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반도체는 석유와 똑 같다?
자동차혁명, 전기혁명시대에는 석유가 모든 것이지만 4차산업혁명에는 데이터를 만드는 반도체가 석유다. 예전에는 석유를 장악하는 자 세계를 지배했지만 이제 4차산업 혁명에서는 반도체를 장악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금 반도체는 석유와 같다. 작은 공급과잉에도 가격이 폭락하고 작은 공급부족에도 가격이 폭등한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자율을 핑계로 2022년 10월이후 세계원유소비량의 3.7%인 366만배럴을 감산하자 유가가 급등했다. 물가안정이 급선무인 미국은 당황해하고 있고, 경기가 하강에 들어간 전세계 석유소비국들은 걱정이 크다.
지금 석유시장에서 더 이상 미국의 영향력이 먹히지 않는다. 셰일 석유를 생산하는 미국은 중동과 석유를 놓고 한판 싸움을 벌이는 오일의 경쟁자이지 더 이상 중동사막의 낙타몰이, 석유꾼의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뭐라고 해도 중동의 맹주 사우디는 제갈 길 간다. 세계에너지 가격은 지금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와 막가파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러시아가 쥐고 있다.
OPEC의 반란에 유가가 춤추고, 러시아의 전비충당에 독일, 인도, 중국의 석유천연가스 수입이 춤춘다. 석유에서 지금 미국은 예전의 그 무소불위의 미국이 아니다. 중동과 중남미의 독재자들에게 끌려다니는 약해진 패권국의 모습이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유럽국가들은 대놓고 중국과 거래하고 있다. 2022년11월에는 독일의 슐츠총리가, 2023년3월에는 스페인 산체스총리가 4월에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교류를 확대한다. 경제가 어려운 유럽국가들에겐 더이상 미국의 말 빨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반도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은 지금 기술은 최강이지만 생산기술이 없어 대만과 한국을 “반도체 양자(養子)들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석유가격은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와 러시아가 쥐고 있듯이 지금 첨단반도체의 생산은 대만과 한국이 쥐고 있다.
중국, 미국의 반도체기술 봉쇄에 '마이크론 보안 조사'로 소심한 반항?
반도체경기 바닥론에다 대화형 AI(인공지능) 챗GPT로 인한 반도체 수요증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잘나가던 미국의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Micron Tech)사의 주가가 속락했다. 이유는 중국의 소심한 복수 때문이다. 중국이 통신장비에서 미국에 당한 것을 그대로 미국의 마이크론사에 적용한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보안국(CAC)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한 제품에 대한 사이버보안심사를 요구하는 공지를 발표했다. CAC는 핵심 정보 인프라 공급망의 보안을 보장하고, 숨겨진 제품 문제로 인한 네트워크 보안 위험을 방지하고 국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보안법(国家安全法 )" 및 "네트워크 보안법(网络安全法 )"에 근거해 '네트워크보안심사법(网络安全审查办法 )'에 따라 중국에서 Micron이 판매한 제품의 사이버 보안 검사를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중국 CAC의 마이크론 보안심사 공고문>
이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5G통신장비가 백도어 프로그램을 통한 데이터 유출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하는 명분으로 미국에서 중국산 통신장비를 퇴출시킨 것과 같은 명분이고 형식도 판박이다.
마이크론의 중국 고객사 매출은 2022회계연도 기준 10.7%(2021회계연도 기준 8.8%)를 차지했는데 만약 화웨이의 사례와 같은 조치를 중국이 한다고 하면 마이크론은 매출과 이익손실이 불가피하다. Longsys 및 BIWIN과 같은 중국내 메모리 모듈 제조업체와 스토리지업체의 마이크론 의존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고 대신 삼성과 하이닉스, 그리고 중국의 양쯔메모리(长江存储)와 창신메모리 (长鑫存储)는 반대급부를 누릴 수혜자다
중국이 미국의 대표적인 메모리회사인 마이크론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대중국 첨단반도체장비 공급 봉쇄의 배후에 마이크론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22년 10월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수출통제 규정을 발표하여 128단 이상 NAND 및 18nm 이하 DRAM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관련 장비의 중국 판매를 제한했다. 이는 중국의 양대 메모리업체인 양쯔메모리와 창신메모리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의 기술 업그레이드 및 용량 확장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공장이 있는 삼성 및 SK 하이닉스의 기술 업그레이드 및 생산능력 확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둘째, 2018년 마이크론과 중국 DRAM 제조사 푸젠진화(Fujian Jinhua) 간의 기술특허 분쟁이 미국 정부에 의해 갑자기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수준으로 제기되면서 푸젠진화는 미국의 직접 제재 기업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로 인해 건설 중이던 푸젠진화 공장은 장비구입이 불가해지면서 공장이 폐쇄되었다.
