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 "정전 70주년, 조국의 현실 스스로 체화하고 큰 비전 세워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31 14:51

수정 2023.01.31 14:51

노벨과학상, 문화유산 보호 비결 공부차 방일
본지 관서지국 단독 인터뷰
일본을 방문 중인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사진=백수정 기자
일본을 방문 중인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사진=백수정 기자

【오사카(일본)=백수정 기자】 '언론인, 교육자, 국회의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국가 실현을 뛰어 왔습니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의 SNS 자기소개 글이다. 박 이사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그러나 박 이사장이 늘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탈북자의 대모'라는 수식어가 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18대 국회의원 시절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에 항의하며 11일간의 단식투쟁을 진행, 전 세계에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다.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이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박 이사장이 일본을 찾았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일본 방문의 목적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아주 오랜만에 일본에 왔다. 일본은 사실 무척 자주 다녔다. 북한인권 문제, 독도 문제, 사할린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으로 수없이 일본에 왔었지만 대부분 당일치기였고, 길어야 2박 3일 몰아서 볼일을 보는 형식이어서 개인적인 여행을 하기는 어려웠다. 사실은 관심사가 다양해서 일본이 어떻게 그렇게 노벨과학상을 받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고, 문화유산을 잘 지켜나가는 방식도 궁금했다. 그래서 빗장이 풀리자마자 나고야와 시라카와고를 보러 왔다.

―한국과 비교해 방일 외국인 관광객 정책이나 지방서 체험하는 일본 지차체 정책의 핵심은
▲한국은 아직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데, 일본은 많아서 깜짝 놀랐다. 지금은 비수기여서 시라카와고나 다카야마 같은 곳은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은데도 외국인 관광객들은 단체관광을 많이들 오더라. 그 비결은 일본의 과거를 보존하고 지켜나가려는 노력,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내면을 가꾸려는 노력이 이방인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아닐까 싶다.

―작년 일본서 열린 재일교포 북송 문제 집회 신변위협 이야기로 불참 배경 전말은
▲(웃음) 북한인권 문제라는 관점에서 재일교포들의 북송 문제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2020년에는 같은 주제로 일본의회에서 세미나도 했다. 그때도 니가타에 가 보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못 갔다. 니가타는 재일교포들을 북한과 일본 적십자사가 합동으로 북한에 보낸 국제적 사기 사건이자 불법행위가 벌어진 곳이다.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여서 재일교포들을 보냈고, 속은 것을 안 사람들이 돌아오려고 했을 때 일본은 일본인과 일본인 배우자들에게만 귀국을 허용했다. 그것은 차별적인 대우였다. 명백한 차별. 그 후 탈북해서 온 재일교포와 그 후손들이 당시의 일들을 증언하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른다. 한국 국민도 일본국민도. 그래서 그 현장인 니가타에 가서 북송 관련된 일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분들도 만나보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리더라.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내가 독도 문제에 천착해 온 데다가 아베 전 수상에 대한 테러도 발생하면서 불상사가 날 수도 있다고 말려서 못 왔다.

―국회의원시절 본적을 독도로 옮겨서 최근 물망초 활동에 받은 불이익이 있었는지
▲그런 건 없다. 독도는 영토문제고, 물망초는 북한인권 문제니까. 일본인 납치 등 북한인권 문제엔 서로 협력하지만 영토문제야 양보할 수 없는 아주 첨예한 문제다.

―올해 2월 22일 일본 다케시마의 날에 일본측서 물망초에 비공식 접촉이 있었나
▲그런 것은 없다.

―올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전 윤석열 대통령 방일 관련 의견은
▲일본은 애증이 교차하는 나라지만 냉정해야 하지 않겠나.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미래를 위한 관계설정도 절실한 만큼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제대로 인식하고 만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본 역대 총리들의 일본인 납치 관련 ‘파란 배지’ 부착에 대한 생각은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어느 정당 소속이든 일본의 총리들은 전부 업무개시일부터 끝날 때까지 모두가 파란 배지를 달고 다닌다. 그것도 납북자가족회에 돈을 내고 직접 사서 달고 다닌다. 북한에 납치된 사람들을 정부가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선서 같은 상징이다, 파란 배지는. 그 배지를 단 일본 총리들은 어디를 가든, 심지어 연미복을 입을 때에도 빠트리지 않고 단다. 정상회담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첫 번째가 국토방위, 두 번째가 자국민보호다. 그런 점에서 자국민이 다른 나라에 납치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면 당연히 송환을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는 일본이 솔직히 부럽다. 일본 총리의 옷깃에 붙어 있는 파란 배지는 바로 국가의 존재이유를 보여주는 상징이니까.

