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가족 찾는 안종환씨
안종환씨(47·사진)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뿌리'라고 했다. 점촌(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어린 젖먹이 시절 가족과 헤어진 이후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았지만 여러 힘든 일을 겪는 과정에서 '근원'에 대한 고민을 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안씨가 가족과 헤어진 것은 '형제복지원' 때문이었다. 젖먹이 시절 어머니(김성분씨) 품에 안겨 고향 점촌에서 부산으로 왔다. 어머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부산을 찾았던 것뿐이다. 과정은 정확하지 않지만 부산역에서 경찰과 만나 파출소로 가게 됐고, 거기 있던 사람들과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입소를 당했다.
형제복지원에 대해 안씨는 "해 질 무렵 탑차를 타고 철문을 넘었다. 내부에서는 큰 운동장 하나와 군대식 집을 본 것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 후 결국 안씨와 어머니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안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옮기면서 만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덕성원은 부산 동래구(현 해운대구) 중동에 자리했던 아동시설이다. 덕성원은 형제복지원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형제복지원에서나 덕성원에서나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된 안씨는 덕성원을 나왔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생선 도소매업에 뛰어들었다.
안씨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학교에서 자격증을 5개 땄고 취업기간에는 월 200만원을 벌었다. 그 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안씨의 삶에 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7년이었다. 그해 '덕성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법인 관련 소송을 치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성장을 했던 곳이고 엄마 같다는 생각에 그동안 결혼도 하고 땅도 사고 사업도 키우고 싶어 모았던 돈을 빌려줬다. 매달 500만원씩 돈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총 5년 동안 3억원을 건넸다.
문제가 터진 것은 안씨가 25세 될 무렵이었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으니 덕성원에 그동안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덕성원은 더구나 안씨의 이름으로 보증을 서고 카드도 여러 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안씨는 45세가 돼서야 어머니와 가족들 다시 찾고 싶어졌다.
가족에 대한 기억을 묻자 안씨는 "젖먹이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소를 잡아서 잔치를 했었다"며 "형과 누나가 있었고 태어난 마을 앞에는 동산과 논이 있었다. 논을 따라 내려가면 학교도 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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