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법정최고금리를 낮추면 취약차주들의 빚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만 사실이다. 법적으로 등록된 금융사에서 대출이 가능한 경우 이자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나 등록된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신용자의 경우 법정최고이자율이 낮아지면 오히려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일단 법정최고금리 제도는 대출시장에서 취약차주를 고금리 부담에서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은 맞다. 대부업법이 제정된 2002년 10월 당시 법정최고금리는 시행령에 따라 66%로 결정됐고 이후 시행령이 7차례 개정되며 지속적으로 인하됐다. 현행 법정최고금리 20%는 지난해 7월 기존 24%에서 4%p 인하된 것이다. 법적으로 허용된 대부업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이자율을 제한해 제도권 금융내에서는 이자 부담의 상한선이 되고 있다.
■대부이용자 평균 대출금리 하락
정부는 취약차주들의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법정최고금리를 낮추고 있다. 지난 2002년 10월 66%로 결정된 법정최고금리는 5년 후에는 49%로 떨어졌고 2011년에는 39.0%로 하락했다. 법정최고금리는 이후 4차례나 낮아졌고 지난 2021년 7월에는 20.0%까지 떨어졌다.
법정최고이자율이 낮아지면서 대부이용자의 평균 신용금리는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31.9%이던 평균 대출금리는 2014년 29.8%로 30%를 밑돌았고 지난 2018년에는 19.6%로 20% 아래로 내려왔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는 14.0%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신용대출 금리의 경우 지난 2016년까지만 제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평균 대출금리와 같은 하락세를 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가 낮아지자 차주들의 대출이자도 낮아진 것이다.
■서민층 이자부담 경감 위해 "더 낮추자"
현재 국회에는 법정최고금리를 낮추는 내용을 포함한 이자제한법 개정안만 5건이 발의돼 있다. 20% 미만으로 하자는 개정안이 1건, 15%를 주장하는 법안이 2건이고 나머지는 13%, 12%로 낮추자는 내용이다. 서민층의 대출 이자 부담을 줄여야한다는 게 공통된 취지다.
이수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자제한법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법상 최고이자율은 2021년 5월을 기준으로 예금은행 대출금리 평균치(연 2.78%) 또는 상호저축은행 대출금리 평균치(10.21%)와 비교해 여전히 높다는 주장이다. 법정 최고금리와 관련한 해외 입법례를 살펴보면, 미국 뉴욕주, 텍사스주 등 고정적 이율 상한을 정한 주의 평균 상한이율은 연 15.4%이며 독일의 경우 연 4.17%∼연 8.17%, 일본은 대출액의 크기에 따라 최고이자율을 연 15%∼연 20%의 범위로 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채로 내몰리는 7~10등급 신용등급자
그러나 법정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신용등급 7~10등급 이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106만7005명에 달하던 대부업계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대출자는 지난 9월말에는 96만8688명으로 9만8317명 줄었다.
특히 신용등급 700점 이하 대출자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지난 연말 44만2336명이던 신용점수 300점대(300점 이상 400점 미만) 차주는 지난 9월말에는 37만1504명으로 줄었고 신용점수 700점대 차주는 같은기간 27만6521명에서 25만4287명, 600점대는 17만2948명에서 16만427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신용점수 500점대 차주는 3만593명에서 3만3138명으로, 400점대 차주는 1만1989명에서 1만2334명으로 소폭 늘기는 했지만 전체 이용자 수는 93만4387명에서 83만5533명에서 9만8854명 감소했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차주들이 대부업계로 넘어오자 기존 저신용자들이 탈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 잔액 역시 줄었다. 대부업 신용대출 전체 잔액은 지난 연말 8조4578억원에서 올 9월말 8조373억원으로 감소했다. 신용점수 300점대 구간의 대출 잔액은 3조4352억원에서 2조9276억원으로 줄었다.
제도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취약차주들은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취약차주들이 불법 사금융권으로 얼마나 이동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수치는 없다. 그러나 불법사금융 신고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는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4986건이던 불법사금융 신고 건수는 2020년 7351건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9238건으로 급증했다.
이수환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법정금리가 인하될 때 마다 저신용자들의 이탈이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법정금리인하에 따른 대출심사 강화로 저신용자들이 합법적인 대출 시장에서 이탈하는 경우, 불법대출이나 대출사기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상된 결과?
금융당국은 이런 예상을 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1년 법정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낮출 경우 20% 초과금리 대출을 이용하던 239만명(2020년3말 기준) 중 약 87%인 208만명의(14조2000억원) 이자부담이 매년 4830억원 경감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나머지 약 13%인 31만6000명(2조원)은 대출만기가 도래하는 향후 3~4년에 걸쳐 민간금융 이용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이들 중 약 3만9000명(2300억원)은 불법사금융 이용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조문희 금융위원회 가계금융과장은 "법정최고금리를 낮출 경우 이자 상한선이 낮아져 이자 부담이 경감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서민층 금융접근성이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과거 법정 최고금리 인하시에도 이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왔다"고 설명했다.
■금리인하에도 가계부채는 증가
법정최고금리가 낮아진 시점을 중심으로 최근 5년간 가계부채 관련 데이터를 비교해봤다.
최근 5년동안 법정최고금리는 두 차례 인하됐는데 먼저 2018년 2월 기존 27.9%에서 24.0%로 낮아졌고 2021년 7월에 다시 24%에서 현행 20%로 인하됐다. 이 기간을 중심으로 우선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니 법정최고금리 인하 이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법정최고금리를 낮추기 전인 2018년 1·4분기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6.4%다. 그러나 최고금리를 24%로 낮춘 이후인 같은해 2·4분기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0.3%로 오히려 높아졌다.
두번째 인하시점에서도 인하전인 2021년 2·4에는 170.5%에서 인하 이후인 2021년 3·4분기에는 171.8%로 높아졌다.
또 다른 지표인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을 살펴봤다.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되기 전인 2018년 1·4분기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비율은 46.0%다. 인하후인 2018년 2·4분기에는 46.5%로 소폭 올랐다. 이어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지기 전인 2021년 2·4분기 45.1%에서 인하후인 같은해 3·4분기에는 45.6%로 역시 소폭 올랐다.
■금리인하에 금융권 부실은 줄어
금융기관의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비율의 경우 어떨까.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연체 3개월 이상 부실채권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다.
저신용 이용자가 많은 저축은행과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사를 중심으로 비교하니 저축은행은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되기 전인 2018년 1·4분기 5.28%에서 인하 후인 2018년 2·4분기에는 5.08%로 낮아졌다. 최고금리를 낮추니 오히려 부실채권은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최고금리 인하로 인한 수익성 훼손을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낮추는 것으로 대응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실채권이 줄어들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비용 또한 줄일 수 있다.
실제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되기 전인 2021년 2·4분기를 보면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3.62%로 인하후인 같은해 3·4분기에는 3.54%로 낮아졌다. 여전사는 이 기간 1.22% 에서 1.19%로 역시 취약 여신이 줄었다.
이호진 금융감독원 여신금융검사국장은 "최근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법정최고금리를 시장연동형으로 운용하자는 제안이 언론 등을 통해서 많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연동형으로 하는 방안은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안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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