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영국과 독일 등 국제 연구팀이 머리카락에서 채취한 DNA 분석을 통해 1827년 사망한 불멸의 작곡가 베토벤의 사망 원인을 규명했다.
연구 결과 베토벤은 간 질환에 걸리기 쉬운 유전인자를 보유했으며 B형 간염에 감염돼 결국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에 사인으로 제기됐던 납 중독설은 당시 분석 근거가 된 머리카락이 베토벤의 것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기각됐다. 또한 베토벤의 부계 조상 중 한 명이 불륜을 통해 낳은 자식이었음이 예기치 않게 드러났다.
로이터·AFP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스탄 베그 생물인류학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요하네스 크라우제 소장 등 국제연구팀은 23일 과학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도 부검을 통해 베토벤이 생전 간경변증(간경화)과 췌장염, 비장염 등을 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그의 간 질환에는 유전적 요인에 바이러스 감염, 음주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우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베토벤 머리카락으로 알려진 모발 8가닥을 분석했다. 이 중 5가닥이 동일한 유럽계 남성의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베토벤 친척과의 유전정보 대조를 통해 해당 머리카락들이 베토벤의 것임을 입증했다.
모발 분석 과정에서 기존 납 중독설의 근거가 된 '힐러 가닥'(Hiller Lock)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여성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힐러 가닥은 베토벤 사망 당시 채취된 것으로 알려져 1990년대 후반 유전자 분석에 사용됐다. 정상인의 10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면서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 바 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5가닥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스텀프 가닥'(Stumpff Lock)을 DNA 염기서열 분석에 활용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머리카락 DNA 정보가 상당 부분 탈락됐기 때문에 연구팀은 베토벤 유전정보의 약 3분의 2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베토벤이 간 질환에 취약한 유전 인자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베그 교수는 "주로 'PNLA3'과 'HFE' 두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해 베토벤의 간 질환 위험성이 세 배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베그 교수는 "이러한 유전인자는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베토벤이 과음을 하던 습관과 유전인자가 해로운 상호작용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연구팀은 베토벤의 DNA 염기서열에서 B형간염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크라우제 소장은 "B형 간염은 19세기 초반에는 상당히 흔한 질병이었다"며 "적어도 사망 몇 달 전에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팀은 베토벤 청각장애의 유전적 원인은 찾지 못했다. 아울러 일부 연구자들이 베토벤 사인으로 제기한 이경화증, 파제트병, 궤양성 대장염 등과 관련된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연구팀은 베토벤과 친척의 유전 정보를 서로 대조하는 과정에서는 베토벤 가계 족보와 DNA상의 생물학적 계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16세기 말에서 1770년 사이에 베토벤 부계 혈통에서 혼외출산으로 태어난 자손이 한 명가량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베그 교수는 "베토벤 자신이 사생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은 29세 때 시작된 난청으로 인해 44세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베토벤은 1802년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건강문제, 특히 난청의 원인이 사후에 규명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크라우스 소장은 "우리가 연구결과를 진행함으로써 그의 생전 바람이 어느 정도 충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