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조선시대 왕릉과 왕비릉 봉분이 시대가 지날수록 축소된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지난해 3~11월 조선왕릉 40개소 61기 봉분제도와 능침 관련 산릉의궤,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 분석과 현장조사를 한 결과, 봉분 규모가 시대 흐름에 따라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궁능유적본부가 발간한 보고서 '조선왕릉 봉분 및 능침지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초기 왕릉의 지하 현궁은 대형석재로 넓은 석실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당시 봉분 지름도 32∼35자(약 9.86~10.78m) 사이로 컸다.
15세기 후반 이후로는 현궁을 대형석재 대신 회격(석회, 가는 모래, 황토로 만든 관 또는 곽을 놓는 자리)으로 조성하기 시작해 점차 봉분 지름이 줄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합장릉을 제외한 단릉, 쌍릉, 삼연릉의 경우 봉분 좌우지름과 봉분 사이 간격을 조절하면서 봉분 지름이 25자(약 7.7m)까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왕릉은 현재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관리돼 오면서 봉분 주위 석물에 따른 봉분 지름의 변화도 확인됐다.
봉분 하단을 병풍처럼 둘러주는 병풍사대석을 갖춘 왕릉은 비교적 조성 당시 봉분제도에 부합하나 봉분높이가 높아졌다. 난간석만 갖춘 왕릉은 봉분 지름은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졌다.
봉분 둘레와 지름을 지탱하기 위해 둘러싸는 위요석물이 없는 왕릉의 경우는 봉분 하부지름은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후대에 추존되거나 왕실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왕과 왕후의 무덤은 조선시대에서부터 관리가 소홀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능침지반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봉분 사방으로 미세한 경사면을 조성하고 곡장(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주변으로 배수로·배수구·배수홈 등을 설치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후면에서 전면으로, 초계의 중심에서 양끝이 낮아지도록 경사면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점점 발달된 배수체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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