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경쟁
대중 봉쇄·자국 중심의 美
분산된 공급망 미국에 집약해 생태계 강화
기업 中진출 막고 美·日·대만 동맹으로 견제
굴기 성패 예측 갈리는 中
외국기술 없으면 기반 되찾는데 20년 걸려
거대한 내수시장·풍부한 인력이 지탱 전망도
갈길 바쁜데 규제 발목잡힌 韓
신규·증설 복잡한 인허가에 네트워크 부족
반쪽짜리 'K칩스법'...개정안 아직 제자리
대중 봉쇄·자국 중심의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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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갈등과 탈아시아 전략
반도체 패권 전쟁은 크게 두 갈래다. 강대국의 생산망 확보와 기술 확보·추격 경쟁이다.
그 중 반도체 밸류체인 재편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미국은 대(對)중국 봉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대만과 함께 한국에 반도체동맹 '칩(Chip)4'를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가 자국 경제·안보와 직결된다는 것. '실리콘 실드'(반도체 방패) 구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말 "미국은 더는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인질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공급망이 되겠다고 했다. 이는 미국 우위의 세계 패권 불확실성과도 연관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벨트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는데, 소위 위험이 잠재된 국가들이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높은 대만, 북한과 휴전 중인 한국이 그렇다. 이는 양면성을 갖는다. 위험국의 반도체 자산을 보호하는 명분의 대중국 방어 군사력 유지, 미국으로 반도체 집적벨트를 이전해야하는 이유를 갖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권역내 생산점유율을 2030년까지 20%(현재 9%)로 높이겠다고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의 반도체 전략은 명확하다. 자국 내재화-공급망 집적화다. 세계에 분산된 공급망을 미국에 집약해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30년 전에는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생산의 8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아시아가 그렇다. 공급망을 한 지역에 의존하는 게 실패였다"고 인정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비율은 현재 12%에 불과하다(중국은 15% 수준). 바이든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법'이 압박 수단이다. △반도체 시설 건립, 연구개발에 527억달러 투입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5년간 120억달러를 투입해 매년 반도체 인재 1만명 육성이 골자다.
대중국 견제는 구체적이다. 미국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10년간 진출(일정기술 이상의 투자)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중국 우회로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 기업(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램리서치)의 대중국 반도체 첨단 생산장비(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수출도 금지했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가 있는 네덜란드(ASML), 일본(도쿄일렉트론)에도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은 반도체장비 해외 매출(2021년 2조9705억엔)의 3분의 1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타격을 감수한 안보 전략적 결정을 한 것이다.
미국의 힘은 즉각 확인된다. 2020년 이후 미국내 반도체 투자 유치(40여건)가 2000억 달러를 넘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와 SK그룹도 미국에 2000억달러 이상의 신규·증설 투자를 약속하고 추진 중이다.
■미국-일본-대만 삼각동맹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 장비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에서 강자(각각 세계시장점유율 1, 2위)다.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TSMC를 갖고 있다. 이들 3국의 반도체 동맹은 파괴력이 크다. 특히 중국의 군사 확장을 막아야하는 안보 면에서 단단히 묶여있다.
①원 팀 재팬 "부활하라 반도체"=1980년대 반도체 시장 50% 이상을 석권했던 일본은 현재 점유율이 10%에도 못미친다. 이런 일본이 자국의 반도체 공장 건설에 수조엔의 보조금을 투입, 부활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산업 기반 긴급 강화 패키지 대책(2021년 11월)이 그것이다. 지난해 말 반도체 관련 예산 1조3000억엔(약 12조4000억원)을 추가로 책정했다. 반도체 공급망 강화가 핵심인 경제안보법(2022년 5월)도 올 봄에 시행된다. 사실상 TSMC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TSMC는 2021년 10월 일본에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 첫 발표).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외국기업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다. 정치권과 정부, 민간과 학계가 결집했다. 도요타·키옥시아·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 8개가 합작해 반도체회사 '라피더스(Rapidus, 맹렬한·빠르다는 뜻)'를 설립했다. AI 차세대 반도체 생산이 목표다. 양산 시기를 앞당겨 2025년 상반기까지 2㎚(나노미터·10억분의 1m) 프로토타입 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700억엔을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맞붙겠다는 것이다.