―사단법인 물망초는 비전으로 탈북자 및 역사의 조난자들을 위해 일하는 민간단체라고 소개되던데 현재 물망초의 주요방향과 핵심역량은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 FORGET ME NOT’이라는 의미다. 잘못 없이 나라가 제 구실을 못 해서 포로가 되었거나, 끌려갔거나, 죽임을 당했거나, 상해를 입었다면 언제라도 국가는 그들을 보듬고, 데려오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그렇다. 예전엔 못 살아서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잘 살면서도, 충분히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런 분들을 외면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컨대 6.25 때 포로가 되어 70년 이상을 북한의 탄광지역에 억류되어 강제노역을 하고 계신 분들, 사할린 한인들, 731부대 희생자들 등등 자기 잘못 없이 신산했던 우리의 역사 속에서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타지 못하고 곤경에 빠지신 분들을 나는 ‘역사의 조난자’들이라고 부른다. 물망초는 그런 분들을 우리가 직접 구출하거나 도와드리지는 못 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는 뜻에서 물망초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시겠지만 물망초는 아주 작은, 보잘것없는 풀꽃이다. 개인은 국가 앞에서 한없이 작고 힘도 없는, 그러나 꽃처럼 귀한 대우를 국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국가의 주인이다.

―물망초의 꾸준한 ‘북한 강제실종범죄 책임규명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이유는
▲바위를 깨는 것은 도끼도 망치도 아니다. 물방울이다.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구멍을 내고 그 물이 얼면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던 바위에 금이 가고 서서히 깨진다. 물망초는 작고 약한 꽃이지만, 그 꽃의 향기가 퍼져나갈 때 단단한 빗장도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공동선언문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다. 미사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선언문을 기회가 될 때마다 발표를 하면 몰랐던 사람들도 차츰 알게 되고, 알게 된 사람들은 말을 하고 행동도 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보이면 행동하게 되어 있고. 그게 바로 바위를 깨는 작은 물방울이 되는 것이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메아리가 치리라 믿으면서.

―북한 인권 피해자 활동 관련, 일본의 북송 관련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북송 당한 사람들, 특히 기관이나 국가가 주도해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건들에 대한 활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인권을 침해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우리가 반인도적 범죄라고 부르는 집단학살, 포로억류, 납치, 인종차별, 강제노역 같은 범죄가 그에 속한다. 그들을 용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그 다음 단계다. 용서는 뉘우치는 자에게 하는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똑같은 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NEVER AGAIN’의 마음과 다짐이 없으면 동일한 범죄는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물망초는 느리지만 꾸준히, 뚜벅뚜벅 이 길을 간다. 우보천리, 느린 소가 천리를 가는 법이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서 당선이 되었다면 꼭 추진하려 했던 정책은 있다면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싶다. 21세기를 살면서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한다면 되겠는가? 시대착오적인 사상교육도 문제고, 전근대적인 교육방법도 문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서구국가는 물론 일본, 인도 등 아시아국가들까지 21세기를 맞으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교육개혁이었다. 우리는 꿈도 못 꾸는 개혁을 그들은 해냈다. 오바마는 시대 부적응 교사들을 내보냈고, 비전제시를 못 하는 학교를 없애버렸다. 지금 다른 나라들은 4차 산업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고 있다. 국어 수학 역사 과학 과목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융복합교육을 하고 있다. 단순히 코딩교육만이 아니다. 스팀(STEAM)(Science, Technologe, Engineering, Art, Mathematics)교육을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먹거리는 마련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과편제와 학제편제가 아직도 전근대적이다. 새 정권 들어서서 이제야 IT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대학위주다. 초중고 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

―과거 북한인권 운동가로서 한원채 인권상 수상, 물망초가 故 박구호 장학금재정 계기는
▲한원채 인권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이 받아서 영광이다. 박구호 장학금은 사실은 우리 아버님 성함으로 나와 남편이 기금을 마련해 만든 장학금이다. 국가유공자의 자녀들이 군 복무를 끝낼 때 대학에 등록금 걱정 없이 복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장학금이다. 9살에 아버님을 잃은 나도 참 어렵게 공부했다. 35살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은 너무 가난해서 야간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셨고, 6·25가 터지자 군대에 이병으로 입대해서 부사관과 장교가 되셨지만, 공무 수행 중에 들어가셨다. 제대군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군대가 가서 썩는 곳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탈북민 대학생 등과 6·25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데
▲올해가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내 꿈은 정전 70주년을 기념해서 참전국 15개 나라의 대학생 70명, 북한출생의 탈북 대학생 70명, 대한민국 출생 대학생 70명 등 210명과 함께 DMZ를 걷는 것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강국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나라의 대학생들에게는 감사함과 함께 우리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보여주고 싶고, 탈북 대학생들에게는 그들이 북한에서 잘못 배운 우리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또한 우리의 대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배운 잘못된 역사 말고, 직접 걷고 보고 들으며 깨우친 조국의 현실을 스스로 체화하고 큰 비전을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라는 생각으로 꿈을 꾸고 있다. 한두 푼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십시일반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웃음)

sjbae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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