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을 끌어내린 것은 우리 산업의 기둥 반도체다. 한 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경제 기여도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크다. 업황 우려는 계속 나왔지만 현실은 매번 더 혹독하다. 삼성전자는 작년 4·4분기 96%나 쪼그라든 반도체 영업으로 시장에 충격을 줬다. 1일 나온 SK하이닉스의 실적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실적은 작년 4·4분기 1조7012억원 적자다. 1년 전 4조원 넘는 이익을 낸 것과 비교하면 기록적인 쇼크다.
SK의 반도체 적자는 10년 만이라고 한다. 업황에 예민한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비중이 90% 이상인 탓에 타격이 더 컸을 것이다. 문제는 갈수록 실적 낙폭이 커지고 있고, 업황 바닥은 가늠조차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작년 동월 대비 44.5%나 추락했다. 지난해 12월 -27.8%보다 감소 폭이 더 크다. 반도체 기업들은 올해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점점 짙어진다.
급박한 현실에서 정부의 낙관론은 성급하다고 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재정경제금융관 간담회에서 1월이 지나면 시차를 두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나라 수출부진을 이유로 성장률을 최근 다시 하향 조정했다. 주요국 성장률은 줄줄이 올리면서 우리만 3연속 낮춘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거듭되면서 주요 산업들의 국가 대항전 성격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안보와 직결된 반도체의 경우 국가적 차원의 큰 그림이 없으면 시장에서 밀리는 건 시간문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대만의 TSMC를 따라잡는 일이 갈수록 버거운 것도 이런 이유다. 정부의 지원책은 더 촘촘해져야 한다. 생색만 낸 'K칩스법'으론 될 일이 아니다. 반도체를 넘어 원전, 방산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맞춰 기업도 적극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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