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홍대 주변 상인들 골치
주인 허락없이 마구잡이 그려
지우다 지우다 지금은 방치
이화 벽화마을 주민도 불만
외부인 동네 구경하러 몰려와
새벽까지 떠들고 쓰레기 버려
주인 허락없이 마구잡이 그려
지우다 지우다 지금은 방치
이화 벽화마을 주민도 불만
외부인 동네 구경하러 몰려와
새벽까지 떠들고 쓰레기 버려
#.A씨는 서울의 한 고가도로 기둥에서 '혓바닥' 모양의 낙서를 발견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왜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신기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본 A씨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공식 전시활동을 벌이는 예술가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곳곳의 허름한 건물이나 셔터에도 혓바닥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A씨는 "허가받은 예술은 좋겠지만 기습적으로 곳곳에 그린다면 누군가에겐 피해가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 벽화의 일종으로 불리는 '그래피티'가 서울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피티는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도시 시설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일부 예술가들은 전시업체 혹은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합법적으로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설물 주인에게 허가받지 않고 무단으로 그리는 경우도 많다. 자기 시설물에 그래피티를 당한 사람들은 지우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지워도 누군가가 또 그리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낙서 좀 그만해라"
6일 이태원역 일대에서 만난 상인들은 그래피티만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양복집을 운영하는 문모씨(65)는 "그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낙서일 뿐"이라며 "우리 가게가 무슨 무당집도 아니고 왜 알록달록해야 하냐. 내가 그리라고 허락한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임모씨(74)는 자신의 가게 앞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가리키며 "몇 년째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 소문에 의하면 외국인들이 그린다고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수를 내야 하지 않겠냐"고 얼굴을 붉혔다.
사람 키가 닿지 않는 간판 위나 2층에도 그려진 그래피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옷 가게를 운영하는 노모씨(60대)는 "우리 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옆 가게는 간판 위에 건너편 건물에는 2층 외벽에 그림을 그리곤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그래피티는 상인들이 지우다 지쳐 방치한 것이라고 한다. 노씨는 "처음에는 페인트업자를 불러서 지웠는데, 자고 일어나면 누가 또 그리니까 이제는 포기했다"며 "페인트업자 한번 부르면 20만원을 써야 하는데 한번 지울 때마다 그날 옷 판 돈이 수익이 다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역시 사정 마찬가지. 홍대입구역 8번 출구의 이면 도로인 '걷고 싶은 길'을 따라 조성된 도시시설물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져 있었다. 악세사리 가게를 운영하는 B씨는 "가게 외벽에 계속 낙서하고 간다"며 "처음에는 지우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채념했다.
그래피티가 많은 서울 용산구청과 마포구청 문의 결과 이들 지자체는 이태원역과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그래피티 그리기' 사업을 진행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그래피티가 불법인 셈이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고 그린 벽화는 재물손괴죄와 건조물침입죄 등의 혐의가 적용돼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환영 못 받아
지자체의 사업 등을 계기로 '합법적'으로 그려진 그래피티도 많다. 잘 그려진 그래피티는 '벽화 마을'이라는 명소가 되는 경우도 많다.
외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일부 경제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인근 지역주민들에겐 달가운 존재만은 아니라고 한다.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은 대표적인 벽화마을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권모씨(68)는 "어느 날 갑자기 주민센터에서 건물 외벽과 계단 등에 그림을 그리더니 외부인들이 동네를 구경하겠다고 물밑 듯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처음엔 뿌듯했지만 외부인들이 쓰레기를 벽에 쑤셔 넣거나 담배꽁초를 곳곳에 버리고 가는 등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불평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모씨(63)는 "벽화를 보러 왔으면 조용히 보고 가면 되는데, 새벽 3~4시까지 떠들면서 돌아다니거나 술을 먹고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죽하면 동네 주민들이 벽화를 지우기까지 했겠냐"고 전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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