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1896년 조선 고종 임금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 2세 대관식에 전달한 ‘흑칠나전이층농’, 장승업 ‘고사인물도’, ‘백동향로’ 등 ‘외교선물’이 9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특별전 개막식을 통해 127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8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이 중 ‘흑칠나전이층농’은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소재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지원 사업’을 통해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 복원예산을 지원함으로써, 이번에 함께 공개될 수 있었다.
크렘린박물관이 이번 전시(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에 출품한 유물들은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2세 대관식(1896.5.26.)을 맞아 민영환(1861~1905)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외교선물’ 가운데 일부다.
고종이 전달한 선물들은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그 목록의 일부가 언급된 바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특별전 전시과정에서 1896년 고종이 전달한 선물은 총 17점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특별전 출품작은 ‘흑칠나전이층농’ 1점, 장승업 ‘고사인물도’ 2점, ‘백동향로’ 2점 등 총 5점이며, 이는 모두 크렘린박물관 소장품들이다. 그밖에 나머지 선물들은 현재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소장된 것들이다.
고종의 선물들 가운데 현재 크렘린박물관 소장품은 “19세기 수준 높은 조선 공예 및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 유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흑칠나전이층농’의 경우, 고종의 특명에 의해 당대에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되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농 하단부에 나전 십장생을 부착해 황제로 즉위하는 니콜라이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점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그간 1920년 일본에서 ‘실톱’이 도입되면서 나전공예에 ‘끊음질’ 기법이 유행했는데, 그보다 30여 년 앞서 ‘흑칠나전이층농’에 이 기법이 월등히 적용된 것으로 확인돼 공예사적으로도 ‘흑칠나전이층농’이 매우 중요한 유물임을 보여준다.
장승업 ‘고사인물도’의 경우, 크렘린박물관 소장품 4점이 처음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2점이 이번에 공개되는 것이다. 조선의 4대 화가로 꼽히는 장승업(1843~1897)의 이번 작품들은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크기만 174cm가 넘는 보기 드문 대작에 속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장승업의 각 작품에는 ‘朝鮮(조선)’이라는 국호를 ‘吾園 張承業(오원 장승업)’ 서명 앞에 붙였다. 이는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사례로, 이 작품이 ‘외교선물’을 전제로 창작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백동향로’의 경우, 사각과 원형의 기형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하는 것으로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길상 문자를 기준으로 직선과 유려한 곡선을 조화롭게 융합해 정교하게 투조한 문양의 구조는 일반적인 공예품에서 보기 힘든 복잡하고 세밀한 얼개를 보여주고 있다. 사각향로 노신에 ‘향연(香煙)’, 둥근향로 노신에 ‘진수영보(眞壽永寶)’를 각각 새겨 대관식을 축원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번 크렘린박물관 특별전에 출품된 ‘흑칠나전이층농’을 복원하는데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온전한 복원을 돕고, 나아가 전시로 이어지도록 함으로써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바 없던 1896년 ‘외교선물’의 실체를 크렘린박물관과 함께 공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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