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 한강 산책로는 벚꽃 맛집이다. 마스크를 벗은 시민들은 올봄의 이른 벚꽃 소식에 서둘러 국회를 찾아 주말의 벚꽃축제를 즐겼다. 시민들과 꽃이 어우러진 봄날의 풍경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흐뭇함도 잠시, 벚꽃축제가 열리던 주말 내내 이어지던 봄의 산불 소식에 이내 마음이 어두워졌다. 벚꽃부터 산불까지 이 모든 것은 기후위기가 바꿔놓은 일상의 얼굴들이다. 이 모든 변화가 가속화되는 속도에 비해 우리 민주주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속도는 더딜 뿐 아니라 방향조차 역행하고 있다.
21대 국회는 겉으로만 보면 기후위기에 대한 비상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1대 국회는 출범 이후 약 4개월 만에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에는 대한민국 국회가 기후위기의 적극적 해결을 위해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한다는 결연한 문장이 실려있다. 결의안에는 IPCC 1.5도 특별보고서의 권고를 엄중히 받아들여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에 부합하도록 상향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내용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법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내용만 놓고 보면 기후위기에 비상하게 대응하기 위해 손색이 없다.
그러나 22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약속은 방치되고 있다. 물론 국회는 이후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 1.5도 온도 상승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해 2050 탄소중립과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시행령을 통해 40%로 최종 보고되었다.)이라는 2030년까지의 국가 중장기 감축목표(NDC)를 비롯해 다양한 기후대응 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에는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 오염자 부담의 원칙,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 보장 원칙 등 의미 있는 기본원칙들도 담겼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법에 의해 윤석열 정부가 최근 수립하고 국무회의를 통과시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하 탄기본)이 법이 목표하는 1.5도 지구 평균온도 상승 제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계획이라는 점이다.
국회가 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에 의거해 구성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중위)는 지난 3월 21일 대한민국의 첫 탄기본 초안을 발표했다. 탄기본은 우리나라의 기후대응 정책 가운데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탄기본은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30 NDC를 명목상으로만 유지할 뿐 내용적으로는 엄청나게 후퇴한 사실상의 ‘기후위기방관계획’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탄기본은 탄소중립기본법이 명시한 1.5도 온도상승 제한을 지키기 위한 탄소 예산보다 더 많은 탄소배출을 하겠다는 내용을 버젓이 담고 있다. 최근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1.5도 온도상승 제한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탄소 예산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45억톤가량이다. 다르게 말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온실가스를 45억톤 배출한 다음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1.5도 온도상승제한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탄기본 초안은 2030년까지 배출 예정인 누적 탄소 배출량을 45억 9000만톤으로 정해 주어진 탄소 예산을 9000만톤이나 상회한다. 주어진 탄소 예산을 넘어 탄소를 배출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1.5도 목표 달성의 포기를 의미한다.
1.5도 온도 상승 제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사실상 1.5도 목표 달성을 포기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정부가 국회의 입법을 바로 그 법을 통해 무력화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탄녹위에 속한 쟁쟁한 관료와 전문가 그 누구도 이 문제를 나서서 지적하지 않는다.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출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국무총리는 탄소 예산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늘어놓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녹위 당연직 공동위원장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정부의 만행에 대한 국회의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정부가 탄기본 초안을 발표한 날은 계획 수립 법정기한인 3월 25일을 불과 4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법정기한을 지키는 것은 초안에 대한 유의미한 의견수렴을 건너뛰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는 결국 법정기한을 어기고도 법에 정해진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지난 4월 11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탄기본을 최종 의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기후특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회 보고 및 심의 이전에 국무회의 의결을 하지 않도록 하는 입장을 밝힐 것을 서삼석 위원장과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간사에게 각각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탄기본은 11일 오전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그날 오후로 예정되었던 국회 기후특위는 이미 통과된 탄기본에 대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식의 성토 자리로 전락했다. 그 자리에는 산자부장관도 참석하지 않았고, 기후위기 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기재부나 국토부의 업무보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심지어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의원들의 질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총리실과 의장실의 만찬 참석을 이유로 자리를 떴다.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대표자로 생각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문규 실장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질의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앉혀놓고 밥 먹으러 간다며 자리를 뜬 것과 다름없다.
지난 2020년에 국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의 내용처럼 지금은 ‘기후 위기 비상 상황’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부는 이 비상 상황을 외면하고 화석연료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며 탄소중립 기본계획 대신 기후 대응 포기선언을 제출했다. 그렇다면 국회가 나서서 지금 당장 정부의 잘못된 계획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 국회는 너무 조용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기후위기 앞에 멈추고 있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기후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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