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 10곳 중 올해 업황 전망을 물으면 8할 이상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다. 지금의 글로벌 경기는 둔화(slowdown)와 침체(recession)의 딱 경계선에 있는 모양새다. 지난 17일 기획재정부가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한국 경제의 경기둔화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실물경제는 침체에 더 가깝다.
통상 경기 주기는 '둔화-침체-회복-활황'을 반복한다. 사실 글로벌 경기는 이미 둔화와 침체를 지나 회복기에 진입했어야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장기간 진행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2~3년 전에 긴축 국면(테이퍼링·Tapering)으로 돌아서야 했다. 하필 그때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돌이켜보면 팬데믹은 소비·생산·투자의 걷잡을 수 없는 위축이 우려됐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면이나 바깥 활동의 제약은 TV, 가전, 정보기술(IT) 기기의 소비 확산으로 귀결됐다. 제로금리 시기에 대형 평수의 주택이 인기를 얻었다. MZ세대는 새로운 소비 주도층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주력 업종인 반도체도 팬데믹은 호황기였다. 집이나 실내에 갇힌 사람들이 데이터 소비를 늘리면서 스마트폰, PC 교체 수요가 폭증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나 서버 투자를 경쟁하듯 늘렸다. 모두 반도체 기반 산업들이다. 그랬던 반도체 산업이 지난해 4·4분기를 기점으로 무서울 만큼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다. SK그룹의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는 조 단위 적자에 빠졌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도 적자 목전까지 다다랐다. 올 1·4분기는 삼성전자 전체 실적이 적자 전환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상까지 나온다. 삼성전자가 적자를 기록한 게 언제인지조차 흐릿하다. 마케팅의 제왕인 삼성전자가 관련 예산을 30~40% 축소한 것만 봐도 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자동차, 배터리, 조선, 항공, 방산 분야 외에는 전 산업계가 '누가누가 더 힘든가' 싸움이다. 가늠조차 안되는 불확실성의 시기는 언제쯤 사라질까. 전 캐나다은행 총재이자 경제학자인 스티븐 폴로즈는 최근 출간한 저서 '제2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불확실성 요소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고령화하는 인구와 노동력 △기술혁명 △기후변화의 망령 △증가하는 정부 부채 △글로벌 소득 불평등 확대가 그것이다. 작금의 경기불황을 극복하더라도 당장 해결은 어려운 불확실성들이다. 올해 경기전망에 대한 시각들도 불확실하다. 그래도 거시적 불안감은 단기적 심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올 상반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시련기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다만 하반기는 회복을 향한 시그널들도 보인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우크라이나 재건 논의, 금리인상 둔화 등이다. 낙관론이 아닌 긍정론이 필요한 때다. 잔뜩 움츠러든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기업, 정부, 국민이 '원팀'이 돼야 한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가까운 법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IT부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