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그 8일 전인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에 막 취임했다. 한국 자동차의 효시는 1955년 8월에 최무성과 그의 두 동생이 폐기된 미군 지프 엔진에 드럼통을 망치로 두드려 붙여 만든 '시발 자동차'다. 이후 1962년 박정희 정부가 자동차 진흥 정책을 발표하면서 자동차업체들이 출범했으니 자동차산업의 실제 역사는 갓 60년을 넘긴 셈이다.
현재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등이 태동한 것도 그때다. 자전거를 만들던 기아는 일본 혼다와 제휴해 삼륜자동차를 조립생산했다. 1950년대에 드럼통을 펴서 버스를 만들었던 '버스 왕' 하동환의 회사는 동방자동차에 역병합되어 하동환자동차공업(현 KG모빌리티의 뿌리)으로 재출범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포드와 손을 잡고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것은 1967년에 이르러서였다.
서울에 하동환이 있었다면 부산에는 김제원-김창원 형제가 있었다. 두 형제는 1955년 부산 전포동에 신진공업사를 설립해 미군 폐차 엔진을 되살려 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2년에 나온 신진 H-SJ 25인승 신진 마이크로버스는 일명 '노랑차' 또는 '마이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신진자동차가 그 이듬해 미군 지프를 재활용해 제작한 신진 최초의 승용차가 신성호다. 기사에는 국산 부품을 70% 사용했다고 나온다. 당시 새나라자동차가 일본 닛산과 협력해 조립생산한 '블루버드'의 외형을 모방했지만 아무래도 품질이 조악했다.
그런데 새나라자동차가 특혜 시비에 휘말린 사건이 신진자동차에는 기회가 되었다. 신진이 새나라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1965년 신진은 새나라자동차 인천공장(현 한국GM 인천공장)을 인수하고 도요타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도요타의 기술력이 담긴 '코로나'(1966년)와 '크라운'(1967년)이 대히트를 치면서 신진은 1970년대 초반까지 지금의 현대차그룹과 비견할 만한 종합 자동차그룹으로 성장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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