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의 대북억제 전략, 미국 핵태세의 변화와 연동 가능성
한국의 ‘핵우산’ 우려 미 조야 전문가들 일정 수준 공감...
한미 운명공동체, 뉴욕 위험해도 서울 지킬 것 믿을 수 있어야
북 도발 중단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압력’ 만들 수 있을 것
에스퍼 “주권적 결정 부정 안 되지만 확장억제 공약 믿어야”
한국의 ‘핵우산’ 우려 미 조야 전문가들 일정 수준 공감...
한미 운명공동체, 뉴욕 위험해도 서울 지킬 것 믿을 수 있어야
북 도발 중단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압력’ 만들 수 있을 것
에스퍼 “주권적 결정 부정 안 되지만 확장억제 공약 믿어야”
CSIS 산하 한반도위원회는 이날 공개한 ‘대북정책과 확장억제 (North Korea Policy and Extended Deterrence)’보고서에서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초 작업과 관련한 모의 계획 훈련을 동맹국들이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CSIS 한반도위원회는 존 햄리 CSIS 소장과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웬디 커틀러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등 미 전직 고위 관리와 한반도 전문가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미국의 유력한 싱크탱크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옵션을 공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서 위원회는 전술핵 재배치에 필요한 핵무기 저장고의 후보지 파악과 저장 시설 준비, 핵무기 관련 보안 훈련, 주한미군 F16이나 F-35 전투기의 핵 탑재 인증 절차 등에 대한 계획 연습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제 단계는 다른 모든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시행한 뒤에도 북한이 위협 수위를 높일 때만 추진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위원회는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보유가 거론되는 것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먼저 한·미 양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기획그룹(NPG)과 비슷한 '핵 공동기획 협의체'를 만들어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지금처럼 미국 전략사령부에 한국군 고위 연락장교를 계속 파견할 것을 제안하고 고위급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도 주문했다.
위원회는 또 미국이 이스라엘과 일본에 허용하듯이 한국도 미국의 미사일 조기경보체계인 ‘우주 기반 적외선 시스템’을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핵잠수함과 전략폭격기 등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전개하고 한국에 미군의 핵무장이 가능한 항공기를 수용할 시설에 투자할 것을 제안하고,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THAD·사드) 추가 배치와 한국의 ‘킬체인’ 능력 확보, 한국형 아이언돔 조기 배치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면 위협 수준을 고조하는 행위를 멈추라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무엇보다 확장억제에는 물리적 역량만큼이나 심리적 부분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북한과 한국은 미국이 서울이나 도쿄를 구하기 위해 워싱턴 DC나 뉴욕이 위험에 빠지더라도 확장 억제력을 동맹 방어에 사용할 의지가 있다고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그러면서 미국은 모든 범주의 미국의 방위 역량을 이용해 한국에 확장 억제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약속을 최고위급 수준에서 계속 알려야 한다며 미국과 한국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의 한국 공격 시 주한미군 2만8천명과 한국에 거주하는 많은 미국인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해 전략적으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한미일 3자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먼저 미국과 한국, 일본이 ‘블루라이팅’ 훈련과 같은 방식으로 3국간 전략자산 운용을 조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블루라이팅은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된 B-52H 장거리 폭격기나 B-1B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동시켜 유사시 북한의 핵심 시설 폭격하는 임무를 연습하는 훈련을 말한다.
또한 한미일 3국간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인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을 다시 열고 정보를 공유하며 미사일 방어와 위기 대응 계획, 3자 훈련 정례화 등으로 협력을 확대할 것도 주문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북한과의 협상과 관련해서는 대화가 재개될 때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미국이 북한에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의사를 계속 전달하고 대북특별대표를 상근직으로 둘 것을 권고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19일 보고서와 관련해 열린 설명회에서 위원회는 현 상황 아래서, 특히 한반도 내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확장 억제력의 두 번째 목적을 고려할 때 미국의 전술핵 배치나 한국의 핵무기 개발이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존 햄리 CSIS 소장은 한국 국민 70%가 북핵 위협에 따른 안보 불안으로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지한다는 설문조사를 봤다며 한국인들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 의지를 신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햄리 소장은 미국은 한국에 대한 방어와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한국의 신뢰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도 지난해 11월 5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지금 당장 논의할 문제는 아니지만, 결코 논의에서 제외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1990년대 초까지 오랫동안 미군 통제하에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했다”며 “논의에서 제외돼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현직 국방장관이었을 때도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면 아시아·유럽 동맹국과 배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미국은 중·러 견제를 위해 한국 및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 배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의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엔 “자국 방위에 대한 어떤 나라의 주권적 결정도 절대 부정해선 안 되지만,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공약을 믿어도 된다”며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 무기를 제공하거나 배치할 것인지가 토론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 공격은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과 한국의 대응으로 이어지고 북한 정권이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북한에 그런 위험을 분명히 알리고 그들의 나쁜 행동을 계속 억제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했다.
북한의 선제공격 우려에 대해선 “한·미는 북한을 즉각 압도할 역량이 있다. 한·미 연합군과 미군, 한국군은 핵과 재래식 영역 등 전쟁의 모든 영역에서 우세하다”며 “우리는 한국을 방어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북한과 교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에스퍼 전 장관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시 주한미군 및 한국군이 대만에 파병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주한 미군이 대만에 파병되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군의 파병 여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린 것”이라며 “한국군은 한국을 방어하며 북한에 강력히 저항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겠지만 대만을 지원하는 역할도 확실히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내 유력 싱크탱크에서 기존의 확장억제 전략 외에 다른 선택지들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한국이 북핵으로부터 느끼는 안보 우려와 기존 확장억제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도 일정 수준 공감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손 교수는 "하지만 해당 보고서가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건 아니며, 그보다는 전술핵 재배치라는 옵션도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옵션 중 하나로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보고서에서 또 다른 옵션으로 거론된 ‘핵 공동 기획협의체’의 설립은 한미 ‘핵공유’의 한 가지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 교수는 "해당 보고서나 에스퍼 전 장관의 발언 뒤에는 '미국 핵태세의 변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 시기 미국은 기존 전술핵을 기반으로 한 핵태세를 벗어나 실제 ‘사용가능’하고 ‘유연한’ 전술핵무기를 적극 활용한 핵태세로의 재편을 모색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구체적 수단으로 △B61-12 중력폭탄 △W80-4형 Tomahawk 핵순항미사일 △그리고 W76-2형 Trident-II 잠수함탄도미사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저위력 핵무기 3원 체계' 개발을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이 같은 핵태세의 변화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찬반이 나뉘어 △찬성하는 측에선 기존의 전략핵무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돼 실제 사용할 수 없어 그 결과 신뢰성이 매우 낮아 저위력 전술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사용가능한 핵전력'을 갖춤으로써 억제력의 신뢰성이 제고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측은 전술핵을 개발하게 되면 핵사용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실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해 온 핵태세의 전환을 바이든 정부도 이어갈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바이든 정부도 일정 수준 저위력 핵무기 개발을 유지하고 있으며 향후 한미의 대북억제 전략도 미국 핵태세의 변화와 연동되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