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잠뱅이, 리복, 헤드, 리(Lee), 티피코시. 이 브랜드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삐삐'로 불리던 호출기를 사용했거나 적어도 실물로 본 적은 있는 세대다. 이들 모두가 1990년대 유행하던 패션 브랜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나 스마트폰에 익숙한 MZ세대 패션 피플들도 이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아니어서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가치를 중요시하는 MZ세대 성향과 잘 맞아 떨어져서다. 1990년대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면서 돌아온 브랜드들이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서태지 광고로 유명한 '티피코시' 돌아왔다
13일 생활문화기업 LF에 따르면 오는 17일 90년대 활발하게 전개했던 자체 브랜드 '티피코시(TIPICOSI)'를 온라인 중심 토탈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로 재론칭한다.
티피코시는 취미활동과 패션으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문화가 확산된 90년대 초,중반 캐주얼 의류 브랜드 시장 호황기를 이끌었던 브랜드다. 음악과 가수를 통하면 유행한다는 공식이 성립되던 당시 피피코시는 확실한 콘셉트와 유니크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디자인 못지않게 힙합, 레게, 락,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스타들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큰 인기 몰이를 했다.
대표적으로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배우 김남주가 모델로 함께한 화보, TV광고와 티피코시 하여가 CM송을 제작해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한 패션광고였다는 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1994년을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삼천포'와 '윤진'의 커플티로 티피코시가 등장할 만큼 티피코시는 당시 소비층에게 젊은 시절의 추억과 즐거움이 담겨 있는 브랜드다.
티피코시는 1990년대 기성문화를 거부하고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 패션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X세대의 니즈와 잘 맞물려 자유롭고 톡톡 튀는 아이템을 선보이며 젊고 신선한 브랜드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전국 210여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을 이어가던 티피코시는 시IMF와 경제위기를 겪으며 규모가 축소 됐으며, 2008년 최종적으로 브랜드 전개를 철수한 바 있다.
LF는 이번에 티피코시를 15년 만에 재론칭하며 티피코시를 기억하고 있는 X세대에게 당시의 감성과 추억을 공유하는 티저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기성세대에 향수를, 새로움을 갈망하는 Z세대에게는 호기심을 제공하는 등 독특한 브랜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티피코시는 캐주얼 유니섹스 라인과 여성 라인을 나눠 전개할 예정이다. 유니섹스 라인은 중성적이지만 에너지틱한 색채감과 디테일로 티피코시만의 유니크함을 담았다. 여성 라인은 보다 사랑스럽고 장난끼 넘치는 Y2K 스타일의 소녀 무드의 아이템들로 Z세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전략이다. 또 가방과 의류를 함께 구성하는 토탈 브랜드로 구성해 티피코시만의 풀 스타일링을 제안한다.
LF 관계자는 "브랜드 주 타겟 층으로 스트릿 스타일을 즐겨 입으면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자신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10대부터 20대로 선정했다"면서 "과거 티피코시가 힙합, 레게, 락, 클래식 등 음악과 패션을 접목해 선보였던 것과 같이 새롭게 재탄생 한 티피코시 또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패션에 접목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유행 MZ세대에겐 색다른 재미
LF가 티피코시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1990년대 길거리를 휩쓸었던 추억의 브랜드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90년대 브랜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철 지난 패션이지만 MZ세대 중에서도 특히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인 Z세대 들에게는 색다르면서도 개성있는 패션으로 인식되면서 '힙(HIP)'한 브랜드가 됐다.
90년대 브랜드의 인기는 매출로도 입증되고 있다.
창립 39년 된 잠뱅이 국산 청바지 브랜드 '잠뱅이'를 운영하는 제이앤드제이글로벌의 지난해 매출은 225억원으로 공시됐다. 전년 대비 14%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억원에서 27억원으로 3배 늘었다. 잠뱅이는 무신사 등 패션 플랫폼에 입점하며 10~20대에게 새로운 청바지 브랜드로 각인됐고, 청바지 뿐만 아니라 조거팬츠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호실적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90년대 대표 브랜드였던 리(LEE)는 이제 Z세대가 열광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MZ세대에게 핫한 브랜드 '커버낫'을 전개하는 비케이브가 2021년 재론칭해 약 2년 만에 6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X세대 선망의 패션 브랜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패션기업 레이어가 2021년 다시 들여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스포츠 브랜드도 재정비, 재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리복'의 경우 지난해 LF로 판권이 넘어오며 리복은 기존 가지고 있던 테니스 헤리티지를 살린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리복 재출시 주력 아이템으로 내세운 테니스 코트화 '클럽 C85'는 지난해 10월 출시 후 현재까지 5만 켤레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LF는 리복이 지닌 헤리티지를 강조해 테니스를 시작으로 농구화, 조깅화 등 신발뿐 아니라 패션 의류를 다양하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코오롱FnC 역시 최근 스포츠 브랜드 헤드(HEAD)를 재론칭했다. 헤드는 지난 2009년 코오롱FnC가 판권을 사들여 국내 사업을 전개하다가 2019년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재정비 후 돌아온 헤드는 기존 가지고 있던 헤리티지인 테니스와 스키 카테고리를 강화했다. 헤드는 글로벌 3대 테니스 라켓 브랜드라는 헤리티지를 살려 이번 SS(봄·여름) 시즌 테니스웨어, 라켓을 주력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스키의 경우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 스키판을 고안한 브랜드인 만큼 FW(가을·겨울) 시즌에는 헤드의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스키웨어와 용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세기말에 유행했던 'Y2K패션'의 인기가 거세지면서 과거 브랜드를 재론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면서 "특히 요즘 MZ세대 소비자들은 패스트패션 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경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90년대 브랜드에 열광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