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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多가족’ 독립채산제 회계법인, 개선 가능할까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21 09:00

수정 2023.02.23 14:36

소규모 회계사로 구성된 팀 모여 구성
각 업무 전문성 떨어진단 지적 나와
당국도 로컬 법인들 ‘원펌’ 전환 유도 중
원펌 체제인 국내 회계법인들 /그래픽=정기현 기자
원펌 체제인 국내 회계법인들 /그래픽=정기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국내 대다수 회계법인이 택하고 있는 ‘독립채산제’가 회계감사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데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명 안팎 회계사로 구성된 팀이 ‘각자도생’하는 구조인 탓에 특정 부문 전담팀을 꾸리기 어렵단 문제제기다. 신 외부감사법 시행 5년 차를 맞으며 회계 투명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감사 전문성을 키우기 힘든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단 요구가 나온다.

합리적 체제, 그러나..

2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회계법인들이 전문 조직을 양성하기 힘든 ‘독립채산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감사 품질 향상에 대한 기업·당국 요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주장엔 갈수록 힘이 실릴 전망이다.

국내 회계법인은 크게 ‘독립채산제’와 ‘원펌(One Firm)’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독립채산제는 회계사들이 소규모 인원으로 조직한 팀들이 모여 단일 법인을 이루는 형태를 일컫는다. 소속만 같을 뿐 팀 단위로 감사, 세무, 자문 등 업무를 수주해 처리하고 일부 수수료를 제한 보수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관성과 합리성이 이 체제를 택하고 있는 이유다. 초기 회계업계는 변호사 법률 사무소처럼 회계 사무소 형태로 태동한 곳들이 법인 형태를 갖춰 성장하면서 형성됐다. 그러다보니 일반 기업보다는 ‘한 만큼 가져가는’ 성과 체계로 짜이게 됐다.

이와 함께 ‘서로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소위 ‘프리 라이더(Free Rider)’를 원천 차단할 수 있고, 수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해당 업무에 기여한 만큼만 받아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겹치며 독립채산제는 업계에 깊게 뿌리내렸다.

반면 원펌은 대표이사 등 리더를 필두로 회계법인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직구조다. 감사, 딜, 세무, 재무자문 등 전문 부서가 있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당대 이슈에 따른 조직 구성도 제때 가능하다.

구성원들은 정량 급여를 받고, 성과 보수는 상여 형태로 수령한다.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 4’ 회계법인과 서현·예일·성현 등이 채택하고 있다.

“전문부서 양성 힘들어”

재계뿐 아니라 회계업계에서도 감사 품질 관리 및 내부통제 미흡을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한다. 각 팀별로 업무를 따내고 처리하다 보니 감사, 세무 등 특정 분야 전문 조직을 만드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법인 차원에서 내세울 만한 전문 분야를 밀어주거나 일관된 사업 방향성을 설정하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발적 조직인 탓에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단 우려도 있다.

특히 품질관리 부서는 ‘돈 되는’ 영역이 아니라 굳이 인력을 투입하거나 예산을 편성할 동기가 없다. 회계는 ‘공적’ 업무이기 때문에 각 회계법인들 스스로 전문성과 투명성을 지속해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 인수합병(M&A) 등 딜(Deal) 업무 등에 비해 가져가는 보수가 크지 않다보니 감사 분야 젊은 인재를 구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한 중소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사실상 감사 전문성이 부족한 독립채산제 회계법인이 소속 회계사 정원이 많다는 이유로 관련 업무를 수주 받는 일이 상당하다”며 “자연스레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업계 전반적인 평판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바뀌기 어려울 것”

금융당국은 회계법인들 원펌 전환을 유도하고 있으나, 업계에선 “지금 와서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대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동기 자체가 없는데다, 여태껏 문제없이 사업을 영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자유선임 6년+지정 선임 3년) 시행으로 당국이 회계법인 경영 및 조직 구성에 개입할 여지는 늘었다. 하지만 대다수 법인들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체질 개선을 거부하거나 미루고 있어 무작정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물론 '독립채산제=저품질 감사'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독립채산제 자체를 죄악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감사 품질 하락에 대한 불만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자정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면서 "특히 원펌을 유지하거나 새로이 진출을 꾀하려는 신생 법인들에 대한 지원이 이어진다면 기존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일 금융위원회에 전달한 의견서에는 “주기적 지정감사제로 피감기업 업종 및 특성에 대한 이해·경험이 부족한 감사인을 선임하게 돼 감사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전문성을 세밀하게 따지지 못한 상태로 기업-회계법인 규모만 보고 연결시키다보니 빚어지는 문제라는 인식이다.

한 중형 회계법인 임원급 회계사는 “현재 상장사를 외부감사 하는 등록 회계법인이 40개인데, 이렇게 많을 이유가 없다”며 “역량이 되는 곳만 검증해서 지원하고 조건을 충족 못 하는 법인들은 과감히 자격을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회계사는 이어 “특히 상장사의 경우 소액 투자자 등 얽힌 관계인들이 많은 만큼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자본시장 왜곡을 불러올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회사는 3만7519개사로 전년(3만3250개사) 대비 12.8%(4269개사) 증가했다. 이 중 주권상장법인은 2542개사로 전체 약 0.07%에 불과하다.
나머지 감사인(회계법인)들이 비상장 법인(3만4977개사) 감사에 투입되는 게 보다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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