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학폭을 방관하지 않는 교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23 18:16

수정 2023.03.23 18:16

[기자수첩] 학폭을 방관하지 않는 교실
"학폭을 당하는 동안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학교폭력 관련 취재를 하던 중 만난 20대 박모씨가 말했다. 지체장애 1급인 박씨는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학교폭력을 당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드라마 '더 글로리' 수준은 아니더라도, 물건을 훔쳐가고 머리를 때리는 등 크고 작은 괴롭힘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에게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당하는 동안만큼은 철저히 혼자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박씨에게 같은 반 친구들은 1~2명의 가해자와 27명의 방관자로 남았다.

"드라마를 보고 분개하는 사람이 많은데 현실에서도 그랬었는지 묻고 싶다. 불의 앞에서 모두가 용기 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피해자로서 마음 한편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박씨의 말이었다.

박씨가 학교를 졸업한 지는 수년이 지났지만 학폭은 여전히 만연하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나고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학폭이 다시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폭 심의건수는 2만건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지난해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학폭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 중 90.8%는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피해자 3명 중 1명은 학폭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학폭을 멈추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피해가 지속된 셈이다.

교육당국은 이달 말까지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대통령까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상태다.

이번에 발표되는 근절대책은 학폭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대학입시에 반영하도록 하는 등 '엄벌주의'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

학폭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난 피해학생 보호조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피해학생이 학폭을 당했을 때 주변 친구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처럼, 정 변호사 아들 학폭의 피해자처럼, 혹은 학창 시절 내내 학폭을 당한 박씨처럼 외롭게 홀로 두어선 안 될 것이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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