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맞춰 약 2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던 미 달러 가치가 '킹달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느려지고 미국 외 다른 국가의 통화가 강세를 보인다며 당분간 달러 가치 하락이 지속된다고 내다봤다.
■고금리 기대 꺾이자 달러 힘 빠져
달러 가치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해 대규모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금리가 오르자 미 국채 가격이 떨어졌고 안전자산을 싸게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해외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들었다. 6개 국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측정하는 달러 지수는 지난해 9월 26일 114.1까지 올라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지수는 1973년 3월에 시작되었으며 출범 당시 달러 가치를 100으로 두고 있다. 달러지수 역대 최고치는 1985년(164.72)에 나왔고 최저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3월(70.7)이었다.
달러지수는 지난해 9월 고점 이후 계속 떨어지더니 18일(현지시간) 장중 101.53까지 내려간 뒤 일부 연준 인사들의 고금리 강경 발언으로 다소 올라 102 근방에 머물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지수가 약 7개월 만에 최저점인 동시에 지난해 9월 고점 대비 10.7% 내려갔다며 2009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앨런 루스킨 주요10개국(G10) 외환전략 대표는 "세계 추세가 달러 약세로 흐르고 있다"며 "약간의 거시적 소식이 나와도 달러가 흔들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FT는 달러 약세의 원인으로 연준의 금리 결정을 지목했다. 연준은 지난해 물가를 잡기 위해 4연속 '자이언트 스텝(0.75%p)'으로 금리를 올린 뒤 지난달 0.5%p 인상으로 속도를 늦췄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25~4.5% 범위다. 연준은 다음달 1일에 통화 회의를 마치고 금리 인상폭을 결정한다. 미 자산관리사 콜럼비아 스레드니들 인베스트먼트의 에드 알 후사니 전략가는 "현재 시장에서는 연준이 다음달 금리를 0.5%p 올릴 가능성을 5%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0.25%p 상승이 유력하다며 "이렇게 확실한 경우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 신흥시장 증시가 혜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미 증시 지수 산출 기업인 모간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의 신흥시장 지수는 지난해 22% 추락했으나 올해 들어 7% 상승했다. 골드만삭스의 케사르 마스리 전략가는 "신흥시장 증시는 올해 들어 약 2주 동안 선진국 증시에 비해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재개방, 물가상승 둔화 등이 이번 상승세를 이끌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신흥시장 투자자들이 달러 추세 전환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FT는 주요 원자재들이 달러로 거래되는 만큼 달러 약세로 인해 신흥시장의 수입 비용 부담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킹달러' 시대 폐막? 당분간 '약달러' 전망
국내에서도 달러 약세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10월에 달러당 1440원에 달했던 달러 가치는 1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전날 종가 대비 1.2원 내린 1236.2원에 개장해 1232원선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1270원대에서 시작해 1230원대 초반까지 점차 하락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10월과 비교해서는 200원 가까이 내렸다. 지난 10월 평균 1426.7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1월 1364.10원, 12월 1296.22원으로 대폭 하락한 후 1230원대까지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올해에는 지난해와 같은 킹달러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생산자물가지수(PPI) 발표 후 물가상승(인플레이션) 둔화세가 확인되면서 달러 약세 요인이 이어질 수 있다"라며 "또 중국 위안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도 달러 약세 요인"이라고 짚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랠리를 이어가면 12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라며 "상반기에 잠깐 반등한다고 해도 작년에 비해 확연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서 1200원대 후반 정도로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달러지수와 관련해 "유럽의 상반기 경기 침체가 생각보다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중국과 일본의 통화정책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오면서 변동성이 줄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달러지수를 구성하는 주요 통화인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유지한 데다, 변동성이 줄어 달러 약세가 계속된다고 전망했다.
또한 한국의 무역수지가 악화돼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수 있지만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중론이다. 환 헷지 관련해서 이미 제도들이 개선된 상태라는 이유에서다. 중국 경기회복으로 수출 수요가 높아지면서 수지 개선에 대한 전망이 나오는 것도 원화 강세를 견인하는 요인이다.
다만 연준이 금리를 더 많이 올리고,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 경우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조 연구위원은 "1·4분기에 반등 신호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많이 튀어봐야 1300원 정도로 예상된다"라며 "1년 안에는 1100원대 후반까지 환율이 내려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김나경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