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51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서약식'을 가졌다. 이들은 불체포특권이 국회의원의 부정부패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특권내려놓기를 선언했다. 불체포특권은 헌법상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빼곤 회기 중 국회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을 특권이다. 특권내려놓기 선언은 이전에도 수차례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주로 정치권이 국민에게 욕을 먹거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 상대 당을 공격할 때, 아니면 총선·대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다. 이날 포기선언도 자정노력이기보다는, 사법리스크를 짊어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정조준한 공세 성격이 짙다. 이쯤 되면 국민 눈높이에선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쯤으로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18대 국회에선 여야가 19대 총선(2012년 4월)을 코앞에 두고 '세비 30% 삭감'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 제한' 등을 공통공약으로 내놨지만 의원 연금지급 축소 등 일부 곁가지만 이행됐을 뿐이다. 19대 총선 직후인 2012년 말, 당시 민주통합당은 국회 공전의 책임을 지겠다며 세비 30% 삭감법안을 제출했지만 4년간 먼지만 쌓인 채 19대 국회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2014년(19대) 2월, 민주당은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제정을 포함한 특권포기 로드맵을 야심차게(?) 내놨다. 뇌물, 향응 등에 대한 감시와 세비 책정의 투명성 강화가 골자다. 흔히 '캐쉬카우' 루트로 활용됐던 출판기념회도 선관위 감시를 받도록 했고, 부정부패를 일삼은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도 추진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대 국회가 출범한 2016년에도 정세균 국회의장실 주도로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가 가동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회의원 1인당 월평균 급여는 1000만원이 넘는다. 입법활동비 등이 추가 지원되고 최대 9명까지 보좌진 채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유·무형의 특권까지 더하면 부지기수다. 국민들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은 '정치혐오증'은 계파정치, 돈정치, 막말정치 등이 켜켜이 쌓여온 결과물이다. 민생은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당리당략에 함몰돼 특권 누리기에 바쁜 데 대한 소박한 국민적 저항이다.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표가 아쉬울 때면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이 되겠다고 해놓고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특권 누리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말로만 특권포기를 외치면서 실제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니 양치기소년과 다를 바 없다. 때마침 여야 청년 정치인으로 구성된 '정치개혁 2050'이 26일 의원 세비와 정수를 국민이 참여하는 제3기구를 통해 정하자고 제안했다. 즉 국민이 국회의원들이 일한 만큼의 '최저임금 수준'과 '채용규모'를 정하자는 말이다. 개혁에는 늘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내년 총선이 불과 1년 남았다. 이참에 제대로 된 특권내려놓기를 해보길 기대해본다.
정인홍 정치부장·정책부문장 haeneni@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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