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한 마을의 대감집 부인이 열병을 앓았다. 부인은 열이 오르면서 동시에 변비가 심해지고 배에 가스가 많이 차면서 부풀어 올랐다. 복창이 심해서 숨을 쉬기 힘들어 가쁘게 숨을 쉬었고 고열이 오를 때는 정신까지 혼미하면서 간혹 헛소리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하품을 하다가 턱까지 빠져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물도 삼키기 어려웠다.
여러 의원들이 약을 썼지만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대감은 수소문에서 한 의원을 불러 진찰을 청했다. 점심경에 이르러 의원이 도착했다.
대감은 “부인을 살려주시게나.”라고 의원에게 부탁했다.
의원은 부인이 누워있는 침실에 들어 진맥을 해 보더니 “육맥이 침활(沈滑)하고 장대(長大)하며 힘이 있으니 이것은 지독한 완담(頑痰)이 열독(熱毒)을 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은 담적(痰積)이 화(火)에 상한 것입니다. 이에 열병으로 생긴 열독(熱毒)을 얻어 담(痰)이 온갖 곳에 횡행하고 있으니, 쉽게 공격해서 씻어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대감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공격할 수 없다면 처방이 없단 말인가?”하고 물었다.
의원은 “이런 경우에는 마땅히 대승기탕(大承氣湯) 4~5첩을 2시간마다 나누어서 달여 계속 써야만 겨우 삿된 독기를 꺾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대감은 “아니, 대승기탕이라면 아주 독한 약이 아닌가. 대승기탕을 잘못 사용하면 없던 병이 생기고 있던 병은 오래 간다고도 하는데, 확실한 병증인가?”라고 걱정스레 물었다.
대승기탕은 상한병(傷寒病)으로 인해서 장의 기운이 막혔을 때 사용하는 처방으로 비슷한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들 중에서도 가장 독한 처방이다.
의원은 “의서에는 오한이 없고 도리어 열을 싫어하며 갈증이 생기고 헛소리하며 배가 더부룩하고 숨이 차며 손발에 축축하게 계속하여 땀이 나면 급히 설사시켜야 하니 대승기탕을 쓴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지금 상한 이열증(裏熱症)이 심해서 마치 아궁이 불이 몸을 훈증하는 것과 같아서 안으로부터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이는 오로지 하법(下法)만이 살길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법(下法)은 설사를 시키는 방법으로 아주 공격적인 치료법 중에 하나다.
그러면서 “하법에 쓰는 처방으로는 대승기탕이 제일 세고 소승기탕(小承氣湯)이 다음이며, 조위승기탕(調胃承氣湯)이 그 다음이고 대시호탕(大柴胡湯)이 그 다음입니다. 지금 부인은 위(胃)가 실하여 조열이 있고 헛소리까지 하고 변폐(便閉)까지 있으니 가장 쎈 약인 대승기탕이 적방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의원의 설명을 듣고서 의원이 약재를 가져다 주지도 않았는데, 대감집에서는 약재를 어디서 구했는지, 벌써 대승기탕 3첩을 약탕기 3개를 이용해 한첩 분량씩 다리기 시작했다. 대감집에서는 그만큼 촌각을 다투는 상황으로 여긴 것이다. 약탕기 옆에는 다리지 않은 첩약이 온전하게 두 첩이 더 있는 것을 보면 모두 5첩을 조제한 듯 했다. 의원은 자신이 약재를 준비하지 않아 수고로움을 덜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탕약이 다려지면 서둘러서 식혀서 먹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라고 재촉했다.
탕약이 모두 다려지자 우선 약탕 한 개에서 다려진 탕약을 사발에 부어 조금 부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부인의 턱이 빠져 있어서 탕약은 그냥 흘러내렸다.
