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검찰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가 폭로한 비자금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전 대통령 일가가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전씨의 폭로 내용을 바탕으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다만 비자금 수수 시점으로부터 오랜 기간이 흐른 만큼, 수사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가 전 전 대통령 일가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한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임세진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서민위는 전씨가 폭로한 일가의 비리 의혹을 수사해달라며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 씨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강제집행면탈,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전씨는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연희동 자택 금고에 있는 비자금으로 호화 생활을 영위하고, 차명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전씨의 작은아버지이자 전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전재만씨가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이너리와 장남인 전재국씨가 '바지 사장'을 내세워 운영한다는 시공사, 허브빌리지, 나스미디어가 언급됐다.
검찰은 일가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범죄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사가 어디까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가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로 처벌하려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일가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 먼저 입증돼야 하는데, 비자금 수수 시점으로부터 상당 기간이 흐른 데다 자금이 여러 단계를 거쳤을 가능성이 큰 만큼 자금 흐름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송득범 법무법인 주한 변호사는 "일가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로 처벌하려면 전 전 대통령의 범죄가 먼저 특정이 되고, 범죄로 인한 수익이 특정돼야 한다"며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일가에게 흘러 들어갔을 것이란 상황을 전제로 해 범죄수익은닉이라는 별도의 죄로 일가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도 걸림돌이다. 일가가 고발된 혐의인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의 공소시효는 7년, 강제집행면탈죄는 3년이다. 송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다양한 방식으로 숨겨뒀다가 지금 와서 사용하고 있는 거라면, 범죄수익 은닉 행위도 이미 과거에 이뤄졌다고 봐야 해 공소시효가 만료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강제집행면탈죄 역시 강제집행이 임박한 상황을 전제로 하는 만큼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검찰 수사는 우선 경찰의 전씨 마약 사건 수사가 이뤄지고 난 뒤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단서가 있는지 등을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1283억원으로, 922억원의 미납 추징금이 남은 상태다. 전 전 대통령 사망으로 미납 추징금 환수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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