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뽕나무가 사라지자 OOO도 없어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21 06:00

수정 2023.01.21 05:59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상(桑, 뽕나무)(왼쪽)와 <본초학>에 그려진 뽕나무겨우사리(상기생, 가운데)와 참나무겨우살이(곡기생).
<본초강목> 에 그려진 상(桑, 뽕나무)(왼쪽)와 <본초학> 에 그려진 뽕나무겨우사리(상기생, 가운데)와 참나무겨우살이(곡기생).

옛날 한 고을의 관리가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있어서 의원을 방문했다.

의원은 관리에게 “지금 병세를 보아하니 간신(肝腎)이 허하고 어혈이 뭉쳐 있어 다리에 기혈순환이 안 되기 때문에 근골(筋骨)이 마르고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증에는 독활기생탕(獨活寄生湯)이 최고입니다.”라고 했다.


관리는 기뻐하며 “그럼 어서 처방을 해 주시게나.”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의원은 “문제는 약방에 독활기생탕에 넣을 상기생(桑寄生)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약방에 약이 없다는 그게 무슨 말인가?”라고 관리는 되물었다.

의원은 “상기생은 뽕나무에 기생을 하는 겨우살이인데, 요즘 뽕나무가 없으니 어찌 상기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녹봉을 받으시는 관리이신 것 같은데, 연유가 궁금하시다면 지금 한번 밖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한번 살펴보시지요. 천천히 돌아보신다면 운동 삼아 요통과 하지무력에도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라고 했다.

관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처방할 약재가 없다니 뭐라 말도 못하고 약방을 나왔다. 관리는 자신이 어렸을 때만 해도 뽕나무가 많았기에 뽕나무가 있다면 상기생이란 약이 없을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뽕나무는 마을 곳곳에 잘 자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실태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먼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자랐던 고향을 방문해 보고자 했다. 자신의 고향은 당시만 해도 뽕나무가 여러 그루가 밭을 이루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누에를 키워서 명주실을 짜기도 했기 때문이다. 관리는 고향에 도착해서 뽕나무가 있었던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이상하게도 도대체 어릴 적 봤던 뽕나무밭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 봤던 뽕나무가 지금도 있다면 아름드리 뽕나무가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한두 그루의 뽕나무조차 보이지 않았다.

관리는 근처에서 밭일을 하고 있던 노부부에게 “어르신, 예전에 이곳에 뽕나무밭이 있었는데, 그 뽕나무밭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이요?”라고 물었다.

노부부 중 할머니는 “지금 이 밭이 옛날 뽕나무밭이구려~”라고 했다.

그러자 관리는 “그런데 뽕나무들은 다 어디갔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라에서 뽕잎으로 누에를 키워서 명주실을 짜서 진상하고 일부는 팔아서 살림에 보태라고 하는데, 아녀자들이 누에에서 명주실을 뽑는 일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고 진상하고 난 명주베를 좀 팔아서 돈을 마련해 볼까 하면 모두 세금으로 거둬가기 일쑤였고, 양잠으로 얻는 수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터라 농부들은 뽕나무를 뽑아 버리고 밭으로 모두 갈아 엎어버렸소이다.”
사실 당시 누에를 치고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는 일은 쉽지도 않았을뿐더러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조정에서는 곳곳에 잠실(蠶室)을 두어 장려하고자 했지만, 막상 뽕나무와 누에를 키우는 일은 농부들이 도맡아 했어야 했기에 무작정 채근을 하면 뽕나무 농사를 그만두기 일쑤였다. 또한 농부들은 뽕나무 농사가 흉작으로 누에가 잘 크지 않으면 별도로 명주실을 사서 조정에 바쳐야 했으니 여러 가지 폐단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뽕나무밭을 갈아 엎어 일반 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관리는 다시 “그럼 뽕나무밭 말고 한두그루씩 크게 자라던 뽕나무들은 어찌된 것이요? 그 큰 뽕나무에는 상기생이라는 겨우살이가 자라고 있어서 약으로도 사용한다고 하지 않소?”하고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노부부 중 할아버지는 “그 큰 뽕나무도 좀 수령이 된 것들은 고관대작들의 관(棺)으로 쓴다고 모조리 베어버렸소이다. 뽕나무는 단단하고 습기에 강해서 관으로 인기가 많소. 그런데 우리 같은 평민들은 일반 소나무나 버드나무를 관짝으로 사용할 정도고, 뽕나무 정도면 권세있는 순서대로 하나씩 베어갔으니 우리가 뭐라 하겠소. 옛날에는 상기생을 얻기 위해 큰 뽕나무 그루에는 봉표(封標)를 해서 수령을 통해 별도로 수직(守直)을 정해 놓았는데, 이것도 지키는 둥 마는 둥하더니 이제는 상기생은커녕 뽕나무도 구경하기 힘들게 됐수다.”라고 하는 것이다.

