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우환 공간' 설립하면서 부산시립미술관 활기
2019년부터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국내 흔치 않는 전시 이어와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회고전 26일 개막
수퍼플랫 회화 영상 조각 등 170여점 전시...관람료는 공짜 화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부산에 왔다"
1월 초 빅뱅 지드래곤(35) 인스타에 공개된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인사 영상 배경이 밝혀졌다.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그의 개인전 첫 장면은 '727 드래곤', 그러니까 지드래곤 '권지용 컬렉션' 그림으로 시작된다. 다카시가 '부산에 왔다'고 신고할 만큼 지드래곤은 그의 슈퍼 컬렉터다.
6~7년 전 '빅뱅 시대'에 지드래곤 뮤직비디오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결을 같이했다. 컬러풀한 꽃잎을 가진 캐릭터를 지드래곤이 모자로 쓰면서 인기몰이한 다카시의 '스마일 꽃' 캐릭터는 '꽃방석'을 짝퉁 세계화 시키기도 했다. 빅뱅 멤버들이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며 '미술 세계'에 눈 떴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들이 어떤 작품을 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었다. 이번 다카시의 전시처럼 앞으로 K팝의 전사들이 세계미술시장 큰 손으로 드러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 전시에는 빅뱅 탑의 소장품도 있다)
전시장 입구를 막은 듯 거대하게 걸린 지드래곤 소장품 '727 드래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가로 3m 세로 4.5m 크기로 그의 상징과 특징이 모두 녹아 있다. 다카시를 뜨게 한 '도브( DOB)캐릭터'가 변형된 작품이다. 미키마우스 같은데 이상한 귀여움이 작렬했던 도브는 이 작품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12세기 일본의 유명한 시기산의 전설 에마키(Shigisan Engi Emaki, 信貴山縁起絵巻)에서 영감을 받은 구름을 결합한 작업이다. 2018년에 그린 그림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서구와 일본 등을 평평한 구조로 해석한 ‘슈퍼플랫(Superfla)'의 정신을 기괴하게 뿜어낸다.
◆'오타쿠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도쿄예술대 일본화 1호 박사
무라카미 다사키는 영리한 '일본화' 작가다. 인형같은 그림과 현란한 색에 홀려 귀엽다고 다가섰다고 '이게 뭐야!'하고 기겁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는 1993년 도쿄 예술대학 일본화과가 배출한 일본화 1호 박사다. 어릴적 만화광이었다는 그는 스스로 '오타쿠 예술가'로 칭하며 부상했다. 천박한 소비문화와 성 도착 현상 등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귀엽고 환상적이고 묵시론적인 '신 일본화'를 창출했다.
2002년 루이비통에 디자이너로 영입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주가를 경신했고 피규어 등 키덜트 상품을 양산했다. 170억 원이 넘는 작품(My Lonesome Cowboy)부터 피규어, 티셔츠, 인형, 슬리퍼 등의 상품까지 '일상속 예술'을 지배하고 있다. 2008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안에 들기도 했다. 일본 우키요에나 금박을 붙인 회화에서 영감을 받고 서양 현대 회화의 '평면성'과 섞어,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인 '슈퍼플랫'을 만들었다. 2002년 게이사이 아트페어를 세워 12년간 운영, 지금은 월드 스타가 된 아야코 로카쿠를 배출했고 '카이 카이 키키'라는 아트그룹을 설립 MR 등 후배들을 키워내 '아시아의 앤디워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유행이 지난걸까? 아트와 상품의 경계를 넘고 넘은 그의 전략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NFT 바람을 타고 제작한 디지털 아트도 죽을 쒀 판매를 중단했던 그는 영화 '해파리의 눈' 2탄까지 말아 먹고 2년전 "저 거덜났어요"라고 인스타에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이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아트 상품'같다. 대규모 회고전을 꾸민 이번 전시도 아트페어나 경매장, 또는 명품 컬래버레이션 같은 매장 분위기다.
부산에 온 무라카미 다카시는 천진난만했다. 기자들을 끌고 다니며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는 그는 '카이카이키키'스럽다.(우리말로 ‘괴괴기기(怪怪奇奇)’란 말로 ‘무섭지만 매력을 준다’는 의미다.) 너무 유명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작품 대신 그는 스스로 작품이 되기로 한 듯 했다. 젤리피시 인형 모자를 쓰고 나타나 두 손바닥을 펼쳐 내미는가 하면 발한쪽 발을 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포즈를 취했다.
10년 전 서울 플라토 전시에서 양복을 입고 등장해 '오타쿠 꼰대' 같았던 모습은 이제 덥수룩한 수염과 거친 머릿결로 노숙자나 교주 그 사이의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감은 여전했다. 뉴욕 모마에서 연 전시가 역대급 관람객을 동원한 것처럼 이번 전시도 부산시립미술관 역대급 전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과 상업사이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데 공헌했다"면서 "현대미술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좀비가 되어 나타난 그에게 동시대 당신의 미술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자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에 여러 장르가 있듯이 현대미술도 예술의 한 장르다. 관객들이 제 전시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도 이런 미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줄 것인지, 저는 그런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이 관점은 새롭네, 이 각도에서 보면 새롭네' 하고 흥미롭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지드래곤 아닌, 이우환 때문에 왔다...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덕분
한국에서 10년 만에 170여 점을 선보인 무카라미 다카시 대규모 회고전은 이우환 화백(84)덕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 2015년 상설 전시관인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이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특히 2020년 방탄소년단 RM이 부산 팬미팅 공연을 앞두고 찾아 온 후 그야말로 '방탄소년단 성지'로 부상했다.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를 쓴 방명록이 화제가 되면서 RM이 이우환 광팬으로 알려진 계기가 됐다.
