자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표현한 작품.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룹 '다이애나랩'의 영상작품'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오른쪽은 손글씨와 점자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표현한 작품.


그밖에 출연하는 비인간 존재들도 있습니다. 마지막 크레딧 ‘출연’에는 출연하는 동물 모두의 이름이 있습니다. 영상은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음성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수어 통역, 한국어 자막,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긴 편이지만, 인물별로 끊어지기 때문에 중간부터 보셔도 괜찮습니다.

- 작품 '지도에 없는 이름'은 마치 ‘주류의 삶에 벗어나있는 소수자’ ‘세상의 관심조차 못받는 사람들’이 우리도 이렇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도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와 같이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없는가게 웹페이지를 만들 때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지도’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웹페이지의 접근성에 대해 여러 고민을 했지만, 시각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웹지도라는 것은 정말 드물었습니다. 텍스트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웹지도에 접근하면 그냥 그건 ‘그림’이라는 한 글자로 넘어가는 것이었죠.

blblbg는 어딘가에 찾아가기 위한 지도라는 개념으로부터 '지도에 없는 이름'이라는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가려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가게 공간이라기보다, 현재에는 없지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상 속에서만 접근이 가능한 어떤 비물질적인 개념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차별없는가게는 완벽히 차별이 없는 상태의 가게를 만들자는 것이라기보다, 차별이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같이 상상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여러 다른 감각을 통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무언가에 가 닿는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김경남이 분홍 사과를 그려주었고,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김명학, 제주 비자림로 숲 지킴이 그린씨,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신승연이 참여했습니다. 이 중 그린씨와 신승연의 말은 우에타 지로의 영상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에서 가져왔습니다.

벽에 묵자를 쓰고 점자 테이프를 붙이는 과정은 다이애나랩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편집자 오하나, 영화감독 김경만, 디자이너 정유희, 영화감독 조세영, 시각예술가 조은혜, 시각예술가 김지영(109), 연극 연출 진해정, 영화감독 우에타 지로, 평화활동가 전세현, 미디어 아티스트 오로민경, 시각예술가 무밍, 번역가 최순영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점자 감수는 활동가 보라가 했습니다.

- 전시의 글 중에서 '당신의 세계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세계가 매일 부서지고 또 새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글은 작가의 글인가요? 더불어 이는 비장애인 관람객 역시,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거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으로 ‘지도에 없는 이름’의 존재를 느끼고, 당신이 알고 있지 않는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나요?

(먼저 전시장의) 글은 그린씨와 신승연의 목소리, 김명학의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blblbg작가가 쓴 문장들입니다.

나와 다른 타인, 그 중에서도 살면서 거의 만나본 적이 없는 사회적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비장애인 중심으로 디자인되어 수천 년 간 유지되어온 이 사회에서는 더더욱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하기 쉽지 않고요.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세계들 사이에 교차되는 지점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이 작품은 점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자신이 읽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문장에 대해서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며, 손 끝으로 더듬어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혀 읽지 못하는 문장들, 전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을 앞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에요. 그것들은 이성적으로 열심히 배워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어떤 특별한 순간에 갑자기 전달되기도 하는 것이고, 그 순간들을 이 작품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점을 말씀해준다면?

현재는 제주에서 차별없는가게의 지도를 만들고 있어요. 제주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차별없는가게 서포터즈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게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곳은 공사를 하기도 하면서요. 아르코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제주 지도는 스투키 스튜디오와 함께 만들고 있는 중이고 2023년 상반기에 공개됩니다.

- 다이애나랩은 '배리어프리'보다는 ‘베리어컨셔스’을 선택하고 그 개념을 알리고자 애쓰고 있는데요. 왜 이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우리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나요?

배리어컨셔스를 알리고자 애를 쓴다기보다는 근래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다른 곳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도 아니고요. 처음 그 단어를 말한 사람과는 아주 멀리에서, 우리는 그 단어를 다르게 쓰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배리어컨셔스라는 말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이 사회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경계들을 사람들이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차별이 아닌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좋겠다, 그런데 예술이 어떻게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활동을 설명하기에 배리어프리보다는 배리어컨셔스라는 말이 적합해서 쓰고 있기는 하지만요.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겠죠. 그리고 누군가 큰 틀에서 기획하고 의도해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인식이 확 바뀌어 있다고 모두가 느끼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순간들이 무수히 많이 있어야 하겠죠. 우리는 그 작은 순간들을 어떻게 더 많이 자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앞서 다이애나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발행하는 ‘이음’에 연재된 글을 통해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장애인 도와주는 비장애인 선생님’이라는 해석"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사회적 소수자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정체성과 하고 싶은 일이, 마이너리티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 그것의 실천이 ‘장애’라 불리는 범주의 사람들과의 활동에 강하게 이끌렸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들은 "다이애나랩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고기와 장애와 여성과 퀴어와 예술과…. 이게 다 무슨 상관일까?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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