수직(守直)이란 뽕나무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관리는 아차 싶었다. 사실 몇 년 전 자신의 선친(先親) 또한 어디서 뽕나무를 비싸게 구해서 관을 짰기 때문이다. 관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곳 약방에서는 상기생을 어떻게 상기생을 처방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인근 약방을 찾았다.

“혹시, 이 약방에 상기생이 있소?”라고 물었다. 의원은 “그 귀한 상기생을 어찌 찾으신단 말이요?”라고 답했다.

관리는 자초지종을 말하고서 의원에게 사실대로 말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의원은 “의서에 보면 상기생(桑寄生)은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요통을 치료하며 부인들의 경우는 안태(安胎) 작용이 있어서 임신부도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는 안전한 약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기생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예로부터 유독 뽕나무에서 기생한 겨우살이만을 진품으로 해서 약으로 주로 사용하는 까닭은 본래 뽕나무의 기는 부드럽고 서늘하며 윤택하여 위로는 머리 꼭대기까지 도달하고 옆으로 팔다리에 도달하기 때문에 상기생을 통해서 뽕나무의 기를 얻고자 한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 진품 상기생을 구하기 힘들어 대부분 다른 나무들에서 난 것으로 충당하는데, 성질이 같지 않아서 도리어 해를 입을 수 있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무에서 기생하는 겨우살이들은 독성이 있어서 함부로 사용하면 안됩니다. 얼마 전에도 옆 마을 약방에서 이름 모를 나무의 겨우살이를 다려먹고 환자가 한 달만에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관리는 “그럼 상기생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 것이요? 사실 내가 며칠 전 독활기생탕을 처방받았는데, 상기생이 없다고 해서 복용을 못한 적이 있소.”라고 했다.

의원은 “말씀드렸다시피 상기생은 구하기 힘듭니다. 대신 참나무를 진목(眞木)이나 곡목(槲木)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곡기생(槲寄生)이라고 해서 상기생 대신 사용하기도 합니다. 만약 상기생 말고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사용하려면 곡기생을 써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때 약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약초꾼이었다.

“의원님, 상기생 좀 가져왔습니다.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요.”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의원은 반갑게 “아니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 것인가?”하고 묻자, 약초꾼은 “저쪽에 저만 아는 큰 뽕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제가 어렵게 따왔습니다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뽕나무는 이미 베어버린 지 한참이 되었고 의원이나 관리도 그 뽕나무가 베어져 버렸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는 터였다.

의원은 약초꾼이 가져온 겨우살이는 보더니 “이것은 상기생이 아니라 곡기생 아닌가? 어찌 곡기생을 가져와서 상기생이라고 속인다는 말인가?”하고 언성을 높였다.

상기생과 곡기생을 구분하는 의원을 보고 약초꾼은 깜짝 놀랐다.

“약방이나 사람들에게 상기생이라고 하면 비싼 값을 주고 팔 수 있어서...죄송합니다.” 약초꾼은 말문이 막혔다.

의원은 약초꾼에게 “요즘 상기생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은 내 다 아는 사실이네. 그냥 참나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면 될 것을. 뽕나무의 상기생이나 참나무의 곡기생 말고는 다른 나무의 겨우살이는 독성이 있어 주의를 해야 하네. 예를 들면 복숭아나무의 겨우살이는 도기생(桃寄生), 버드나무 겨우살이는 류기생(柳寄生), 회화나무의 겨우살이는 회기생(槐寄生), 소나무 겨우살이는 송라(松蘿)나 송기생(松寄生)이라고 본초서에 적혀 있지만 이는 단지 구분을 위한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일세. 항간에 자네와 같은 약초꾼들이 여기저기서 이름도 모를 나무의 겨우살이를 따와서 마치 모든 겨우살이가 무병장수할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팔고 다니고 있으니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라고 주의를 줬다.