의원은 하인을 시켜서 표주박에 대나무를 박아서 깔대기처럼 만든 다음 대나무 아래쪽을 부인의 목구멍 쪽에 넣고 표주박에 탕약을 부어 천천히 삼키게 했다. 다행스럽게 부인은 약을 흘리지 않고 꿀꺽꿀꺽 삼켰다. 그런데 약을 다 삼키자마자 바로 ‘우웩~~~’하고 토해버렸다. 목구멍으로 들어갔던 탕약이 들어간 만큼 모두 한꺼번에 분수처럼 뿜어졌다.
대승기탕은 탕약 처방 중에서도 맛이 가장 안 좋다. 대황이 한 첩에 4돈이나 들어가 있고 후박, 지실, 망초도 2돈이나 들어가 있어서 맛이 아주 쓰고 짜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경우 토하지 않아도 흔하게 구역감이 난다. 환자의 병증에 맞지 않으면 구역감과 구토가 흔하게 나지만 적방이라 할지라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토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래 한 숟가락씩 천천히 복용하는 처방이다.
부인은 약을 토하자 눈이 뒤집히면서 잠시 후 또다시 열이 났다. 의원은 부인이 약을 모두 토해서 효과를 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또 다시 서둘러 먹인 2첩과 3첩째 탕약도 모두 토해 버렸다. 부인은 고통스러운지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몸부림치더니 혼절하는 듯 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과 하인들은 부인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모두들 차마 눈뜨고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의원은 당황스러웠다.
대감이 당황스러워하는 의원을 돌아 보더니 “자네가 적방이라고 자신하던 대승기탕을 3첩이나 먹였는데도 모두 토하고 차도가 없네. 내 보기에 독한 약 때문에 더 괴로워하며 경각(頃刻)이라도 몸을 보존할 수 없으니 차라니 약을 끊고서 차라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낫겠네.”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부인의 침실을 나가버렸다.
의원은 비통해하는 대감의 말을 담담하게 듣더니 대감을 따라서 마당까지 나갔다. 그런데 의원은 대감이 담 모퉁이를 돌아서 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냥 마당에 서 있었다.
부인의 병시중은 대감의 이종사촌 동생이 들고 있었다. 이종사촌은 대감이 죽기만을 기다리자고 하는 통에, 슬퍼하며 부인의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의원이 부인의 처소로 들어와 병시중하는 사내의 어깨를 툭툭치더니 “방금 대감께서 가시면서 남은 약재를 급히 다려서 먹인 후 병세를 살펴보라고 하셨네. 그러니 어서 서두르게나.”라고 했다.
사내는 다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탕제를 다릴 준비를 했다. 의원이 마당에 나가보니 대감은 집안사람들에게 초상 치를 준비를 시켰다. 대감은 온갖 기물을 준비하고 나서 친척들에게도 부고를 돌리기 위해 부고장을 썼다. 집안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이렇게 몇 식경(食頃)이 흘러 저녁 무렵이 되어 어둑어둑해졌다.
이종사촌 사내가 이제야 부인의 침소에서 나왔다. 사내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영문을 몰라 대청마루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감이 사내를 보더니 “너는 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냐? 누님은 숨을 거뒀느냐?”하고 물었다.
그러나 사내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 해 하면서 “형님께서 문 밖으로 출타하실 때 의원을 통해서 남은 약을 반드시 쓰라고 하셔서 바로 1첩을 다려서 한 숟가락씩 천천히 입속에 넣어드렸습니다. 그 약은 다행히 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모두 한 사발을 모두 먹이자 한참 후에 검은 진흙 같은 변이 한참을 빠져나오더니 부풀었던 배가 곧 가라앉고 호흡이 평상시처럼 되었으며 빠졌던 턱도 들어갔습니다. 누님께서 미음을 찾으셔서 미음을 끓이고자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대감은 깜짝 놀라며 마당에서 대청마루로 뛰어올라 부인의 침소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대감이 나오더니 의원에게 웃으면서 “나는 원래 특별한 효험을 거두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네. 그런데 자네의 고집으로 남은 약을 몰래 복용시켜 효과를 냈으니 자네의 재주는 명의(名醫)를 뛰어넘는 것 같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스스로를 믿는 것을 보면 그 의술(醫術)을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겠는가? 고맙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의원은 “본디 의원은 병증을 살펴 두세 번 미루어보아도 확신이 서고 의심이 없게 된 연후에야 약을 쓸 수 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마님이 쾌차하게 되었지만, 중병(重病)과 험증(險症)에는 한 첩의 약이라도 잘못 쓰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게 되기 때문에 경솔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저는 단지 마님을 진찰하면서 대승기탕증 임을 확신했을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겸손해 했다.
