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최모씨는 설을 맞아 시댁에 있는 전라북도 군산에 가기 위해 남편, 자식들과 함께 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최씨의 손에는 금색 보자기로 싼 명절 선물세트가 가득했다. 최씨는 "시댁에 내려가면 시부모님 눈치도 봐야 하고 차례상을 차리느라 고단하지만 명절에 귀성하는 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명절에 부모님 뵙는 게 도리"
설 명절을 앞둔 20일 서울 각자의 기차역과 터미널 등은 귀성객 행렬이 이어졌다. 인근 공항에는 연휴를 맞이해 해외로 떠나는 인파들로 붐볐다. 귀성과 여행을 앞둔 이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기대감 등이 가득했다.
전라북도 부안으로 내려가는 회사원 김모씨(30대)는 하루빨리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하루 연차를 사용했다. 김씨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큰데 교통체증도 싫고 버스표를 구하기도 어려워 소중한 휴가를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최모씨(20대)는 "한동안 부모님을 뵙지 못했기 때문에 명절을 계기로 내려가 뵙고자 한다"며 "고향집에 가면 '앞으로 뭐 해 먹고살 것이냐'와 '진로는 정했냐' 등의 잔소릴 들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명절에 부모님을 뵙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귀성길에 오른다"고 전했다.
부모님이 자식 세대를 보러 가는 역귀성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위치한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은 김모씨(70대)는 "아들이 안동에서 일하면서 서울로 올라올 겨를이 없어 내가 직접 내려가기로 했다"며 "아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아 살림살이가 엉망인데 내려간 김에 집 청소도 하고 밑반찬도 만들어 주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귀성객 못지않게 바쁜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안전한 귀성행렬을 책임지는 버스 기사들이다.
이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버스기사 김모씨(40대)는 "손님들의 귀성행렬을 보면 고향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라면 "명절이 되면 도로 정체가 심해져 평소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배 이상 늘어나지만 손님들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우리 일이니 어떻게 하겠냐"고 웃음을 지었다.
서울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오전 서울역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지만 북적이진 않았다.
직장인 김모씨(29)는 "아버지가 지난해 은퇴하신 뒤로 어머니 고향인 천안에 집을 지으셨다"며 "다 지은 집은 처음 보는 거라 떨리고 기대된다. 내려가서는 그동안 못 도와드린 집안일도 돕고 엄마밥도 먹고 싶다"고 언급했다.
박모씨(38)는 "지난 추석 직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부모님을 뵈러 못 갔는데 올해 설엔 꼭 가려고 몇달 전부터 표를 끊었다"며 "하루라도 일찍 가기 위해 연차까지 냈다"고 했다.
이날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는 국제선 항공편 28대가 운항한다. 특히 오전 8~9시 7대가 출발하면서 오전 7시께에는 출국 수속을 받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날 11시 50분 기준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승객 수는 1만2988명에 육박했다.
시민들은 여행에 나서며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3년 만에 친구들과 대만 여행에 나선 김대경씨(33)는 허벅지 위쪽까지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다. 김씨는 "다음주 수요일(25일)이면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라 가방만 크지, 안에 짐은 많이 없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무겁게 (쇼핑해서) 돌아오려고 한다"며 웃어 보였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아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가 공항을 메웠다.
4년 만에 자녀 3명과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간다는 변모씨(56)는 큰마음을 먹고 일본을 경유해 미국 LA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당초 블랙프라이데이(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로 11월 마지막 주에서 연말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할인 기간) 전후로 저렴하게 직항 표를 끊으려고 했으나 여권이 만료돼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이후에는 푯값이 약 30만원씩 올라 있어서 경유 표를 샀다. 코로나19 동안 여행을 생각도 하지 않아 여권이 만료된 줄 모른 것이다. 변씨는 "빚내서 여행(트래블)을 한다"며 "빚트"라고 했다.
다만 주말이 겹친 짧은 연휴 때문에 일정이 맞는 가족 일부만 함께 여행을 가거나 가까운 거리의 여행지로 계획을 조정한 경우도 많았다.
배춘옥씨(81)는 41세 딸과 단둘이 비행기에 올랐다. 배씨는 "12월부터 미리 대만 여행을 계획해 신정에 차례를 지내고 간다"며 "그때부터 시간을 맞춰봤는데 다른 가족들은 시간이 안 나서 둘이 가게 됐다"고 전했다.
조장훈씨(32)는 짧은 연휴 때문에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조씨는 "원래 괌이나 유럽에 가고 싶었지만 최소 7일은 있어야 할 텐데 시간이 없어서 가까운 곳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동규 박지연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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