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매년 봄마다 발생하는 산불이 이상기후와 함께 점차 대형화, 연중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울진·삼척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산불이 일어났고, 올해 역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부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대형 산불 위험성이 큽니다. 뉴스1은 산불의 대형화, 연중화의 원인과 이를 부추기는 이상기후, 또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이재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살펴보는 4편의 기획물을 만들었습니다.
(원주·안동=뉴스1) 박혜연 박상휘 박동해 이정후 기자 = 긴급 출동 지시를 받고 도착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산 아래 도로변까지 불이 내려와 탄내가 진동했다. 지형은 험악했고 바람은 거셌다. 정신 없이 달려가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대원들 안전'이었다.
올해로 경력 5년 차인 남부지방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조장 신정현 주무관(38)은 지난해 3월 발생한 울진 산불에 대해 "처음에는 그렇게 큰 불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4일 울진에서 발화한 후 동해안을 따라 삼척까지 번진 산불은 꼬박 9박10일 간 타다가 3월13일에야 잡혔다. 역대 최장 기간 산불이었다.
울진·삼척 산불은 역대 최대 피해면적(1만6302㏊)을 기록한 산불이기도 하다.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산림항공본부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헬기가 총동원됐다. 산림항공본부에서 산불 진화 헬기를 조종하는 김강덕 기장(49)은 "원주에서 울진으로 가는데 충주쯤에서부터 연기가 보였다"며 "헬기 하나로 조종사들이 교대 근무를 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 과로 시달리고 가뭄·강풍에 진화 어려워져…체감하는 기후변화
특수진화대와 산림항공본부는 모두 산림청 소속으로 산불에 특화된 전문 진화 조직이다. 산림항공본부는 주로 헬기·드론과 함께 공중에서, 특수진화대는 지상에서 산불을 파악하고 진화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산불이 연중화·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이들은 산불 진화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빈번한 산불은 진화인력의 과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 주무관은 "자잘한 불이 계속 나서 최근 일주일 동안 주말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출동했다"며 "하루에 많을 땐 40~50건 정도 (산림청에) 산불 신고가 접수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번 출동할 때 연속 12시간 근무는 기본이다. 지난해 울진 산불 첫 출동 당시 신 주무관은 현장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꼬박 2박3일을 버텨야 했다.
헬기를 조종한 지 올해로 27년 차인 김 기장은 작년 한 해에만 비행시간 200시간을 넘겼다. 한번 출동한 헬기는 약 2시간30분 운용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80회 넘게 출동한 셈이다. 김 기장은 "영동에서 나던 산불이 최근에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많이 나고 대형화하는 추세"라며 "얼마 전 합천에서도 불이 났는데 산불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가뭄이 심화되면서 산불 현장 인근 담수지가 줄어드는 것도 진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산림청이 담수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진화대에 제공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기장은 "헬기를 갖고 평상시 가던 담수장에 가보면 저수지 물이 상당히 줄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산림청 운용헬기는 스노클이라는 모터를 구동해 강력한 펌프로 물을 끌어들이다 보니까 돌이나 부유물질이 들어오면 고장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수위가) 어느 정도 깊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주무관도 "보통 불이 나면 저수지·계곡 등 담수지가 없는 곳이 더 많다"며 "(담수지가 있어도) 물이 많이 줄었다는 얘기가 대체적으로 있다"고 말했다.
건조한 대기에 강풍이 더해지면서 산불이 더 빠르게 번지는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산불은 지표면에서 발화한 불이 나무 줄기에 붙어 타기 시작하는 '수관화', 이후 나무 꼭대기에서 불똥이 떨어지면서 불이 번지는 '비산화'로 단계가 나눠지는데, 바람으로 인한 수관화·비산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신 주무관의 설명이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확인된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박사가 지난 40년간 기상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과거 20년 전에 비해 최근 20년 동안 상대습도가 낮아지고 강풍이 더 많이 불면서 산불 발생 위험성이 약 30~50%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경상도에서 변화폭이 가장 컸다.
비산화 현상이 일어나면 연기가 많이 차올라 위험해지기 때문에 공중과 지상에서 모두 산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또 주불을 다 잡은 후에도 땅속이나 돌 틈에서 식생이 계속 타고 있으면 다음날 바람을 타고 재불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헬기로 공중 진화를 할 때 여러 대가 그룹을 지어 한곳에 집중적으로 살수하는 전략을 많이 쓰는 추세다.
◇ 매캐한 연기 속 온갖 위험과 사투…사명감으로 버티지만 낮은 인지도엔 "아쉽다"
해가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산불을 막아야 하는 진화대는 종종 위험한 순간을 마주한다. 지난해 5월28일 울진 근남면 산불 당시 신 주무관은 공교롭게도 대상포진에 걸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인력 부족 탓에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능선에서부터 올라오는 불만 잡으면 정리가 될 것 같았는데 산이 너무 험했다"며 "암석 때문에 밑에 있던 진화대가 그 위에까지 물을 쏘지 못했고 때마침 바람이 막 불면서 수관화되니까 (산불이) 우리를 덮쳤다. 그 밤중에 대원들 챙겨서 도망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현장에서 휴대폰을 다 태워먹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지상으로 다니는 특수진화대는 길도 없는 산속을 헤쳐가느라 나뭇가지에 긁히고 찢겨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신 주무관은 "현장 갈 때마다 한 군데씩 다 상처가 생긴다"며 "불 끄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보면 가시가 박히거나 딱지가 앉아 있다"고 말했다.
헬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에는 추위·어둠과도 싸워야 한다. 낮 동안 뻘뻘 흘린 땀과 공중에서 헬기가 뿌린 물로 온통 젖어버린 옷은 밤이 되면 차갑게 식었다. 산 정상에서 맞는 강풍은 체감온도를 더욱 떨어뜨린다. 산불이 넘어오지 않도록 방화선을 구축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현장을 지키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공포감도 든다. 신 주무관은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그 넓은 데 혼자 있으면 조금 무섭다"며 "어떤 대원은 바람 소리가 귀신 울음소리 같다고 하더라"고 고백했다.
산불 진화 헬기의 경우 실어나르는 물이 워낙 무거워 운전이 쉽지 않아 안전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산림항공본부에 따르면 주력인 KA-32 헬기(일명 '까모프')는 최대 물 3000ℓ, 초대형 헬기는 8000ℓ까지 수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3월 울산 울주군에서 산불 진화작업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부기장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헬기 안까지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와 미세먼지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최대한 많은 양의 물을 싣기 위해 헬기 차체가 경량화되면서 자동차와 달리 공간이 밀폐되지 않고 틈이 많기 때문이다. 김 기장은 방독면 대신 주로 마스크만 쓴 채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지만 이들이 산불 진화 일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명감이다. 신 주무관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일에도 애착이 있다"며 "(산불 끄고 나면) 산 하나, 문화재 시설 하나를 지켰구나, 우리가 있어서 산림이 조금 덜 탔구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기장은 "우리나라 국토는 대부분 산림으로 돼 있어서 불이 한번 나면 새로 나무가 자랄 때까지 까맣게 흔적이 남는다"며 "평상시 비행할 때 '저기는 불이 난 곳이구나' 티가 나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사회적으로 산불 전문 진화대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점은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신 주무관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불이 나면 소방서에서 다 끄는 줄 안다"며 "산불 끄는 사람들이 소방관이 아닌 산림청에 있는 진화대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작년 울진 산불 때도 잠도 못 자고 피곤에 찌든 채 고생했는데 마지막에 '산불은 비가 껐다'고 기사가 나간 걸 보니 허탈하더라"며 "알아달라고 일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인식은 아쉽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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