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당시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 가능성에 기대감 증폭
文정권 "무리한 이행 의지" 北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기만
우리만 휴전선·동서해 무장해제 '9·19 족쇄'에 묶여선 안 돼
北 해안포·무인기 도발 등 합의 위반 명백 “유명무실” 비판
尹 대통령, 북한 무인기 도발에 효력정지 검토 대응 지시
文정권 "무리한 이행 의지" 北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기만
우리만 휴전선·동서해 무장해제 '9·19 족쇄'에 묶여선 안 돼
北 해안포·무인기 도발 등 합의 위반 명백 “유명무실” 비판
尹 대통령, 북한 무인기 도발에 효력정지 검토 대응 지시
이 같은 합의 체결은 같은해 11월 1일부터 시행됐다. 9·19 군사합의 체결은 이번 3월 19일부로 4년 6개월을 맞았다. 그 배경과 군사적 측면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다.
지난 2018년 9월 18~20일 평양에서 '남북 3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에선 '제5차 북남수뇌상봉'이라고 부른다.
평양공동선언(공식명 '9월 평양공동선언' Pyongyang Joint Declaration of September)은 이 기간인 19일 평양에서 체결한 당시 문대통령과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발표다.
문 대통령은 이미 2018년 4월 27일 총 12시간에 걸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과 함께 잠시 판문점의 콘크리트 경계석을 넘나든 연출과 같은 해 5월 26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UN 관리지역인 판문점 내 북측 통일각에서 2시간가량 회담할 때 방북했지만 평양에서 열린 남북 3차 정상회담은 그 상징성이 달랐다.
당시 미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방북을 직권으로 취소하면서 북·미 간 협상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위기 상황에서 2018년 9월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을 북한에 파견하고 당일로 돌아와 사흘 후인 9월 8일 미국으로 건너갔고 "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해 여전히 신뢰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중재를 시도하면서 북미대화를 극적으로 복구한 상황이었다.
또 한 번 북·미 간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문 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세부일정을 조율해 평양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확정한 것이다.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통한 비핵화 실현 등 새로운 남북관계의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폭됐다.
탈냉전 이후 미·중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신냉전 기류 속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딜레마를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접근법이라며 한반도 문제의 관련 당사국들이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정체성과 이익’을 새롭게 구성한다면 현재의 신냉전적구조를 평화체제로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러면서 ‘핵무기와 전쟁위험, 적대관계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고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들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깨어있는 군사외교 안보 전문가 일각에선 합의서 내에는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나 미사일 개발 제한과 폐기 등에 관해 명시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며 합의 위반시 재발방지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당시 정부의 설명과 달리 유명무실한 합의란 비판이 일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4일 국가안보실·국방부·합동참모본부·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무인기 대응 전략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연내 스텔스 무인기 생산, 드론 킬러, 드론 체계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사실상 무의미해진 9·19 남북군사합의가 4년 3개월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그간 북한의 숱한 도발과 위반에도 군사합의를 남북이 함께 지킬 때 의미가 있다며 준수를 촉구하고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으나 무인기 영공 침범으로 선을 크게 넘어섰다는 정부의 판단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2022년 12월 26일 소형 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침투시킴으로써 또다시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우리 군은 9·19 합의를 의식해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오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총탄이 북한으로 넘어갈까 봐 혹은 지상의 시민들에게 낙탄 피해를 이유로 격추에 나서지 않았다.
전문가 일각에선 북한이 무인기에 소형미사일이나 북한이 자랑하는 화학·생물학 무기를 달고 살포했다면 서울 시민은 물론 군 통수권자가 있는 용산대통령실도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는 분석과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 5년간 제한된 훈련과 군의 수동적 자세가 체질화된 결과이며 9·19 군사합의가 초래한 심각한 후유증으로 평가된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기본적으로 접적지역에서의 군사적 우발 충돌 방지가 목적이며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 포병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금지구역, (해상)완충수역 등을 설정했다.
