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전주환 사건을 취재할 당시 신상공개 제도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기자에게 "피의자가 거부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찰은 현행법상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거부할 경우 식별용 사진(머그샷)을 강제 공개할 수도, 검찰 송치 시 피의자 얼굴을 강제로 드러내게 할 수도 없다.
이는 이기영 사건 때도 되풀이됐다. 대중에 공개된 이기영의 신상정보는 언제 찍었는지 알 길 없는 운전면허증 사진이 전부였다. 이기영이 머그샷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개된 사진에 '뽀샵' 논란이 일자 경찰은 검찰 송치 과정에서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공개될 수 있도록 마스크 미착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기영은 '얼굴이 공개되면 지인에게 피해가 간다'며 이마저도 거부했다. 국민들은 결국 그의 현재 얼굴을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이른바 '커튼머리'로 포토라인 앞에 서면서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피의자가 동의하면 머그샷을, 거부하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하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흉악범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여전히 '피의자 인권 보호'라는 벽에 막혀 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동일한 논란이 반복된 만큼 머그샷 공개방식에 대한 전향적 고민이 필요하다.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면 피의자에게 수의 대신 평상복을 입힌 뒤 현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신상공개 때마다 불거지는 불필요한 논란과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현행 방식에 대한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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