의원은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확신이 선다면 자신있게 치료를 시도해야 한다. 불안해 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치료방법을 설득하는 것도 의원의 역할이다. 요즘 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도중에 악화되거나 심지어 사망할 것이 두려워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떻게든지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의원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옛 의서에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고 한 것을 보면 의원이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심사숙고하고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환자의 보호자에게 책잡힐 것이 두려워 치료를 머뭇거리다가 그래서 결국 환자가 처방을 복용하지 못해서 환자의 병세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제명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단 말인가.
* 제목의 ○○○○은 대승기탕(大承氣湯)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상한경험방> 脫頷腹脹. 一宰相靑孀婦人, 年過三十, 患時令, 脫頷腹脹, 呼吸促急, 精神皆憒. 諸醫試藥, 少無效驗. 召余診之, 六脈沈滑長大有力, 此頑痰挾熱毒. 仍曰 “此痰積傷於火, 又得熱疾毒痰橫亘, 決難容易攻滌. 宜大承氣湯四五貼, 一時分煎繼用, 庶挫邪毒.” 主家初則信聽, 四貼承氣幷煎置之, 先用一貼入口卽吐, 目反身熱, 二貼三貼如前吐出, 傍人不忍見其狀, 病人以不忍其苦, 若得窒塞. 主人宰相顧余: “用藥二貼皆吐, 病勢倍添, 難保頃刻, 寧止藥待盡.” 仍揮淚出去. 余亦隨去下軒. 此時救病者, 卽主人異姓從, 余稍俟宰相繞出曲墻, 卽回身佯告於救病之人曰: “大監敎以更進餘藥一貼, 以觀變動.” 其人默頭. 余卽出坐外軒, 宰相令人備初喪諸具, 人皆遑遑數食頃矣. 救病人出來, 宰相回問: “已死乎?” 對曰: “兄主出來時, 敎以餘藥必用, 故卽灌一貼, 則始不吐, 少頃大放黑滑泥便, 腹脹卽平, 呼吸如常, 脫頷亦收, 卽索粥飮, 故始進飮米飮也.” 宰相跳起入內, 俄而出笑曰: “吾不喜如病之收效奇, 君之有的見, 用權術, 使盡用餘藥, 君才奚特名醫而止.” 用藥脫頷難服, 故以竹竿上頭穿瓢而下頭入喉灌之.(턱이 빠지고 배가 부풀어 오름. 젊어서 과부가 된 어떤 대감집의 부인이 나이가 30이 넘었는데 유행병을 앓아 턱이 빠지고 배가 부풀어 올랐으며 숨이 몹시 가쁘고 정신이 온통 혼미했다. 여러 의원들이 약을 썼지만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나를 부르기에 진맥을 해보니, 육맥이 침활하고 장대하며 힘이 있었으니, 이는 지독한 담이 열독을 끼고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 병은 담적이 화에 상한 것입니다. 열병으로 생긴 열독을 얻어 담이 온갖 곳에 횡행하고 있으니, 쉽게 공격해서 씻어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땅히 대승기탕 4~5첩을 2시간마다 나누어서 달여 계속 써야만 겨우 삿된 독기를 꺾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주인집에서는 처음에 이 말을 믿고 대승기탕 4첩을 함께 달여 놓았다. 