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해말 강원 강릉에서 60대 여성 운전자 A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도로 인근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A씨가 크게 다쳤고, 차에 함께 타고 있던 A씨의 손자 도현(당시 12)군은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도현군의 유족은 급발진 사고를 의심하고 있다. 사고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는 갑자기 차량에서 굉음이 나더니 A씨가 "이게 왜 안돼? 큰일났다"고 말하는 소리가 담겼다. A씨는 애타게 "도현아, 도현아, 도현아"라며 손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차량은 멈추지 않았고, 지하통로에 추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애도할 틈도 없이, A씨가 교통사고특례법에 따라 형사입건 됐기 때문이다.
A씨의 아들이자 도현군의 아버지인 이씨는 지난 23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꿈 많고 해맑았던 저희 아들을 하늘나라 보내고 당시 운전자였던 어머니는 형사 입건된 사고가 있었다"라며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연고도 없던 강릉으로 내려와 8년 넘도록 아이들 등·하원을 전담하며 사고 당일도 평소와 같이 학원에서 손주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너무나도 끔찍하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급발진 사고로 아들과 생이별을 했다"고 적었다.
이씨는 이 같은 사연을 전하며 급발진 의심 사고 시 결함 원인의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사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고 원인 규명을 도대체 왜 사고 당사자인 우리가 해야만 하느냐"며 "도현이와 같은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급발진 사고로 희생되어서는 안되지 않나.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되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이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제조물책임법 조항을 최소한 급발진 의심 사고 시에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하는 법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6일 오후 3시 59분쯤 강릉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이씨의 어머니가 몰던 SUV가 수로에 빠지면서 운전자는 크게 다치고 이씨의 아들은 사망했다. 차량은 갑자기 '웽'하는 굉음과 함께 흰 액체를 분출하며 30초 이상 600m를 주행한 뒤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는 이씨의 어머니가 "아이고, 이게 왜 안돼. 오 큰일 났다"라며 다급하게 외치는 상황이 담겼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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