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경기 김포시 소재 아파트 50대 경비원 A씨는 지난 2021년 1월 아파트로 진입하려던 한 차량을 막고 "미등록 자동차는 정문을 이용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조수석에 타 있던 B씨는 당시 만취 상태였다. B씨는 경비원 A씨를 향해 "왜 내 집인데 들어가지 못하게 하냐"며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B씨는 사과는 커녕 그 뒤로도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 A씨를 향해 "내가 왜 내 돈으로 먹여 살리는 경비원들에게 가야 하냐", "돈 많으니까 얼마든지 주겠다", "너도 돈 필요하냐"라고 말하는 등 인격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일로 A씨는 심한 정신적 충격까지 받았고, 급기야 아파트 주민들까지 나서 가해자를 강력 처벌해달라는 진정서도 제출됐지만 재판부는 B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근 서울 강남 소재 한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근무해온 경비원이 관리소장에 의한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파트 경비원들이 겪는 부당한 처사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상당수 경비업무 근로자들은 '간접고용 구조'로 인한 불안정성 때문에 부당한 대우나 다양한 갑질 등의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도 문제 제기를 제 때하지 못하는 등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 뜯기고, 폭언에 협박까지
2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와 청소노동자 등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공동주택 노동자 대부분이 입주민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돼 있다고 응답했다.
경비원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행을 가해 재판으로 넘겨지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 '경비원', '업무방해', '폭행' 등을 검색한 결과 최근 관련 판결 68건이 내려졌다.
폭행이 없는 '단순' 갑질 행태에 대해 재판부는 대개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구 동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김모씨는 2021년 5월 차량 출입 차단기 오작동으로 아파트 단지 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주민 D씨로부터 "관리사무실에 이야기해서 당장 니 해고시킨다", "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 "관리소장한테 이야기해서 모가지다", "시행 회사든 관리실이든 나를 맞설 X 없다"는 등의 폭언을 들었다.
김씨가 간접고용 구조 최하부에 위치해있는 것을 이용해 협박한 것이다. 이에 김씨가 "선생님 진정하세요"라고 말하자 D씨를 되레 "나는 선생이고 깡패다"라며 행패를 부렸다. 재판부는 D씨에 대해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비직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 노원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오랜기간 부녀회장직을 했던 E씨는 아파트 관리 업체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어 경비원들의 인사를 좌우하거나,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포함한 간부인사에 개입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E씨는 2017년 4월 경비원인 피해자 오모씨가 배달음식물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오씨에 대해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E씨는 이후 오씨에게 "성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입주자가 많은 아파트 단지로 보내는 등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했고, 이에 겁을 먹은 오씨는 E씨에게 현금 30만원을 건네야만 했다. E씨는 이외에도 아파트 주민·직원들에게 상습 폭행, 협박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간접고용 구조탓 소원수리도 어려워
직장갑질119의 '2023 경비노동자 갑질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소위 '경비원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실효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에 의하면 심층면접에 참여한 9명의 공동주택 노동자는 △고성·모욕 멸시 표현 △천한 업무라고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와 간섭 등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공동주택 경비원은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있어 극심한 고용 불안속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폭언이나 협박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부당한 일을 겪어도 문제 제기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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