'이우환 공간'은 2013년 부산과 대구가 ‘원조 경쟁’을 벌이며 치열한 유치전 끝에 부산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우환 예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이우환 개인미술관으로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와 디자인까지 이우환 작가가 직접 참여했다. 지상 2층·지하 1층 연면적 1400㎡규모다.
'이우환 공간'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신의 한 수가 됐다. 손 안대고 돈 버는 '봉이 김선달'처럼 부산시립미술관은 복받은 미술관이 됐다.
'이우환 공간'이 생겼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유명세는 일상의 힘을 이길 수 없다. 거대한 돌, 점 하나만 그려있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날마다 보기란 고역이다. '이우환 제대로 보기'도 하루 이틀이지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들해졌다. 상설전 운영의 한계였다. 이우환 화백이 제안을 했다. "내 친구들을 데려오겠다." 그렇게 '이우환과 친구들'전시가 기획됐고 2019년 안토니 곰리가 첫 친구로 부산땅을 밟았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조각가인 안토니 곰리의 신작이 소개됐지만 열풍은 일지 않았다.
내홍에 쌓였던 부산시립미술관은 관장이 바뀌면서 급물상을 탔다. 서울시립북서울 관장이었던 기혜경씨가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오면서 '이우환과 그 친구들'이 몸집을 키웠다.
"2019년 부임해서 보니 이우환 공간에서 곰리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엔 갤러리에서 가지고 온 전시인줄 알았는데 곰리 스튜디오에서 직접 나서서 선보인 전시였더라고요. 세계적인 대가의 스튜디오랑 접촉도 쉽지 않는데 이렇게 전시를 하다니...소 잡는데 쓰는 칼을 과일 깍는 칼로 쓰는 느낌이었어요."
기혜경 관장은 2020년 이우환과 그 친구들 두번째 전시는 시립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두 공간에서 펼쳤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빌비올라의 개인전으로 국내에서 흔치 않는 전시였다.
2021년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국내 최대 회고전이자 첫 유작전이 열려 화제가 됐다. 사진예술가, 설치작가, 비디오아티스트, 그리고 가장 위대한 프랑스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볼탕스키는 부산시립미술관 10월 전시를 준비하다 7월 타계했다. 갑작스런 별세로 작가의 전시 대부분이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만 열 수 있었다.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화백이 직접 나서 챙긴 전시로 볼탕스키와 이 화백의 의리와 예술 교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전시는 한국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희귀 전시가 됐다"고 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성황...부산시립미술관은 리모델링중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 전시다. 당초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작품이 설치되던 중 태풍이 문제가 됐다. 노후한 미술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결국 미뤄졌다. (개관한 지 23년이 돼 시설 노후화, 자동 항온항습 시스템 부재 등으로 운영에 애로를 겪어 왔다. 결국 부산시는 260억 원을 투입해 1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2024년 4월 준공과 재개관할 예정이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로 온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대규모 회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기간이 짧다. 1만원으로 책정됐던 관람료도 무료로 전환했다. 세계적인 인기 작가의 파격적인 전시다. 공짜 전시가 되면서 아트 상품인 굿즈 판매는 포기했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원래 굿즈 판매 매장까지 공간을 잡아놨는데 다카시측의 까다로운 조건과 짧은 전시기간 때문에 굿즈 판매는 없던 걸로 했다"면서도 아쉬움을 보였다.
이번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는 보험가액만 9500억, 1000억 가치의 작품이 공수됐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예산은 9억5000이었다. 하지만 우크라 전쟁에 유류와 운송비가 미친 듯 오르면서 상황은 급박해졌다.
"정해진 예산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고민 고민하다가 부산시의 허락을 받고 외부에서 펀딩을 받으려 했죠. 투자사와 협의해서 티켓 가격을 결정했는데 전시 기간이 짧아지면서 난감한 상황이 됐어요. 투자사도 밑지는 장사는 할 수 없잖아요."
기혜경 관장은 이번 전시 유치는 부산시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시에서 전시 기간도 짧아졌는데 오히려 다 오픈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게 나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기 관장은 "박형준 시장이 어차피 미술관이 돈을 받아 받자 남는 장사도 아니라면서 문화복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이번에 예산지원 등 시에서 풀어주지 않았으면 이번 전시는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흔희 볼 수 없는 거장의 개인전을 '무료 전시'라는 통큰 전략을 쓴 부산시는 국제문화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의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 거점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은 기본이고 부산시립미술관은 관광문화와 연동되어서 가는 것이 필수"라며 "미술관은 영화와 매칭하고 해양성에 타깃을 맞춘 동남아시아 아시아권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이우환 공간'덕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우환이 아니었으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선생님한테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했다. 앞으로 이우환 공간을 어떻게 활성화 시키고, 또 공간 자체는 작지만 이우환이라는 빅네임을 활용해서 어떻게 프로모션 해야 하는지가 숙제로도 남았다고 했다.
'이우환 공간'은 미술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유명 작가의 고향에 짓는 수장고 같은 미술관이 아닌, 동시대 살아있는 작가로서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교감하며 상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새해 벽두 미술계는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로 떠들썩하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등장한 '다카시 좀비'는 입소문을 내며 부산행에 오르게 하고 있다. "어머, 이 전시는 꼭 봐야 해!" 3월12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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