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광만)는 안산 단원고 고(故) 전찬호군 아버지인 전명선 4·16 민주시민교육원장 등 228명이 대한민국과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 원고인단은 희생자 가운데 안산 단원고 학생 116명 등 참사로 숨진 118명의 가족이다.
재판부는 국군 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등에 대해 사생활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고 1심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총 723억여원에서 재산상 손해배상액 147억여원, 정신적 손해배상액 10억6000만원을 더해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희생자 친부모의 경우 1인당 500만원, 그 외 가족에 대해서는 1인당 100~300만원이 추가 위자료로 책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대한민국은 2차 가해로 인한 위자료 청구는 민사소송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군기무사령부가 직무와 무관하게 세월호 유가족의 인적 사항과 정치 성향 등을 사찰해 보고함으로써 원고들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소송 원고인단은 지난 2015년 9월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보상을 받지 않고 국가와 청해진해운이 10억원 내외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를 메꿔주는 성격의 보상이 아닌 국가 등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손해배상 소송을 택한 것으로 당시 청구액 규모는 1000억원을 넘었다.
유족들은 "세월호 도입 과정의 적법성 및 출항 전 안전점검 등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건 발생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청해진해운에 대해서도 "세월호 선체의 무리한 증·개축, 세월호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훈련 미준수, 과적, 고박 불량 등 운항과실 및 사고발생 시 초동대응 미조치로 인해 사건 발생과 피해 확대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참사 4년3개월만인 2018년 7월 열린 1심에서는 청해진해운과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이 과적과 고박불량 상태로 세월호를 출항시켜 변침 과정에서 복원력이 상실되는 사고를 야기한 점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선내에 대기할 것을 지시한 뒤 자신들만 먼저 퇴선한 점 △해경 123정 정장은 승객들의 퇴선유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희생자들의 일실수입(사고 피해자가 잃은 장래 소득)과 위자료,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를 구분해 배상 규모를 책정할 것을 명령했고 원고인단은 총 723억원, 평균 6~7억원대 배상을 받게 됐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평균보상금인 약 4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하지만 청해진해운과 유족들 중 228명이 1심 판결에 불복했고 이에 따라 항소심이 이뤄지게 됐다.
유족들은 불법사찰 외에 기무사가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를 기획한 점, 정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조사를 방해한 점 등도 2차 가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무사 공무원들이 진보 단체의 세월호 추모 집회 첩보를 보수단체에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나 원고들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가담했다고 인정할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특조위 외에 다른 기관의 조사를 통해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할 수 있어 특조위 조사 방해만으로 유족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족들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매우 아쉽지만, 법원이 (국가의 2차 가해를) 인정한 부분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국가는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외치는 유족과 시민을 종북 좌파로 몰아가며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며 "오늘 선고는 국가와 기무사의 이러한 행위가 불법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가는 국가폭력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에 나서야 한다"며 "그래야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같은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국민이 억울한 유가족이 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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