대만·미국과의 반도체 협력은 긴밀하다. TSMC는 소니, 덴소와 합작으로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일본 정부가 4760억엔(건설비용의 40%)을 지원하는 조건이다. 내년 12월 생산, 일본 우선 공급이 목표다. 오타 야스히코 일본경제신문 위원은 저서(2030 반도체지정학)에서 "미국은 일본의 동맹국이지만 TSMC유치에선 라이벌이었다"고 했다.
②대만 "사수하라 반도체"=TSMC를 비롯해 UMC(파운드리 3위), 미디어텍(팹리스 4위) 등 글로벌 톱5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에 있다. 그 중 TSMC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TSMC는 지난해 3,4분기 연속 매출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산업에서 단기적으로 대만을 대체할 나라가 없다"고 평했다.
2300만 인구의 대만이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힘에는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만의 운명이 걸린 것이다.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지난 2021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시진핑 주석 집권 3기(2022년~2027년)가 끝나는) 2027년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쓴 책('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선 미·중 경쟁이 4~5년 내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대만 반도체 집적지인 서안 신주는 중국대륙과 가장 가깝다. 중국 군은 푸저우, 닝보 공군기지에서 초음속전투기로 5분이면 대만까지 날아갈 수 있다. 대만의 반도체기업이 미·일, 유럽 등 전략국가에 생산기지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안보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 TSMC의 창업자 장중머우 전 회장은 "많은 대만 국민은 TSMC 등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만든 '실리콘 실드'가 대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초대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곳에서 내년부터 4나노, 2026년부터 3나노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독일 드레스덴에도 신공장 건설을 협의 중이다. 일본도 현재 착공한 구마모토 공장에 이어 TSMC 제2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 정부도 지난달 7일 반도체법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처리, 지원 대책을 강화했다. 세액공제 확대(R&D투자비 15%→25%, 시설투자의 5% 추가 공제)가 핵심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가 목표다. 반도체 설계·생산·사용의 완전한 자립(중국 제조 2025 전략)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핵심기술이다. 이를 확보하면 양산 능력을 갖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이 화웨이를 필두로 중국 기업을 겨냥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하지만 중국 굴기의 성패에 관한 예측은 갈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달 초 네덜란드·일본이 중국 반도체 봉쇄에 동참키로 한 것을 두고 "외국 기술이 없으면 중국이 잃어버린 반도체 기반을 되찾는 데 최소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AI 기술 등 개발 속도는 주춤해질지라도 굴기 자체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세계 최대 전기차시장, 전세계 반도체수요 35% 차지), 풍부한 고급 인력 공급이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SMIC(세계 5위), 화훙그룹(6위), 넥스칩(9위) 등 중국 기업들이 합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두자릿수(10% 정도)로 높이고 있는 이유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을 4% 가까이 올렸다. 지난해 6월 블룸버그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를 인용해 "지난 1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중 19곳이 중국 기업"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은 저부가 차량용 반도체 제조, AI 반도체 설계 등으로 미국의 봉쇄를 버티며 맞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역대 최대인 1조위안(약 184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한다.
■한국, 정쟁과 규제에 발목
한국은 계산이 복잡해졌다. 미·중은 반도체 최대 교역, 일·대만은 경쟁 관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중에 반도체 공장이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 40%가 중국 시장이기도 하다. 반도체 장비 수입의 70% 이상을 미·일·네덜란드에 의존한다. 반도체동맹 칩4 참여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은 대·중소기업이 많은 일·대만의 반도체 생태계와는 다르다. 삼성·SK하이닉스 등 몇몇 대기업 의존 구조다. 신속한 의사결정 등의 장점은 있으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대기업 특혜 프레임도 따라붙는다. 신규·증설에 필요한 토지·용수·전력 등에 관한 관계당국의 인허가도 복잡하다. 국가 주도의 대만과 비교하면 한국은 착수부터 공장 가동까지 적어도 5~6년은 더 걸린다는 분석이다. 앞서 가는 반도체 기술 격차를 지켜야 하고 고급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경기 변동성이 큰 메모리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구조 탈피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 및 투자 확대 △수도권 신규 증설 인력·투자 규제 완화 등 전문가들의 제언도 쏟아진다. 그러나 반도체 강국의 여유일까 당국의 위기의식은 찾기 어렵다. 반도체 시설투자 인허가, 세액 감면 등을 지원하는 이른바 'K칩스법'은 다시 처리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반쪽짜리(설비투자 세액공제율 대기업 6%→8%)라는 비판이 컸다. 뒤늦게 정부가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올리는 개정안(조세특례제한법)을 내놓았으나 국회는 소모적인 정쟁에 하세월 중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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