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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14%만 안건 찬반비율 공시… 주주권리 보호 과제 산적 [주주행동주의 절반의 성공 (하)]

이주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09 18:40

수정 2023.04.09 18:40

거래소, 안건 찬반비율 공시 의무
자산총액 1조 이상 상장사만 해당
반대의견 주주 권리 보호책 필요
특정일에 주총일 몰리는 것도 문제
전자투표제도, 주총 당일엔 제한
상장사 14%만 안건 찬반비율 공시… 주주권리 보호 과제 산적 [주주행동주의 절반의 성공 (하)]
행동주의 바람이 '메기' 역할을 했으나 여전히 국내 주주환경은 척박한 것이 현실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주주총회 날짜 쏠림 현상'부터 '안건별 찬반 비율 비공시'까지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활동성을 불어넣기 위해 개선돼야 할 지점은 산재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찬반 수치 공개 단 14%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정기주주총회에서 안건별 찬반 비율을 공시해야 하는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345곳(2021년 말 기준)이다. 코스닥을 포함한 전체 상장사(2456곳) 중 14.04%에 불과하다. 나머지 약 85%는 안건별로 가결 여부만 공개한다. 지난해 말 기준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큰 차이는 없다.

현재 주총 안건별 찬반 비율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이나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거래소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제도'에 따라 자산 총액 1조원 이상 유가증권 상장사만 보고서에 이를 밝히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상장사 주주들은 직접 주주총회에 참석하거나 언론을 통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총 후 안건별 찬성·반대 비율을 확인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찬반 득표율 차이가 크지 않았을 때 특히 문제가 된다. 가령 회사 측이 상정한 안건이 과반수인 60% 비율로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반대가 40%라면 해당 안건은 논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표 대결에서 졌을 뿐 여전히 팽팽한 의견 마찰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비율을 공개하지 않으면 해당 안건을 향후 표결에 다시 붙일 가능성을 사전 차단해버리는 셈이다. 의미 있는 안건이라도 근소한 차이로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저 사장돼버리게 된다. 그야말로 '깜깜이 주총'이 되고 있다.

공시를 하는 상장사조차 주총 종료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상 의무공시 기간은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다. 상장사들 정기 주총이 대개 3월 말에 끝나는 점을 고려하면 2개월 안에만 찬반 비율을 공개하면 된다. 이미 관심에서 벗어났을 때 공시해버려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해외 주요 국가는 찬반 비율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고, 기한 역시 짧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미국은 주총 후 4일 안에 안건별 투표율 등 상세 투표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유럽도 영국은 주총 직후, 이탈리아는 5일, 프랑스는 10일 내 결과를 회사 홈페이지에 알릴 의무가 있다.

특히 영국은 반대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회사 측이 직접 반대 의사를 표시한 주주나 기관투자자와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통과된다고 끝이 아니라 반대 측에 선 주주와도 대화 하도록 환경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송민경 한국ESG기준원 선임연구위원은 "찬반 비율 공개가 기업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알리지 않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며 "반대율이 높을 것 같은 안건은 회사 측이 아예 올리지 않거나 반대 최소화를 위해 주주들과 사전 소통을 시도하는 등의 효과도 낼 수 있기 때문에 비율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연구위원은 "해외에선 반대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해당 안건을 다음 주총에서 다시 상정할 때 의결권 자문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며 "'찬성·반대 비율'이란 정보가 주주 권리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루에만 570곳 몰려

정기주총 개최일이 특정 날짜로 몰리는 '슈퍼 주총데이' 현상은 고질적 문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하루에만 상장사 570곳이 주총을 진행했다. 같은 달 31일(483곳), 30일(335곳), 28일(295곳) 등 수많은 기업의 주총이 3월 마지막 주로 쏠렸다.

2018년 '주총 집중일 신고의무제'가 도입됐지만 상장사 자율에 맡기면서 좀처럼 효과는 발휘되고 있지 않다. 이 제도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사전에 발표하는 주총 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하면 그 사유를 신고하도록 정한다.

문제는 신고만 하면 특별한 제재나 불이익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이들 집중일을 피해 열면 불성실공시 벌점 감경, 공시 우수법인 평가 가점 등 혜택이 주어지지만 기업들 구미를 당기진 못하고 있다.

여러 기업 주식을 갖고 있어도 물리적으로 하루에 한 곳 주총만 참석할 수 있다는 제약이 생긴다. 상장사들이 주로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위치해 있는 사실도 주주들 걸음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 같은 문제 보완을 위해 다수 상장사들이 전자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정작 주총일엔 전자투표가 제한된다.
현행법상 전자투표는 주총 전날까지만 가능해 당일에는 현장에 직접 참석해야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투표부터 시작해 주총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전자 주주총회 제도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재 상법은 주총 개최 장소를 본점 소재지 혹은 인접한 지역으로만 설정하고 있다.

zoom@fnnews.com 이주미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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