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악순환 '금융민주주의 2.0'이 끊어야
22일 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저신용·저소득층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불법 사금융에 내몰린 금융 취약계층에게 대출을 늘려 급한 불을 끄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들을 대출 악순환의 고리에 휘말리게 하는 격이라는 설명이다. 금융 민주주의 2.0이 지금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KIF) 금융소비자연구실장은 "저소득·저신용층에 대한 대출 공급이 늘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믿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신용 저소득층의 경우 서민금융 정책의 대부분을 이루는 대출을 받았을 때 상환에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상환 능력이 낮은 사람에게 대출을 늘려주면 당장은 괜찮겠지만 결과적으로 갚을 빚만 늘어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선제적인 재무설계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사전적인 피해 예방활동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국제공인 재무설계사(CFP) 등 재무관리전문가들을 동원한 재무설계컨설팅을 통해서 빚더미에 추락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서울시에서 '영테크'사업으로 청년들 1만여명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진행중이다. 조 원장은 "재무계획을 수립하도로 도와줬던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국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연계 채권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지속가능연계 채권이란 은행들이 예금이나 은행채 조달 등을 통해 얻은 쿠폰(수익률)을 사회공헌 성과에 비례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관련 제도를 도입했는데 해외에서는 엄청나게 활성화됐다"면서 "투자자 측면에서도 도움되고 사회공헌을 활성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관의 정책금융 사회성과연계채권이나 지속가능연계채권 활성화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컨트롤타워·원스톱 제도 필요
서민금융 상품들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담당 기관 역시 제각각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수립과 원스톱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들이 각 기관과 부처에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다"며 "소비자들이 파악하기도 어렵고 담당 기관 및 부처들 역시 관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책금융상품의 수혜자는 한 명인데 대상상품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서민금융 담당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신 교수는 "국민들이 출자하고 정부가 채무보증해주는 제2의 기업은행을 만들어 원스톱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서민금융상품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섭 선임연구위원 역시 "정책금융 의존도가 너무 과하다는 얘기도 있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정책금융만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유사한 역할을 서민금융진흥원이 담당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이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과 복지...투트랙 전략 필요
정책금융도 금융적 차원인지, 복지적 차원인지를 보다 명확히 해서 집행해야 제대로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수진 실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서민금융상품은 금융접근성을 높여주는 금융적 접근과 금리 부담을 완화하는 복지적 접근이 혼재돼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정책서민금융상품은 원칙적으로 직업의 안정화와 소득 향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며 "반면 저신용·저소득층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식료품비·교통비·의료비 등은 상환 능력을 감안할 때 대출 상품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직접적인 복지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세돈 교수 역시 "은행의 특례금융 조치와 정부의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원을 혼동하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선진국들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금융권에 서민금융 정책을 밀어넣는 것이 아닌 정부가 담당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 교수는 "선진국들은 한국식 정책서민금융 제도가 없는데 이를 정부의 역할로 보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긴급 지원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정부기관인 미국중소기업청(SBA)이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통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500인 미만 중소기업, 비영리단체, 자영업자 등에 최대 1000만달러(약 130억65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을 해 줬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은행들을 윽박질러 금리인하 등을 유도했지만 선진국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처럼 금리인상기에 갑자기 취업을 하거나 단기간에 소득이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책서민금융상품이라도 생계비 관련 소액 대출을 한시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수진 실장은 "단 금융접근성을 높여주는데 정책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시장 기능을 해하지 않는 정도의 금리 수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난방비·전기료·통신비 등에 대해서는 이연 가능한 금액을 정해놓은 뒤 12개월 할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관련 이자는 정부가 지원해주는 식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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