5개 분야 20개 항으로 된 주요 내용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으로 10~40㎞ 이내 비행금지구역 설정 및 공중정찰 금지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서해 135㎞, 동해 80㎞ 구간 완충수역 설정, 해안포·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훈련 중단 △감시초소(GP) 11곳씩 시범 철수 △군사분계선 5㎞ 이내 포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 중단 등이다.
하지만 9·19 합의는 애초부터 비례성 원칙에서 남측에 불리해 논란이 컸다. 한국군이 군사합의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과 같은 훈련을 도외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완충수역은 서해의 경우 남측 덕적도~북측 초도 사이 수역, 동해는 남측 속초~북측 통천 사이다. 남북은 이곳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서해 남측 덕적도와 북측 초도 사이 거리가 80㎞가 아닌 135㎞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방부는 서해상의 완충수역의 길이가 80㎞가 아닌 135㎞라고 정정했다. 이에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해설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오기”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남북이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하고 청와대 측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 기자들에게 주요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까지도 서해상의 완충수역을 80㎞라고 했다.
서해 완충 수역의 경우 사실상 NLL 무력화는 물론 연평도와 백령도가 모두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특히 연평도는 서해안 최전방이자 유사시 평양 방어선을 직접 노릴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또 백령도에 주둔한 우리 해병대 1개 여단은 북한 입장에선 전방 서부 전선에 배치된 인민군 군단들이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고 황해도 해안 어디에 상륙할지 몰라 유사시 인민군 1개 군단을 황해도 해안에 발을 묶어 둘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백령도·연평도에 주둔 중인 해병대는 신형 K-9 자주포를 보유하고 있지만 9.19 군사합의로 인해 해안포 사격이 금지돼 육지인 경기 파주 훈련장까지 나와 포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돌아가는 불편과 훈련 코스트 상승 등으로 자연히 한때 훈련 숫자도 크게 줄었다고 알려졌다.
이같이 평소 훈련이 크게 제한을 받고 있고 충분한 대비에 소홀한 상태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정신력과 결기만으론 전략적 이점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더구나 휴전선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수도 서울은 최단거리 23㎞ 정도다. 휴전선에서 북쪽으로 북한 수도 평양까지 150㎞ 정도다. 주요 핵심시설과 인력이 밀집해 있고 양측의 수뇌부가 위치한 군사적 전략적 타깃인 종심의 길이에서 6.5대 1 정도로 남한이 짧기 때문에 어떠한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한국에 불리한 군사합의였다는 얘기다. 휴전선을 기점으로 평양은 서울보다 후방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간과한 채로는 한반도에서 군사 전략을 논할 수 없음을 잊어선 안 된다.
DMZ 내 감시초소(GP)의 경우 북한군의 GP는 우리 군은 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상호 1㎞ 내 근접 GP를 철수시켰지만 ‘동수 철수’ 원칙이 적용돼 동수로 줄이는 바람에 한국 측의 전력 손실이 당연히 더 컷다.
공중 감시 자산은 군사분계선 기준으로 서부 지역은 20㎞, 동부지역은 40㎞까지 띄울 수 없게 했다. 한국은 이 구역에서 공중 감시 전력 기동 금지로 북한보다 질적 우위에 있는 공군 전력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포병 화력 동향을 집중 감시해야 할 군단·사단급 무인정찰기들은 단거리에서 이들을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북한의 포병 전력이 전방에 집중 배치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등 수도권까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강 하구는 1953년 7월 휴전 이후 우발적 군사충돌과 북한군 특작 부대의 침투 등을 우려해 민간선박의 항행을 제한한 지역이다. 정부는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2018년 12월 남북 공동으로 수로 조사를 했으며 2019년 1월 30일 해양수산부가 제작해 한강 하구의 해저지도를 북한군에 건넸다.
