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가 5일로 100일을 맞이했지만 가족과 지인 등 가까운 이들을 황망하게 보낸 유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참사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수사는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채 피우지도 못한 소중한 영혼을 하늘로 떠나보내지 못한 채 가슴 한 켠에 묻은 지도 오래다.
지난해 11월 1일 출범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74일간 활동하며 수사 결과를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수사가 '윗선'까지 이르지 못하고 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지적을 받받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 검찰이 보완수사에 나섰지만 진정한 책임 규명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기대감에는 못미치는 상황이다. 유가족들의 바람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면서 그나마 간신히 부여잡은 유가족들의 마음은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뜨거웠던 여론의 관심도 차츰 식는 거 같아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유족들이 준비한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의 경우 당초 예정된 광화문광장이 아닌 세종대로에서 치러졌다. 광화문광장 사용에 대해 서울시가 불허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마무리되지 않은 '수사'
5일 경찰과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특수본은 사건 관계자 538명을 조사해 총 24명을 송치하고 6명을 구속 송치는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 결과를 내놨다.
기관별 송치 인원은 경찰 8명, 용산구청 3명, 소방 2명, 서울교통공사 2명 등이다. 나머지 2명은 해밀톤 관광 대표이사와 A주점 대표다. 이 가운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4명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소속 공무원 2명이 구속됐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가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모일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소방당국이 적절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같은 발표에도 이태원 참사 수사는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오히려 특수본 수사의 한계만 드러냈다는 평가다. 윗선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경찰청 등에는 책임을 물지 않아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물론이고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 인사들은 한차례 소환조사도 받지 않았다.
이제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할 공은 검찰로 넘어간 상황이다. 특수본에서는 닫지 못한 윗선까지 검찰의 수사가 가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경찰에서 피의자를 차례로 넘겨받으면서 별도 수사팀을 꾸리고 안전사고 전문인 대검찰청 최정민 검찰연구관을 파견받아 대대적 보강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현재까지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 등 17명(법인 포함)을 재판에 넘겼다.
또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송치된 김광호 서울청장을 지난달 18일과 26일 잇따라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아울러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이 장관과 윤 청장의 수사기록도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대치 속 치러진 '추모제'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태원 참사 추모에도 '허들'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추모대회 개최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4일 오전 11시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 분향소에서부터 대통령집무실 앞 삼각지역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추모 행진을 시작했다. 이어 행진이 세종대로 서울도서관 앞에 이르자 기습적으로 분향소가 진행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이 이를 저지하려다 뒤로 밀렸고 이후 서울시 공무원 70여명이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분향소에는 희생자 159명의 영정이 올려졌다.
서울광장에 분향소가 설치된 이후 광장 옆 세종대로에서 추모대회가 이어졌다. 유가족 150여명을 포함한 5000여명이 모였으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행안부 장관 파면 등을 요구했다.
당초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서울시가 불허해 광화문광장이 아닌 세종대로에서 열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일도 발생했다. 유족들은 서울광장 옆 세종대로도 집회 신고를 한 곳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행진 신고만 했을 뿐 집회 신고는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집회는 그대로 강행됐으며 다행히 큰 충돌 없이 2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경찰은 참석자들에게 미신고 집회라고 알리며 해산을 명령했으나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유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고 힘을 모아달라. 대통령의 공식사과, 이상민 장관의 파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지금 유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분명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진정한 사과, 다시는 이 땅에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식지않는 성원일 것이다.
coddy@fnnews.com 예병정 이진혁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