셋째, 마이크론의 미국정부에 대한 대중국 제재 로비다. Jiwei(集微)사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Micron은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 활동을 매년 증가시켜 5년 동안 954만 달러를 지출했다. 주요 목적은 중국의 메모리반도체제조 산업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마이크론은 미국 정부 부처에 170건 이상의 로비 활동을 했는데, 이중 대중국 관련 로비가 무려 67%에 달했다.
마이크론은 중국 본토에 R&D(연구·개발) 센터(약 150명 규모의 상하이 R&D 센터가 작년 초 해체)나 웨이퍼 제조 공장은 없고 시안에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만 있다. 마이크론 시안공장은 2006년에 설립되었으며 시안 첨단 산업 개발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글로벌 생산공장 분포>
한국의 삼성은 시안에 270억달러를 투자해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고 하이닉스는 우시와 대련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DRAM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TrendForce 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삼성 시안공장은 전세계 NAND Flash의 16%를, 하이닉스 대련공장은 6%를 생산하고 하이닉스 우시공장은 전세계 DRAM의 12%를 생산하고 있다.
2022년 4·4분기 기준으로 전세계 NAND Flash시장은 삼성이 33.8%, 일본의 키옥시아가 19.1%, 하이닉스가 17.1%,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16.1%, 마이크론이 10.7%를 차지하고 있고 DRAM은 삼성이 45.1%, 하이닉스가 27.7%, 마이크론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장비 공급봉쇄에는 “희토류 자석”으로 대응?
정치와 실리를 저울질하던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봉쇄에 동참했다. 일본은 지난 3월31일 첨단 반도체 장비 23품목의 대(對)중국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이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치가 아니라며 국제평화, 안전이란 관점에서 국제의 룰에 따르는 엄격한 수출 규제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통제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중국의 늑대외교(战狼外交)의 선봉에 선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관은 지난해 4월2일 일본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미국은 과거에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따돌림(빠링:覇凌) 같은 잔혹한 압박을 가했는데 이번엔 중국에 그 낡은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며 똑같이 살을 베이는 고통을 겪었던 일본은 ‘호랑이를 위해 귀신이 된다’는 의미인, 악인의 앞잡이를 하는 소위, 위호작창(爲虎作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싹 무시했고 대중 반도체 장비수출 규제는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절대 강자인 중국은 전기자동차(EV) 등에 필요한 '희토류 자석'의 수출 통제 조치를 추진함으로써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에 희토류자원 무기화로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3년 산업기술 관련 수출규제 품목 리스트(수출금지·수출제한 기술목록) 개정안에 희토류의 일종인 네오디뮴과 사마륨 코발트로 만든 이른바 '희토류 자석' 관련 기술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희토류 자석은 전기차의 심장인 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 외에도 휴대전화,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물론 항공기와 로봇 등 산업계 전반에 널리 쓰인다. 희토류 자석인 네오디뮴 자석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84%, 일본은 15%이고 사마륨 코발트 자석은 중국이 90% , 일본은 10% 이하다.
