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기껏 상임위 초기 심사단계를 거쳐 본회의까지 올라간 예산안이 마지막에는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법정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겨 겨우 처리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소소위'라는 초법적 단계까지 가동하면서 짬짜미로 예산을 통과시켰다. 참석자들도 여야 원내대표, 예결위 간사 정도로 소수정예다. 하지만 속기록도 없고, 법적 근거가 없이 운영되다 보니 서로가 나눠 먹기에는 딱이다.
혈세로 조성된 수천억원대 돈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한통속 거래로 원내 1, 2당이 사이좋게 나눠 가진다. 이번에도 여야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경찰국 등 운영 예산안과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화폐 지원사업을 놓고 밀당을 벌이다 결국 원내대표 담판으로 밀실에서 처리됐다. 이럴 거면 왜 각 상임위에서 시간과 공을 들여가면서 예산심사를 했는지가 이해가 안된다.
과거 국회의원들의 로비 예산으로 대변되던 '쪽지예산' 주고받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카톡예산' 민원으로 진화했다. 변화와 개혁에 둔감한 정치권이 이런 데는 빠르다. 카톡예산 민원은 나중에 국회의원들이 자랑하는 '제가 이런 지역예산을 어떻게 땄습니다'라는 생색내기용 치장으로 둔갑한다.
결산 과정도 문제다. 결산은 1년간 정부가 썼던 혈세가 과연 적정하게, 효율적으로, 낭비 없이 잘 쓰였는지를 현미경 심사하는 과정이다. 이를 토대로 내년에는 좀 잘 쓰라는 근거가 된다. 결산이 예산안 심사의 완성도와 효율성을 높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결산에서 지적된 집행상 문제점은 고쳐지지 않은 채 매년 되풀이되기 일쑤다.
국회가 제대로 예산안 심사를 하지 않다 보니 가계부를 쓰는 기획재정부의 힘과 권력만 커진다. 예산안 심사가 이뤄지는 매년 9월 정치국회 때만 되면 평소 '을'이었던 기재부와 '갑'이었던 국회의 입장이 서로 뒤바뀌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게 바로 '금고지기'의 위력이다. 가장 시급한 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설화다. 지금은 여야 의원들이 소속 상임위와 예결위원을 겸직해 짧은 기간에 운영되니 정교한 심사가 버겁다. 예결위원은 따로 뽑아 정부의 예산안 편성 초기 단계부터 연말 정기국회 통과 때까지 일년 내내 전담 마크를 시키는 게 혈세낭비를 막는 첫걸음이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책부문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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