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조원대 가구업체 입찰 담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검찰이 공정위 고발 없이 수사에 착수한 첫 사례다. 향후 담합 사건 주도권이 공정위에서 검찰로 옮아가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검찰이 기소를 염두에 두고 공정위를 압박한 모양새여서 공정거래 위반과 관련한 기업들의 '오너 사법 리스크'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12일 한샘, 에넥스 등 국내 주요 가구업체 8곳과 임직원 10여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다. 당초 수사망에 오른 가구업체는 9곳이었으나 담합을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현대리바트는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고발 요청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2015년부터 신축 아파트에 빌트인 형태로 들어갈 '특판 가구' 납품사를 정하는 과정에서 1조3000억원대 대규모 담합을 벌인 혐의(공정거래법·건설산업기본법 위반)를 포착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지난 1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지난 2월에는 수도권 일대에 있는 이들 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관련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 고발 없이 검찰이 선제 수사에 나선 첫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해 5월께 사건을 인지한 뒤 8개월여간 공정위 결론을 기다리다 공정위 고발 없이 지난 1월 수사에 착수했다. 담합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규모도 큰 만큼 선제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기소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검찰이 담합사건을 비롯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의 주도권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입장에선 '오너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법인의 책임을 중점적으로 따지는 공정위 고발과는 별개로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선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검찰이 세운 '부당 지원 경영진 엄벌 기조' 역시 부담이다. 앞서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도 당초 공정위 고발 대상에선 빠졌다가 검찰의 고발 요청에 따라 고발이 이뤄진 경우다.
공정거래전문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검찰은 법인뿐만 아니라 경영진에 대해서도 고발요청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표이사나 오너에 대한 사법 리스크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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