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연극 '갈매기'를 보러 갔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다. 배우 이순재가 처음 연출했다길래 궁금했다. 이순재는 연출자·배우로 1인2역을 했다. 그는 올해 88세다. 이순재는 앞으로도 10년은 거뜬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예계에서 뒷방 늙은이란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산업계도 다르지 않다.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나이는 43세(2021년 기준)로 높아졌다. 나라 전체가 고령화 파도에 올라탔다. 2년 뒤면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단군 이래 이런 나라가 한반도에 존재한 적이 없다.
송해·이순재·김혜자 3인의 공통점은 뭘까. 팔순, 구순이 되어서도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일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잘라 말한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장수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노후에는 일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노인정신과 의사인 와다 히데키는 '70세가 노화의 갈림길'이란 책에서 "일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최고의 보약"이라고 단언한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도 좋고 봉사활동이나 취미도 좋다. 퇴직했어도 집에 틀어박히지 말고 밖에서 의욕을 잃지 말고 활동하라는 게 와다 히데키의 조언이다.
이처럼 중요한 노인 일자리가 한국에선 묘한 대접을 받는다. 얼마 전 한 신문은 '손주는 노는데… 취업자 다섯 중 하나는 노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고용통계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가 제일 많이 늘었다며 푸념 섞인 분석을 빼놓지 않는다. 자연 노인과 젊은층이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세대갈등 구도가 형성된다.
이건 옳지 않다. 젊은층 일자리, 물론 중요하다. 그에 버금갈 만큼 노인 일자리도 중요하다. 둘을 제로섬 게임으로 볼 이유도 없다. 60·70대가 원하는 일자리, 20·30대가 원하는 일자리가 과연 얼마나 겹칠까?
윤석열 정부는 계속고용제 도입에 군불을 때고 있다. 현행 60세 정년을 없애든 연장하든 또는 은퇴자를 재고용하든 노사 자율에 맡기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속속 노인층에 편입되는 중이다. 반면 세계 최저 출산율은 오를 기미가 없다. 이 판국에 일자리를 세대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계속고용제와 같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노인 문제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어깨가 무겁다. 재정으로 반짝 일자리를 제공하던 시대는 지났다. 노인 일자리는 시급히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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