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사고가 나던 날 아침, 겨우 잠에서 깬 내게 우리 혜진이는 조그마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대구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340여명의 사상자(사망 192명, 부상 151명)를 낸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주기를 나흘 앞둔 14일 유가족 전재영씨(62)는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20년 전 그날의 아픈 기억을 힘겹게 꺼냈다.
전씨는 대구지하철 참사로 아내와 당시 7살이던 딸 혜진이를 한꺼번에 잃었다. 참사가 발생한 2003년 2월18일.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오전 혜진이와 엄마는 경북 김천에서 영남대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혜진이 병원 치료를 위해 김천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병원에 다닌 지 1년. 혜진의 마지막 진료날 화를 당했다.
전씨가 기억하는 사고 후 모녀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의 상황이다. "사고 후 집사람과 혜진이 시신을 수습할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담당자가 제게 '다른 분들 시신은 탈출하기 위해 문 앞에 몰려 있었는데 혜진이와 아내(전씨 부인)분만 문과 문 사이 가운데에 단둘이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 삶을 포기하고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나를 얼마나 찾았을까, 내 이름을 얼마나 불렀을까'라고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김천에서 컴퓨터학원을 운영하던 전씨의 삶은 참사 이후 송두리째 달라졌다. 무고하게 희생된 아내와 딸을 위해 생업은 뒤로 미루고 희생자 추모사업과 진상규명에만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온전한 추모사업의 완료다. 참사 후 안전교육을 위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팔공산 자락에 조성됐지만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추모를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바라고 있다.
전씨는 "2003년 당시만 해도 희생자 추모사업과 명예회복이 빨리 완료될 줄 알았다"며 "그때 대구시하고 약속을 이미 다한 상황인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하면서 20년이 흘렀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됐으니 이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에 별도의 추모공간이 생기고 추모공원이라는 명칭이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와) 병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씨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 추모사업을 좀 더 이른 시간 내에 완료했더라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더 빨리 생겨 그런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짐작이 가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전씨는 "과거에 보면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국가나 지자체는 손배상만 하고 끝냈다. 참사에 대해 기억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고 추모탑, 추모묘역도 있어야 한다. 그게 내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사 당시 19살 대학생 딸을 잃은 황명애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65)의 바람도 비슷했다.
14일 뉴스1과 만난 황 사무국장은 "제 자식이 20년 살다 갔기 때문에 제가 20년을 투쟁하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추모사업의) 결론이 나지 않으니 '내가 20년을 더 투쟁해야 하나' 이런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온 거지, 사람 목숨이 아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대구시 등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 조성된) 추모탑을 '안전상징조형물'이라고 추모 묘역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이제라도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살아있었으면 마흔살이 됐을 딸에게 하고픈 말을 묻자 그는 "제일 잔인한 질문"이라면서도 아프게 말을 꺼냈다.
"참사 20주기를 맞아 딸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도 일주일째 쓰다가 못 쓰고 있어요. 딸이 그립지 않아서 못 쓰는 게 아니고, 보고 싶지 않아서 못 쓰는 게 아니에요. 지금 딸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못 쓰는 거예요. 저기(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에다 저렇게 묻어 놓고, 이름 한자 새겨주지 못하는 엄마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래서 미안해서 편지를 못씁니다. 제가 지금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1079호 전동차에서 한 지적장애인이 휘발유에 불을 질렀다. 삽시간에 번진 불은 마주오던 1080 전동차에 옮겨 붙여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당시 전동차 기관사들이 화재 발생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고 역사 밖으로 대피하거나, 전동차 마스콘키를 뽑아 탈출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사 20주기를 맞아 13일 전국의 재난·참사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정당, 일반 시민 등이 추모위원회를 발족했다. 추모위원회에는 대구지하철·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전국에서 발생한 재난과 참사 유가족 등은 2180명 이상이 참여한다.
추모위는 참사 당일인 18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20주기 추모식을 연 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다목적실에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등 다양한 추모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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