의원은 관리와 약초꾼을 번갈아 가며 보면서 “뽕나무가 없어지니, 상기생뿐만 아니라 또한 뽕나무 뿌리인 상백피(桑白皮), 뽕나무 가지인 상지(桑枝), 뽕나무잎은 상엽(桑葉), 뽕나무 열매인 상심자(桑椹子) 등등 모두 뽕나무에서 나는 것들은 약으로 사용이 어렵게 되었소. 상기생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이 바로 상황(桑黃)버섯이요. 상황버섯도 여러 나무에서 나지만 진품 상황버섯은 뽕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이라 뽕나무 상(桑)자를 사용한 것이지만, 뽕나무가 없는데도 모두들 상황버섯을 캐왔다는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지요.”라고 했다.

관리가 생각해 보니 뽕나무가 없어지면서 나타난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누에를 키울 먹이가 없으니 베를 짤 수가 없기에 백성들은 겨울을 춥게 지내야 하고, 병든 환자에게 처방할 효과가 좋은 약재가 없어진 것이다. 관리를 조정에 상소를 올려 뽕나무를 다시 되살릴 방도를 찾고자 했다.

관리는 "뽕나무 하나 관리를 못하면서 어찌 백성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목의 ○○○은 상기생(桑寄生)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 桑寄生皆言處處有之. 從官南北, 處處難得. (중략) 古人惟取桑上者, 是假其氣爾. 第以難得眞者, 眞者下咽, 必驗如神. 向有求此於吳中諸邑者. 予遍搜不可得, 遂以實告之. 鄰邑以他木寄生送上, 服之逾月而死, 可不愼哉.(상기생은 모두가 곳곳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관리가 되어 남북 곳곳을 다녔으나 얻기가 어려웠다. 중략. 옛사람들이 뽕나무에서만 채취한 것은 뽕나무의 기운을 빌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다만 진품은 구하기 어려운데, 진품을 복용하면 반드시 신묘한 효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오나라 지역의 여러 고을에서 이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두루 찾아보았지만 구하지 못하여 마침내 사실대로 고하였다. 이웃 고을에서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것을 보냈는데, 복용하고 한 달이 지나자 죽기도 했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초정화> 桑寄生. 助筋骨, 益血脈. 安胎, 充肌膚, 堅髮齒. 古人惟取桑上者, 是假其氣耳, 難得眞者.(상기생은 근골을 돕고 혈맥을 북돋운다. 태아를 안정시키고 살결과 피부를 충실하게 하며 모발과 치아를 견고하게 한다. 옛날 사람들이 오직 뽕나무 위에 있는 것을 채취한 것은 그 기운을 빌린 것일 뿐이다. 진품은 얻기가 힘들다.)
<동의보감> 獨活寄生湯. 治肝腎虛弱, 筋攣骨痛, 脚膝偏枯, 緩弱冷痺. 獨活, 當歸, 白芍藥, 桑寄生 各七分, 熟地黃, 川芎, 人參, 白茯苓, 牛膝, 杜沖, 秦芃, 細辛, 防風, 肉桂 各五分, 甘草 三分. 右剉, 作一貼, 薑 三片, 水煎, 空心服. 獨活寄生湯, 桑寄生, 無眞者, 世以他寄生代之, 爲害不少.(간신이 허약하여 근에 경련이 일고 뼈가 아프며, 다리 한쪽이 마르고 늘어지며, 약하고 차면서 마비되는 것을 치료한다. 독활, 당귀, 백작약, 상기생 각 7푼, 숙지황, 천궁, 인삼, 백복령, 우슬, 두충, 진교, 세신, 방풍, 육계 각 5푼, 감초 3푼. 이 약들을 썰어 1첩으로 하여 생강 3쪽을 넣어 물에 달여 빈속에 먹는다.
독활기생탕은 상기생이 진짜가 없어 민간에서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것으로 대신하는데 해가 적지 않았다.)
<향약집성방> 桑寄生, 大凡槲, 欅, 柳, 水楊, 楓等, 上皆有寄生, 惟桑上者堪用, 然殊難辨別. 醫家非自採本敢用.(상기생은 대개 참나무, 떡갈나무, 버드나무, 수양버들, 단풍나무 등의 위에 다 기생하지만, 오직 뽕나무 위에 기생하는 것만 약으로 쓴다.
하지만 구별하기가 어려우므로 의사들은 스스로 채취한 것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