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학폭 피해자 인터뷰
'왜 쳐다보냐' 시비 건 뒤 구타
타박상·우울증·공황장애 겪어
정신과 약먹어도 수업 집중못해
"고3인데 공황발작에 입시 걱정"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사회에 퍼진 학교폭력(학폭) 이슈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논란도 경종을 울렸다. 학폭 피해자는 수년이 지나도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자는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파이낸셜뉴스는 학폭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 관련 시민단체를 직접 만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들어봤다. 시민단체의 경험 및 제언을 통해 학폭 문제 해소의 길을 묻는다. <편집자주>
'왜 쳐다보냐' 시비 건 뒤 구타
타박상·우울증·공황장애 겪어
정신과 약먹어도 수업 집중못해
"고3인데 공황발작에 입시 걱정"
"약을 먹지 않고서는 얘기할 수가 없어요."
학교폭력 피해자인 이모양(18)의 눈빛이 흔들렸다. 2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양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및 공황장애 증세로 약을 처방받았다. 이양은 "그때를 다시 생각하니 불안하고 떨린다"고 말했다.
■"공황 나타나 영화 보다가 응급실행"
이양은 지난 2021년 4월 충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같은 학년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이양에게 "왜 쳐다보느냐"며 시비를 건 뒤 무릎을 꿇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양이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난 가해자는 약 5분간 이양의 머리채를 잡고 학교 복도에서 끌고 다니며 얼굴과 배를 발과 주먹으로 때렸다. 이양은 전치 3주의 타박상과 스트레스성 궤양이 나타났다. 중증 우울증으로는 전치 12주가 나왔다. 이양 부모 측의 공론화로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렸고, 가해자는 전학 처분을 받았다.
가해자는 사라졌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이양은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 산다. 이양은 "사건이 있던 직후에는 자해를 좀 했다. 너무 불안한데 어디 풀 데가 없어서 강박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신과를 계속 다니면서 이양의 강박증세는 줄었다. 하지만 지금도 영화를 볼 때 폭력적인 장면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입시다. 고3이 된 이양에게 학교는 불편한 곳이다. 이양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걸 잘 못 견디겠고 가끔 학교에서 그때 생각이 나서 공황발작 비슷한 증세가 온다"면서 "아무래도 일상생활이 전처럼은 안되고 갑자기 불안해질 때는 정신과 약을 먹고 보건실에 누워 있다. 수업을 잘 못 듣게 되니까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가면 어떡하나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난 사과받은 적 없는데 반성문 제출"
이양의 어머니는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 학부모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가해자에 대해 상해 등의 혐의로 형사재판도 진행됐으나, 이양 측은 재판을 볼 수도 없었고 진술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양 어머니는 "재판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니 법원 사무실에서는 그건 안 되고 진정서를 보내라고 했다"면서 "재판을 하려면 피해자 얘기와 가해자 얘기를 전부 들어봐야 할 텐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재판은 소년법 제24조에 의거해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소년부 판사가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자에 대해서만 참석을 허가할 수 있다. 제25조의2에 따르면 피해자 측의 의견진술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심리기일에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줘야 하지만 판사의 판단에 따라 △신청인이 이미 심리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해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신청인의 진술로 심리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진술을 할 수 없다.
이양의 어머니는 "저희한텐 가해자가 법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시선을 피했다"면서 "그런데 법원에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진정성이 하나도 없는데 가해자가 법정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면 반성한 걸로 받아들여져 몇 시간짜리 교육 이수로 끝나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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