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2일 발표한 '신산업 규제 개선 현황과 과제' 보고서도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2019년 기업들의 의견을 취합해 발표했던 바이오, 드론,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86개 규제완화 추진 경과를 대한상의가 추적한 결과 개선이 완료된 규제는 겨우 8건(9.3%)에 그쳤다. 24.4%는 진행 중이지만 66.3%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유전자 치료 연구·검사 허용 관련 2건, 금융 마이데이터·소액단기보험 허용 등 2건, 수도권 드론 시험비행장 구축, 드론 항공방제, 작황 관련 등 3건, AI 법률 판례 분석 1건은 규제가 개선됐다. 이렇게 권한을 가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분야도 얼마든지 있다.
신산업은 우리가 거의 접해 보지 못한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기존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규제가 가로막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정부나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규제를 풀어주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맞닥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게 된다. 말로는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고 해 놓고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은 과단성 있는 결단이 중요하다. 몸 사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로는 규제의 문을 열어젖히기 어렵다. 위에서는 규제완화를 외치지만 아래에서는 관행과 규정을 내세우며 움직이지 않으니 립서비스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예외 없이 정권 초기부터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규제완화에 명운을 걸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소식이 없다. 회의만 해도 수차례 했고 내놓은 계획도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잘 진척되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대한상의는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초청해 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정책지원을 요청했다. 그중에는 지지부진한 신산업 관련 규제 신속정비가 들어 있다. 또 메가 샌드박스 도입,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 등 여러 건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에서 우리 기업만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규제완화와 관련된 행사와 회의는 자주 열리고 있다. 13일에는 외국계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앞에 두고 이복현 금감원장이 "불합리한 규제를 발굴하기 위한 혁신 추진 조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규제를 깨겠다는 이런 언급들이 지면을 통해 전해진다. 기업들이 바라는 것은 허황된 공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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