중국이 실제 수출 통제에 나서 희토류 자석의 공급이 끊어질 경우 전기차를 비롯한 첨단기기 생산에 심대한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봉쇄당한 상황에서 중국은 '산업의 비타민'인 희토류를 조절해 반도체 외 공급망을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중·일이 센카쿠 열도를 두고 대립했던 2012년 당시처럼 중국은 이번에도 희토류의 무기화 의도가 명백하다
<전세계 국가별 희토류 생산추이>
중국과 미국의 반도체전쟁 한국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미중의 반도체전쟁사이에 낀 한국은 입장이 묘하다. 미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중국에 공장이 있는 한국 메모리 양사에는 호재지만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의 공장증설은 물 건너 간다. 10년에 5%의 증설은 그냥 명분으로 한국의 입을 막는 조치일 뿐이다.
중·일의 반도체전쟁에서 한국은 가만 있다가 날아온 돌에 머리 맞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네오디뮴과 사마륨 코발트로 만든 이른바 '희토류 자석' 관련 원재료를 80~90%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위기 상황이 생기면 대책이 없다. 당장 가공은 대체지를 물색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자재는 어렵다. 그리고 이를 대체하는 신물질의 개발은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챗GPT열풍에 난리지만 엔비디아의 A100칩은 대만의 TSMC가 만들고 광대역메모리(HBM)는 한국의 하이닉스가 공급한다. 대만의 파운드리와 한국의 메모리가 없으면 챗GDP도 무용지물이다. 고성능컴퓨팅(HPC)과 AI 분야에서 최상의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더 높은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을 요구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팅 플랫폼을 구동하는 새로운 A100 80GB GPU를 새로이 공개했는데 80GB 메모리는 HBM2e 기술을 적용했다. 이는 기존 A100 40GB GPU의 고대역폭 메모리를 두 배 지원하며 초당 2TB 이상의 메모리 대역폭을 제공한다. HBM2e 메모리는 한국의 하이닉스가 제공한다. 챗GPT에서 숨은 강자가 우리 한국이다.
2023년들어 한국은 무역적자가 큰 이슈다. 그중 한국의 대중무역적자가 문제인데 그 중에서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에서 대중반도체수출감소가 주목받고 있고, 이것이 한국무역적자의 주범인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또한 이것이 미국의 반도체 봉쇄에 따른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결과로 나온 수요감소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한다.
한국의 대중반도체 수출감소는 올 1~2월의 중국의 경기 부진과 반도체 가격 폭락에 따른 가격효과 때문이지 중국의 반도체 굴기 때문은 아니다. 대중반도체 수출은 수량과 가격효과로 구분해서 보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수량은 2022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수출단가가 급락해서 수출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중국의 경기회복, 반도체 가격회복이 이루어지면 한국의 대중반도체 수출은 다시 증가세로 반전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간 미국의 첨단기술이 세상을 지배했지만 코로나19는 기술이 모든 것을 장악했던 시대에서 “기술은 공장을 못이기고 공장은 원자재를 못 이긴다”는 '공급망 신(新)법칙'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차질, 공급 중단이 미국을 선두로 공급망(SCM)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이 계급의 순위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상,공,농,사이다. 반도체도 기술->생산->장비->원료가 전통의 계급이었다면 지금은 원료>장비>생산>기술이다. 미국이 대만과 한국에 반도체 생산을 저자세로 보조금 주고 세금 깎아주면서 꼬시고,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작은 반도체 장비회사 ASML에 세계정상의 반도체회사인 인텔, 삼성, TSMC의 회장이 을의 입장으로 고개를 숙인다. 죽었던 일본이 반도체 소부장전쟁에서 '소재'라는 작은 꼬리 하나로 한국의 반도체회사의 머리를 흔들어 혼비백산시켰다
지금 미국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에서 일본과 네덜란드에 휘둘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반도체장비로 봉쇄하는데 네덜란드와 일본을 압박해 일단 첨단장비 공급을 중단시켰지만 3분의 1 가까운 판매를 중국에 의존하는, 네덜란드와 일본이 얼마나 길게 봉쇄 요구에 동참할지는 모른다.
한국에게 미중의 반도체전쟁은 '양날의 검'이다. 시장과 자원은 중국에 있고 기술은 한국과 미국에 있다. 한국은 어느 한 편에 휩쓸린 '정치외교'가 아니라 양편을 다 아우르는 신중한 '실리외교', '기술외교', '자원외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푸단대 박사/칭화대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Analyst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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