우선 1첩을 입에 넣어주었더니 즉시 토하고 눈이 뒤집히며 몸에서 열이 났고, 2첩과 3첩도 여전히 토하였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병자도 차마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혼절하려는 듯하였다. 주인 대감이 나를 돌아보며 “약 3첩을 썼는데 모두 토해내고 병세마저 더해져 경각도 보전할 수 없으니, 차라리 약을 끊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나가버렸다. 나도 하헌(下軒)으로 따라 나갔다. 이 때 병수발 들던 사람은 주인의 이종사촌이었다. 나는 대감이 담 모퉁이를 돌아 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곧 몸을 돌려 병수발 들던 이에게 거짓으로 “대감께서 남은 약 1첩을 다시 올린 뒤에 변화를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외헌으로 나오니, 대감은 사람들에게 초상 치를 온갖 기물을 준비하라 하였고 사람들은 몇 식경 동안이나 황황히 움직였다. 병 수발 들던 사람이 나오자 대감이 고개를 돌려 “이미 죽었느냐?” 묻자, “형님께서 나가실 때, 남은 약을 반드시 쓰라고 하셔서 바로 1첩을 입속에 부어넣었더니 비로소 토하지 않았고, 잠시 있다 검고 매끄러우면서 진흙 같은 변을 많이 누고서는 부풀었던 배가 곧 가라앉고 호흡이 평상시처럼 되었으며 빠졌던 턱도 들어갔습니다. 곧 미음을 찾기에 비로소 미음을 올려 먹였습니다.”라고 아뢰었다. 대감이 뛸 듯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와 웃으며 나에게 “내가 병에 특이한 효험을 거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네가 명확한 견해로 권술을 써서 남은 약을 모두 쓰게 하였으니, 자네의 재주가 어찌 명의에만 그치겠나?”하고 말하였다. 약을 사용할 때는 턱이 빠져 복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나무 막대의 윗부분 끝은 표주박에 박고 아랫부분 끝은 환자 목구멍에 넣어 약을 부어주었다.)
< 동의보감> 傷寒裏證. 傷寒裏熱者, 若火熏蒸, 自內達表. 惟下之一法而已. 發熱汗出, 不惡寒反惡熱, 乃陽明裏證也. 宜下之. 下藥, 大承氣最緊, 小承氣次之, 調胃承氣又次之, 大柴胡湯又次之. 已上三法, 不可差. 差則無者生之, 有者遺之. 假令調胃承氣證, 用大承氣, 則愈後元氣不復, 以其氣藥犯之. 若大承氣證, 用調胃承氣, 則愈後神痴不淸, 以其無氣藥也. 小承氣湯證, 用大承氣, 則下利不止, 變而成虛.(상한이증. 상한에 이열이 있는 경우는 마치 불로 찌는 것 같이 속으로부터 겉으로 나온다. 오직 하법 한 가지만 쓸 수 있다. 발열로 땀이 나고 오한이 없으며, 도리어 열을 싫어하는 것은 양명이증이다. 하법을 써야 한다. 하법에 쓰는 약으로는 대승기탕이 제일 세고 소승기탕이 다음이며, 조위승기탕이 그 다음이고 대시호탕이 그 다음이다. 이상의 3가지 방법은 잘못 사용하면 안 된다. 잘못 사용하면 없던 병이 생기고, 있던 병은 오래 간다. 가령 조위승기탕을 써야 할 증상에 대승기탕을 쓰면 나은 후 원기가 회복되지 않는데, 이것은 기약이 원기를 범했기 때문이다. 대승기탕을 써야 할 증상에 조위승기탕을 쓰면 나은 후 정신이 맑지 못한데, 이것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승기탕을 써야 할 증상에 대승기탕을 쓰면 나은 후 설사가 멎지 않고 전변되어 허하게 된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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