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아껴 본국 가족에게 보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다 참변
산재사고도 잇따르지만 불법 노동자는 영사관 도움 외엔 방법 없어
불법체류자 41만명 시대… 10년來 2배 늘었지만 관리대책은 제자리
과거 韓도 노동력 수출국가… "노동자 희생, 외화벌이 신화에 묻혀"
산재사고도 잇따르지만 불법 노동자는 영사관 도움 외엔 방법 없어
불법체류자 41만명 시대… 10년來 2배 늘었지만 관리대책은 제자리
과거 韓도 노동력 수출국가… "노동자 희생, 외화벌이 신화에 묻혀"
【파이낸셜뉴스 전주=강인 기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합당한 처우와 관심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사고와 일부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인권 유린 현장은 처참한 수준에 처해 있다. 이들을 보호할 제도와 정책은 아직 갈길이 멀다.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그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태다 . 취업시장에서 외면받는 3D 업종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농번기 농촌지역에서는 불법체류자 단속을 멈춰달라는 요구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제조업 공장에서도 외국인 인력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산업 전반에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과 다수의 불법체류자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보호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실상과 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 6차례에 걸쳐 살펴볼 예정이다.
■'돈 때문에' 열악한 환경 노출
최근 전북에서는 태국인 외국인 노동자 부부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난방비를 아끼려다 참변을 당했다.그들이 처한 상항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지난달 24일 고창군 흥덕면 한 마을 단독주택에서는 태국인 A씨(55)와 아내 B씨(57)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방 안에서 불에 타다만 장작이 발견된 점에 비춰 추운 날씨에 불을 쬐려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부부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해당 주택은 연간 30만원에 이들 부부가 임차해서 사용했다. 10여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로 농촌지역에서 일했다. 수입금도 대부분 본국의 가족에게 보냈다는 것이 주민들 전언이다.
임대료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집은 사고 당시 영하 6도의 날씨를 견디기 어려웠다. 기름보일러가 있었지만 난방유 통은 비어 있었다. 이들 부부는 집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일상생활 대부분을 보냈다고 한다.
본국의 가족들을 위해 난방까지 포기하며 살았던 부부는 결국 한 줌 재가 돼 송환됐다.
경기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지병으로 숨지자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범죄도 일어났다.
포천경찰서는 지난 7일 지병으로 숨진 60대 태국인 노동자 C씨를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농장주(60대)를 구속했다.
조사결과 농장주는 지난 2일 아침 C씨가 나오지 않자 집 안으로 들어갔고, 숨을 거둔 C씨를 발견했다. 농장주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실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고 야산에 유기했다. 숨진 C씨는 해당 농장에서 1000여마리의 돼지를 키웠다. 18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으면 담뱃값 정도만 남기고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했다. 그는 돼지우리 안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지냈다. 바로 옆에 돈사가 있어 악취가 심했다. 화장실은 방과 떨어져 있었고 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C씨 시신은 다른 태국인 노동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에야 발견됐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 사고 관련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울산지법 형사3단독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파이프 제조업체 대표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 2022년 1월 울산 울주군 공장에서는 베트남 국적 40대 근로자가 작동 중인 냉각기를 청소하다 안으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났다. 해당 업체는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운전 중인 냉각기를 청소하게 해 피해자를 숨지게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업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같이 외국인 노동자 관련 안타까운 소식은 매해 반복되고 있다.
주한태국대사관 소속 최이수씨는 "한국의 더위와 추위 같은 계절 변화를 못 견디고 뇌출혈로 사망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하며 "합법 노동자의 경우 정부에서 지원에 나설 수 있지만, 불법 노동자는 영사관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불법체류 41만명 시대
법무부가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은 214만6579명에 달한다.
10년 전인 2014년 179만7618명에서 20% 가까이 늘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27.5%로 가장 많고 20대 20.9%, 40대 17.1% 순이었다. 왕성한 노동력을 가진 20~40대에 체류 외국인이 몰려있어 국내에서 이들의 비중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외국인 체류자 중 불법체류자는 41만965명에 육박한다. 2014년 20만8778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불법체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제조업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우리 회사에 20~3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아직 불법체류자는 없지만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면서 "다른 업체를 보면 불법체류자가 많다. 그들이 없으면 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체류가 문제가 된다면 이들의 비자를 합법적으로 만들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우리나라도 인력 송출국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로 노동력을 수출하는 인력 송출국가였다는 점이다.
1991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가 생긴 시기를 기점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본격화됐지만 이전까진 외화벌이가 국가적 화두였다.
1965년 9월 정주영 현대 회장은 태국 남부 98㎞ 길이 고속도로를 수주했다. 국내 건설사 해외건설 수주 첫 사례로 꼽힌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본격화됐다. 세계적인 오일쇼크로 중동 국가들은 오일머니가 넘쳤고 사회기반시설을 지으려 했지만 더위와 가뭄 등 악조건에 나서는 건설사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월남전이 끝나 월남 특수가 없어진 상황이었고 오일쇼크까지 겹쳐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중동 진출을 모색했고, 중동 신화의 아이콘인 정주영 회장이 나서게 된다. 현대건설이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한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액 9억3114만달러는 당시 우리나라 예산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외화벌이를 위해 40도를 넘나드는 사막의 더위를 견디며 중동의 신화를 썼다.
다만 외화벌이와 신화로 포장된 당시 건설현장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땀과 피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동 진출은 정권 차원의 권장이었고 거액의 수주액을 발표하기 바빴다. 당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참변을 당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중동 붐을 홍보해야 했던 시절,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철저히 외면됐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준비를 위해 현지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수치를 보면 40~50년 전 중동에서 쓰러져간 우리나라 노동자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정론지 가디언 발표에 따르면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한 2010년부터 10여년 동안 카타르에 체류한 외국인 노동자 중 사망자는 6751명에 달한다.
kang1231@fnnews.com 강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