해도 범위는 인천 강화도 말도부터 경기 파주시 만우리까지 길이 약 70km, 면적 280㎢다.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정보의 북한 유출에 대해서 군과 관련 정부 부처는 군사적 측면에서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거친 면밀한 검토 끝에 나온 결론이라는 이야기는 그 어떤 자료에서도 일언반구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이라면 서해안 대동강 하구에서 수도 평양으로 이어지는 해도를 남북이 공동 조사해서 수십 년간 쌓인 퇴적물로 변형된 해저지도를 낱낱이 측정, 작성해 남한 군에 넘기겠는가 반문할 일이다.
더구나 이와 관련해 유사시 북한의 주공 축선은 김포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군사적 상식에 속한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전쟁초기 남한판 인천 상륙작전을 벌이듯 어떻게든 제공권을 장악해 김포반도 북단 우리 해병진지를 장사정포 등으로 무력화하고 사곶 기지 등에서 전진 배치한 고속정과 공기부양선 등으로 급속도하 교두보를 확보하고 서울을 우회 오산-평택 축선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남한 보급선의 허리를 끊고 서울을 조기에 장악하는 궁극적인 가장 빠른 승리의 한 축선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다음날인 31일 남북 도로 연결에 필요한 기술적 자료를 북한에 제공했다.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체결한 2018년 9월 19일 당일 밤 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매우 강력한 이행 의지를 담았다”며 “북한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 두 정상은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엄숙히 선언했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영국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1938년 히틀러와 뮌헨회담 후 런던으로 돌아와 합의문을 들고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자신했지만 윈스턴 처칠은 ‘노상강도를 당했다'고 표현했다. 지구촌 역사상 수많은 사례에서 군사적 불가침 합의나 평화협정이 무용지물이 된 것을 조금이라도 인지했다면 그에 대해 대비했어야 마땅했다.
북한은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에도 빈번한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북한은 2020년부터 2022년 5월 문 정권 퇴임 시까지 총 51회의 미사일 도발을 벌었다. 게다가 우리 군 통수권자를 대상으로한 북한 특유의 욕설에 가까운 거친 표현은 보너스인 셈이었다.
지난해 북한은 핵실험과 ICBM 실험을 유예하겠다는 모라토리엄을 깨고 핵선제 공격 가능성을 법제화하는 등 역대 최다의 고강도 고빈도 도발을 감행했다. 올해에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회와 두 차례의 전략순항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총 9번의 무력도발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9.19 합의 이후 우리 군 GP 조준 사격,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NLL을 넘은 미사일 도발, 잇단 해상 완충수역 포 사격, 무인기 침투 등 합의를 17회 이상 위반했다.
군사합의의 유효성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실증 확인을 통한 비례성 있는 단계별 동시 실행에 있다는 것은 평범한 상식에 속한다. 북한이 실행할 의지가 없으면 합의를 지킨 우리 군만 자승자박 격으로 무장을 해제하는 꼴이 된다는 의미다.
북한의 군사합의 이행을 확인하기도 전에 마치 납품 확인도 안 한 채 내민 청구서에 입금하듯 스스로 믿는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상대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인 셈이다. 백번 양보해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수없이 노린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자를 신뢰로 믿어본다고 쳐도 그가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내려놓기도 전에 뒷짐을 지고 목덜미를 무방비로 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가족까지 모두 위험에 노출시킨다면 그 행위자는 무책임하단 비난조차 양보된 표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이 이어진다면 9·19 군사합의에 대한 효력정지를 검토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파기'와 '효력정지'의 의미는 아주 다르다고 분석했다. 파기는 회복할 수 없는 영구적 의미를 지니지만 효력 정지는 상황의 완화와 합의에 따라 해지조치로 되돌릴 수 있는 탄력성을 갖는다. 더 큰 도발 명분으로 삼으려는 북한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여지를 두면서 군사적 방어 태세의 실질성을 회복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도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남북합의서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북한도 의도적으로 완충구역 내 포사격과 무인기 침투 등 9·19 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무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파기를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선 북한의 교활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도록 군사 외교 안보 당국의 면밀한 검토가 계획돼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지킬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음이 드러난 마당에 더 이상 이 합의가 대북 대응에 족쇄가 돼 우리 안보에 구멍 뚫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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