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가 갈등 중재 기능을 상실한 지는 오래다. 각 정파와 지지층이 뒤엉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저주와 막말을 쏟아내면서다. 대장동 비리 의혹 등 이 대표 사법 리스크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이른바 개딸(개혁의딸) 등 이 대표 지지자들이 동의안 부결에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을 겨냥한 '악플'(악성 댓글) 공세가 그 단면도다.
하긴 우리 사회에서 '댓글 망국론'은 십수 년 전부터 제기됐다. 악플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들이 종종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다. 이제 정치판을 중심으로 사태는 악화일로다. 최근 노정된 '댓글 민주주의'의 타락상이 그 징표다. 오죽하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한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끝없는 악플과 출당 청원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적었겠나.
우리네 포털 뉴스나 SNS의 댓글창이 공론장으로서 제구실을 해 왔는가. 답은 '아니오'다. 최근 공개된, 지난 대선 시기(2021년 8월 1일부터 2022년 3월 8일까지) 포털의 뉴스 댓글 분석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뉴스 댓글 3639만건 중 절반가량이 '정치적 혐오 표현'이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좋은 글(선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1세대 영어 강사'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가 올해 초 한 방송에서 한 말이다. 지난 2007년부터 '선플운동'을 벌여온 그다. 하지만 온라인 공론장은 줄곧 일그러졌다. 정견이 다른 이를 향한 욕설 배설장이나 '혐오 발전소'로 타락했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댓글로 인해 시민 참여가 확대된다고 본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에 대한 숙의의 기회를 얻고 여론의 추이도 가늠하는 순기능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21년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실제 포털 댓글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은 전체 응답자 중 6.8%에 그쳤다. 성균관대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 대선 뉴스 가운데 댓글 80%를 불과 0.25% 유권자가 작성했다니 말이다.
그러니 정치권도 '팬덤 정치'에 포획된 이들의 댓글을 활용하고픈 유혹에 빠져들었을 법하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강성 지지자들의 댓글을 '양념'이라고 옹호했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엔 적신호다. 언론이 이를 방치하는 것도 문제다. 고관여 뉴스 이용자를 모아 온라인 유료화를 앞당기겠다는 미망 때문일진 모르지만….
BBC방송 등 글로벌 언론은 그런 헛된 기대를 이미 버렸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의 댓글정책은 참고할 만하다. 이용자가 올린 댓글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커뮤니티팀이 비방, 사적 공격, 비속어 등이 담긴 댓글을 걸러낸 뒤 게시한다. 더 늦기 전에 악플의 폐해를 줄이며 댓글의 순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우리 언론 생태계도 바로잡을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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