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웃집 여성이 준 물을 먹고 잠이 든 사이에 어머니와 누나가 숨졌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지난해 추석 연휴 부산 모 빌라에서 숨진 모녀 사건의 재판에서 생존자인 10대 아들 B군은 유력한 용의자로 이웃집 주민을 지목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 김태업)가 지난달 27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모녀의 이웃집에 살던 A(50대·여)씨에 대해 연 첫 공판에서 생존자 아들 B(15)군은 "이웃집 이모가 건네준 '도라지물'을 마시고 15시간이나 잠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엄마와 누나가 모두 살해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B군에 따르면 이웃 A씨는 B군의 이웃에 살던 50대 여성으로 사건이 일어났던 지난해 9월 12일 B군의 집을 찾아왔다. B군은 A씨가 이전에도 여러번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다 어린 손녀딸까지 대동하고 있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범행 당일 A씨는 B군에게 '몸에 좋은 주스'라며 연한 보라색을 띠던 도라지물을 마실 것을 권했다. 본인과 손녀딸은 이미 집에서 마시고 왔다고 했다.
B군은 이 물을 마신 뒤 A씨의 손녀딸과 잠시 놀아주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평소 오전 2~3시에 자던 B군은 이날 마신 물의 영향으로 오후 9시가 조금 넘어 잠에 들었고, 이튿날 낮 12시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15시간 가량 자다 깬 B군은 여전히 어지러운 상황에서 방 바깥으로 나왔고 이 때 어머니와 누나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15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B군이 자신의 방에서 나와 마주한 건 싸늘한 어머니와 누나의 시신이었다. B군이 잠든 뒤 어머니와 누나가 귀가했고, A씨가 이들에게 약물을 먹여 잠들게 한 뒤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 설치됐던 애완견을 위한 CCTV도 누군가에 의해 선이 뽑혀 있었다.
검찰은 2015년 7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A씨가 자신이 복용하던 정신의학과 약을 이 도라지물에 섞어 B군 가족에게 먹인 뒤 살해한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어 월세나 생활비, 병원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가 귀금속 등 금품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병원비나 카드대금을 내지 못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리던 끝에 이웃이 가지고 있던 6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B군 누나의 친구도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B군 누나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나누던 친구였는데, 당시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너무 어지럽다'는 내용을 보냈다. 평소와 달리 메시지에 오타도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9월12일 부산 진구 양정동의 한 빌라에서 어머니 C(40대)씨와 고교생 딸 D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중학생 아들 B군이 어머니와 누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모녀 부검에서 부검의는 질식사가 고려된다고 판단했다. 사건 당시 이 빌라 거실에는 C씨가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고 옆에는 흉기가 있었다. D양은 방에서 발견됐으며, 타박상을 입고 숨진 상태였다. D양의 방에서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자연적으로 꺼지기도 했다. 함께 살던 반려견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해온 A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도라지물을 먹인 적도, 살해를 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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